암스테르담은 다른 유럽도시와 달리 자전거가 보편적인 교통수단인건가요?
안녕하세요. 유영화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네달란드의 암스테르담은 특유의 온난한 기후, 평평한 지형, 그리고 밀집된 도시와 같은 자연적 요인 때문에 자전거 친화도시입니다. 이렇게 자전거가 주요 교통 수단으로 자리 잡게된 배경은 1070년대부터였습니다. 이 때 교통 사망자 증가에 반대한 대중운동이 네덜란드의 자동차 중심 발전 패턴을 바꾸게 하였습니다. 1990년대에는 무료 주차를 단속하고, 자전거를 이용하면 주차료를 지원하며, 자전거 전용 인프라 개선의 물결이 일기 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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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내시나 궁녀도 품계가 있었나요?
안녕하세요. 유영화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조선시대 내시와 궁녀도 품계가 있었습니다.내시는 내시부에 소속되어 궁궐에서 국왕을 보조하고, 식사 감독, 왕명 전달, 궐문 수문, 수직과 청소 등 궐내 잡무를 맡았습니다. 내시는 종 2품 상선에서부터 종9품 상원에 이르기까지 140명의 환관으로 구성되었습니다.궁녀는 내명부에 속한 실무직으로 정 5품 상궁부터 종9품 주변궁까지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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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이상'이 지은 작품들이 뭐가 있는지 궁금합니다.
안녕하세요. 유영화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이상(1910-1937)은 시인이고 소설가로 본명은 김해경으로 서울에서 출생하였으며, 경성고공 건축과를 졸업 후 총독부 건축기수로 생활하였습니다. 그는 다양한 장르와 스타일의 작품을 남겼는데, 대표적 시로는 '이런시', '거울', '정식', 시집 '오감도' 등이 유명합니다. 소설로는 '날개', '지주회사', '환시기', '환기' 등이 있으며, 수필로 '산촌여정', '조춘점묘', '권태' 등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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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시대에도 우리나라 공권력이 있었나요?
안녕하세요. 유영화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일제강점기는 일제가 우리 민족을 식민지배한 시기로 모든 공권력은 일제에 의해 행사되었습니다.당시 일본은 일왕 직속의 조선총독이 조선의 모든 권력을 장악하고, 그 아래 경무총감이 치안을 맡아 지배하였습니다. 1910년 경무총감은 헌병대장이 겸하여 식민지인 조선을 병영으로 취급하여 무단 통치하였습니다. 1919년 3.1운동 이후 사이토 총독의 이른바 문화 통치 시기 이후도 보통 경찰이란 이름으로 치안유지법을 앞세워 우리 민족을 강압적으로 지배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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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는 어떤 유래가 있는지 궁금합니다.
안녕하세요. 유영화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원불교는 일제강점기 1916년 소태산 박중빈이 <금강경>을 독학해서 창시한 신흥 종교입니다. 원불교는 우주의 궁긍적인 진리인 일원상(우주만유의 본원, 우주의 근본원리)의 진리를 깨달아 진리에 부합되는 생활을 하도록 가르치는 불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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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조가 화협옹주를 미워한 이유가 무엇인가요?
안녕하세요. 유영화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화협옹주는 영조와 영빈 이씨의 다섯째 딸로 태어났으며, 사도세자가 동생입니다. 당시 영빈 이씨가 옹주만 연이어 4명을 낳아 아들이 태어나길 고대했으나 또 태어나 후사를 근심했다고 합니다.혜경궁 홍씨의 <한중록>에 따르면 영조에게 줄곧 딸만 태어났던 탓에 사랑을 받지 못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평소 영조는 친국을 하면 반드시 사도세자에게 들러 "밥 먹었느냐?"고 물은 후, 대답을 받으면 자신의 귀를 씻고 돌아갔는데, 귀를 씻은 물을 화협옹주의 집이 있는 쪽으로 버렸다고 합니다.(당시 귀를 씻는다는 것은 기분이 나쁘다는 의미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옹주의 남편인 신광수마저도 영조에게 미움을 받았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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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계의 가별초는 어느정도 강력하길래 다른 병사들과 군세력을 압도했던건가요?
안녕하세요. 유영화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이성계는 몽골인, 여진족, 홍건족 등으로 가별초를 조직하였습니다. 가별초는 동북면 지역에서 이성계 장군의 가문에서 약 200년간 이어온 전투 부대로 충성심이 강하고 실전 경험이 많았습니다. 고려말 1380년 9월 황산대첩에서 아군의 10배가 넘는 적을 모두 물리칠 정도로 강력했습니다. 당시 이성계의 가별초 1600여명이 주력부대가 되어 고려군을 이끌었습니다. 이성계와 가별초는 한국사 최강의 사병 집단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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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트비아에서는 소련승전기념탑을 왜 무너뜨린 것인가요?
안녕하세요. 유영화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라트비아의 옛 소련 승전기념탑은 1985년에 소련 붉은 군대가 나치 독일을 상대로 승리한 역사를 기념하기 위해 세운 탑입니다. 탑의 높이가 무려 80미터나 되었습니다. 그런데 라트비아 의회는 지난 2022년 5월 철거를 결정하였습니다. 그 이유는 소련의 지배를 받았던 기억 때문에 이 기념비 철거를 적극적으로 환영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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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실록중에서 세조실록이 중요한이유가궁금해요
안녕하세요. 유영화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학계에서는 세조의 왕위 찬탈 과정을 수록한 단종실록은 왜곡이 많은 반면, 즉 이후 기록한 세조실록은 대체로 사실대로 기록했다고 평가받고 있습니다. 세조실록 편찬 과정에서 민수사옥(閔粹史獄)이라는 사건이 있었습니다. 사관 민수(閔粹)가 평소 대신들의 잘못을 사초에 많이 기록했었는데, 세조 사후 실록 편찬을 하면서 이를 들킬까봐 춘추관에 제출한 사초를 몰래 빼내 여러 군데를 고치다가 발각되어 피를 본 사건입니다. 민수사옥 부터 정부의 시정기와 공문서가 실록편찬의 주요 자료로서 사용되기 시작했습니다. 즉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조선왕조실록 수찬자료 제작 시스템은 이때부터 확립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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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나라 시대의 견융족은 어떤 이민족이었으며 전국시대의 원인이 된건가요?
안녕하세요. 유영화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견융족은 중국 주나라 시대 서부 지역에서 활약한 서융으로 분류됩니다. 기원전 771년 주의 호경을 공격하여 유왕을 죽여, 수도를 뤄양으로 천도하게 하였습니다. 이로써 중국에서 춘추전국시대를 열게 한 민족입니다.견융(犬戎)은 한자 '개견(犬)'을 포함시켜 오랑캐를 비하하는 의미가 담고 있습니다. 전설에 따르면 황제 헌원씨의 자손이 백견 혹은 백마의 암컷과 수컷 두마리를 낳아 견융이 되었다고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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