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대인 대학살 같은 역사적 사건은 왜 발생한 것인가요?
안녕하세요. 유영화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히틀러와 나치 정권을 위해 유대인들의 대학살로 희생되었습니다.히틀러는 중세 유럽에서 퍼져 있었던 반 유대주의 정서를 이용하여 대중의 정서를 왜곡시켜 600만명의 유대인들을 학살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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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열 사망사건에 대해 알려주세요.
안녕하세요. 유영화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 본부 주도로 87년 6.10 국민대회를 홍보하기 위한 6월 9일 시위 도중 경찰의 최루탄에 맞게 됩니다.이한열 열사의 소식이 알려지면서 6월 민주항쟁의 열기는 확산되었으며, 결국 6.29 선언으로 성공하게 될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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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은 병사들에게 지휘관으로서 어떤 인물이었나요?
안녕하세요. 유영화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이순신은 그 존재만으로도 백성의 구심점이 되었습니다. 임진왜란 당시 많은 피란민은 전쟁터인 명량까지 이순신을 따라 갔습니다. 보통 피란민들은 전쟁터에서 멀리 도망가는데 반대 현상인 것입니다.이순신 장군이 백의종군에서 다시 삼도수군 통제사에 다시 임명되었을 때 도망갔던 군사들이 다시 모여들기 시작합니다. 9명의 군관밖에 없었으나 이순신이 지나가는 고을마다 군사들이 늘어납니다. 이순신은 임진왜란의 마지막 전투인 노량해전에서 크게 승리했지만 전사했습니다. 이에 대한 좌의정 한음 이덕형(1561~1613)이 임금 선조에게 보낸 보고서의 일부분에서 확인할 수 있습다. “노량해전의 승전 보고가 있던 날 군량을 운반하던 인부들이 이순신의 전사 소식을 듣고 무지한 노약자들마저 눈물을 흘리며 서로 조문까지 하였으니 이처럼 사람을 감동시키고 있는 것이 어찌 우연한 일이겠습니까?"와 기록되어 있는 것처럼 부하들의 믿음이 두터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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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라탕은 어느나라 음식인데 인기가 있나요?
안녕하세요. 유영화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마라탕의(Spicy Hot Pot) 기원은 중국에서 기원하였습니다. 마라탕은 중국 쓰촨(四川) 러산(樂山)입니다. 쓰촨 성의 뱃사공들은 배를 타다 잠시 강가에 정박한 뒤 주위의 재료들을 구해와 한 솥에 넣은 뒤 돌 위에 끓여 먹었는데 마라탕이 유래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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힌두교 사람들은 왜 소고기를 안먹나요?
안녕하세요. 유영화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인도인들이 소를 숭배하고 먹지 않은 이유는 여러 설이 있습니다. 먼저 종교적 이유입니다. 인도 최고의 신 '시바신'의 탈 것이라는 이유입니다. 시바신은 신중의 신으로 가장 유명한 신입니다, 시바신이 타고 타니기 때문에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그가 타고 다는 소도 신성시 한 것입니다. 시바 신전 입구에 난디((Nandi)를 타고 하늘을 나는 복수의 신 시바의 초상이 걸려 있고, 가장 인기 있는 신이자 자비의 신 크리슈나는 암소의 보호자로 그려집니다. 그리고 베다 경전의 기록에는 소 고기를 먹는 것은 중죄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둘째 이유는 경제적 이유로 소는 땔감과 비료를 제공합니다. 그리고 농사와 가장 연관이 있는 공물입니다. 셋째, 정치적 이유입니다. 불교와 자이나교의 부상과 함께 힌두교도들은 육식을 중단하기 시작했습니다. 브라만의 권위에 반기를 들고 새롭게 등장한 불교와 자이나교의 도전에 제사장 중심의 힌두교가 위상이 흔들리자 브라만 제사장들이 계율로 불상생을 내세우면서 소를 신성시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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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현대로 들어선 조선과 대한제국에서도 출퇴근이라는 개념이 있었나요?
안녕하세요. 유영화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오늘날 처럼 조선시대 승정원 관원들도 출퇴근 시간도 엄격하였습니다.출근시간은 묘시(卯時·오전 5~7시), 퇴근시간은 유시(酉時·오후 5~7시)였습니다. 해가 짧은 겨울에는 진시(辰時·오전 7~9시)에 출근하고 신시(申時·오후 3~5시)나 유시에 퇴근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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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한 프랑스 대사관 건축물의 해석은 어떻게 되나요?
