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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영의정, 좌의정, 우의정은 현재의 어떤 자리인지 궁금합니다.
조선시대 영의정, 좌의정, 우의정은 오늘로 치면 국무총리, 부총리 급에 해당합니다. 영의정은 의정부의 최고 책임자로 오늘날의 국무총리와 가장 비슷한 자리입니다. 국정 전반을 총괄합니다. 좌의정은 영의정을 보좌하고 국정 운영과 주요 정책에 깊이 관여합니다. 우의정도 영의정을 보좌하며 행정과 정책 집행을 담당합니다. 이들은 부총리급에 해당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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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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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산군이 원래 초반엔 성군 이였나요?
연산군 즉위 초기에는 성군의 기질을 보였던 시기가 있었습니다. 즉위 후 처음 몇년동안은 세금 제도 정비, 부패 관리 처벌 강화, 군역 제도 개선 등 백성의 삶을 개선하기 위해 개혁적 정책을 추진했습니다. 또한 사창, 상평창, 진제창 등 빈민 구제 기관을 설치하고 국방을 튼튼히 하기 위해 비융사를 설치하였습니다. 또한 <국조보감>, <여지승람> 등 주요 서적을 간행하고, 사가독서를 부활하였습니다.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폐비 윤씨 사건을 알고, 사람파와 대결하면서 폭군의 길로 들어서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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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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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트족은 왜 동고트족과 서고트족으로 분열이 된건가요?
우선 지리적으로 3세기 무렵부터 동서로 나뉘어서 이동했기 때문입니다. 특히 훈족의 충격으로 고트족이 동서로 나뉘어 이동했습니다. 즉 고트족이 각기 서로마, 동로마 지역에서 각기 활동하여 기인한 것입니다. 게다가 서고트족은 주로 서로마 제국의 서쪽 영토(이베리아 반도)로 이동해 왕국을 세웠으며, 동고트족은 동로마 제국 영역(발칸, 이탈리아) 지역으로 세력을 키웠습니다. 서로 다른 로마 제국과 관계 및 각기 다른 지역 환경이 두 고트족의 분열을 심화시켰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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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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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0 만세운동에 대해서 알려주세요.
6.10 만세 운동은 1926년 순종의 서거를 계기로 일어난 독립 운동입니다. 즉 순종의 인산일을 기회로 전국적인 만세 우동을 전개하고자 하였습니다. 특히만세 운동을 준비하며서 천도교 계열과 공산주의 계열, 학생 대표들이 준비하였습니다. 시위를 앞두고 사전에 발각되어 주도자들이 체포되었으나 학생들은 인산일 당시 장례 행렬을 따라 기습적으로 시위를 전개했습니다.3.1운동 당시 당황했던 일제는 경찰력을 동원하여 전국적으로 확산되지는 못했지만 민족주의와 사회주의의 민족 유일당 운동의 신호탄이 되었으며, 학생들이 민족운동의 주도자로 성숙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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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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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트족이 로마제국과 어떻게 전쟁을 해오고 세력을 키워갔나요?
고트족은 3세기 중반 현재 루마니아이 다키아 등 로마 국경 지역을 침공하여 로마와 대규모 충돌하였습니다. 반면 로마는 고트족의 침입 등 게르만족의 침입으로 급격하게 쇠락하였습니다. 고트족은 378년 아드라아노플 전투에서 대승을 거두어 동로마 황제 발렌스를 전사시키도 했습니다.5세기 이후 고트족은 서고트와 동고트로 나뉘어 각각 서유럽(서고트 왕국), 이탈리아(동고트 왕국)에서 독자적 왕국을 세웠습니다. 특히 동고트족은 테오도리쿠스 대왕의 통치 하에 이탈리아를 지배하며 로마의 후계자로 군림하기도 했습니다. 고트족의 고트 전쟁(535-554) 등으로 로마 제국의 군사력과 통치력을 약화시켰고, 결국 서로마 제국의 멸망을 초래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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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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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유럽시대에서 훈족의 침략과 이로 인해서 고트족은 어떤 영향을 받게 되나요?
훈족에게 쫒긴 고트족은 서고트와 동고트로 나뉘어 로마 영내로 대거 유입되었으며, 이는 다른 지역의 게르만족에게 이동과 혼란을 초래했습니다. 서고트족은 로마 영토로 들어와 아드리아노플 전투(378)에서 로마군을 대파했고, 이후 로마 제국 내에 자치권을 얻으며 서고트 왕국을 건설합니다. 동고트족 역시 이동 끝에 이탈리아에 왕국을 세웠습니다. 또한 고트족 등 게르만족의 대이동은 서로마 제국이 쇠퇴하게 하였으며, 새롭운 중세 유럽 질서 형성에 결정적 역할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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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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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 통일의 1등 공신 한신이 토사구팽 당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한나라의 한신은 초한전쟁에서 뛰어난 전략난 전략과 전공으로 통일 1등 공신이 되었지만 그만큼 유방에게는 위협적으로 비쳤습니다. 유방은 천하를 얻은 뒤 한신이 자신의 권력을 위협할 수 있다고 판단하였습니다.한신은 군사적 능력과 달리 정치적 감각과 대인관계가 부족하였습니다. 여러 번 왕위 요구, 본진 복귀 거부, 독자적 행동 등으로 유방의 불신을 자초했고, 결국 반란을 도모했다는 밀고로 처형당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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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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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윤복이 진짜 여자였을지 궁금합니다.
신윤복이 여자였다면 최근 드라마, 소설 등 대중문화에서 상상력에 의해 만들어진 이야기입니다. 실제 역사 기록에 따르면 신윤복은 남자입니다. 신윤복은 신한평의 아들로 기록되어 있으며, 도화서 화원으로 첨사 지위에 올랐습니다. 조선 후기 엄격한 유교 사회에서 여성이 공식적으로 관직에 오르거나 화원으로 활동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였습니다. 즉, 신윤복의 그림이 여성의 심리와 일상을 섬세하게 묘사하여 여성이라는 의문이 있지만 이는 대중 매체의 영향으로 만들어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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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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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 산성 어느 지역에 있으며, 역사적으로 그 산성에서 일어난 전쟁은 무엇이 있나요?
우리나라는 산성이 전국 곳곳에 많이 있습니다. 그 이유는 우리나는 산악 지역이 많아 산성을 축조하여 적을 방어하는 것이 유리하기 때문에 각 지역마다 산성이 축성되었습니다.대표적인 산성으로 경기, 서울 지역에 남한산성, 북한산성, 행주 산성, 독산성, 처인성 등이 있습니다. 충청은 공산성, 상당산성, 부소산성, 임존성, 경상도에는 금정산성, 명활성, 분산성, 단조산성 등이 있으며, 전라도 남원에 교룡산성, 순천에 검단산성, 기타 여러 곳에 산성이 있습니다. 그 가운데 남한산성은 병자호란, 행주산성은 임진왜란으로 유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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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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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 일본사람들이 우리나라의 기를 막기 위해서 큰 산맥을 잇는 명산에 정을 바위에 심어놨다는데, 주로 어디에 그런 나쁜짓을 했나요?
일제강점기 일본이 한반도의 '기를 막는다'는 명분으로 명산에 쇠말뚝을 박았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일제가 조선을 정기를 끊기 위해 위해 상징적 행위를 한 사례가 백두산, 계룡산, 북한산, 지리산 일대에서 발견됩니다. 이러한 행위는 토목 측량을 위한 표식, 신사 건립 등 다양한 목적이 섞여 진행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하지만 민간에서는 우리 민족의 기운을 끊으려는 의도로 인식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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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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