안녕하세요. 유영화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주한 프랑스 대사관은 건축가 르코르뷔지에의 제자인 김종업의 설계하여 1962년 완성한 건축물입니다. 김종업은 네마리의 학을 연상시키는 건물을 지었습니다. 무거운 지붕의 높낮이를 조정하여 학의 날개 짓과 같은 날렵한 건축물을 탄생시켰습니다. 즉 대사관은 1층을 비운 필로티 건물로 양탄자가 날아갈 듯 지붕이 하늘로 치솟는 구조이고, 대사관저와 업무동은 부드러운 곡선의 가교가 이어집니다. 또한 중앙 정원을을 부채꼴처럼 둘러싸고 있어 좋은 평가를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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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술인(무당)이 일하는 곳에 가면 두 가지 색의 깃발이 있는데 의미는 무엇인가요?
안녕하세요. 유영화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맨위 백색기 아래는 빨강기(천황기, 또는 서낭기)는 보통은 천지신명을 모시는 신제자가 있는 집(神堂)을 표시합니다.백색기만 달린 집은 무속인이 신을 받았는데 굿은 아직 하지 못하고 점사(사주나 운명을 점 칠수 있는 일)은 할 수 있을 때 긴 대나무에 하얀 깃발을 걸어요.빨강기가 달린 집은 전문적으로 굿만 하는 집으로 신내림을 받아 굿하는 법을 알아 굿도 할 수 있고 사람의 길흉화복에 대한 운명을 점칠 수 있게 되면 두가지 색의 깃발 즉 하얀 깃발과 빨간 깃발을 함께 매달매달아 놓습니다. 그러나 최근에는 점집은 모두 백색기와 빨강기를 함께 다는 것이 일반화 되어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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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주 고달사지 승탑은 언제 만들어졌고 어떠한 가치가 있나요
안녕하세요. 유영화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여주 고달사지 승탑(驪州 高達寺址 僧塔)은 경기도 여주시 고달사 터에 있는, 고려시대 초기의 부도입입니다. 승탑은 신라말 선종 불교의 유행에 따라 스님의 사히를 봉안한 탑으로 대체로 신라 양식인 8각원당형의 구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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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근대 작가 나쓰메소세끼의 작품에 인종차별적인 발언이 곳곳에 있다던데요. 반전주의자라고 알고 있었는데 모순되는 거 같습니다. 정말인가요?
안녕하세요. 유영화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만주와 한국 여행기>를 번역한 김유영은 "나쓰메 소세키는 대외적으로 반전주의자 모습을 보였고 일본의 천황제와 전쟁에 부정적이며 식민지 사람들에게 연민을 갖는다는 표현을 쓰기도 했는데, 이 만주 여행기를 보면 일본인들은 자랑스럽고 영국인들은 당당하고 러시아인의 건축물은 훌륭했다고 하면서도 식민통치 하에 고통을 겪는 피식민지 하층 계급에는 불쾌하다, 더럽다는 표현을 쓴다"며 "이런 이중적인 모습이 기존에 알려진 모습과는 다르다"고 설명했어요.나쓰메 소세키는 이후 '만주일일신문'에 기고한 '한만소감(韓滿所感)-하'란 제목의 글에서도 이중적인 시각을 드러냈어요. 암살에 떠르면 다음과 같이 기술해씁니다."지난 여행 때 한 가지 느낀 점은, 내가 일본인으로 태어났다는 것을 다행이라고 자각할 수 있었던 점이다. 내지에서 두려워 떨고 있을 때에는 일본인 만큼 불쌍한 국민은 세상에 절대 없을 것이라는 생각에 시종 압박에 시달렸는데, 만주와 조선에 건너온 나의 동포가 문명 사업의 각 방면에서 활약하여 매우 우월한 존재가 되어 있는 모습을 보고, 일본인도 매우 믿음직한 인종이라는 인상이 머릿속 깊이 각인되었다. 동시에 나는 중국인이나 조선인으로 태어나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들을 눈앞에 두고 승자의 패기를 지니고 자신의 일에 종사하고 있는 나의 동포들이야말로 진정한 운명의 총아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암살' 21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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