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글로 아메리카가 역사가 더 오래 되었나여? 라틴 아메리카가 더 역사가 오래 되었나여?
앵글로아메리카는 리오그란데강 이북 지역으로 영국에 영향을 받은 지역이고, 이남 지역의 라틴아메리카는 스페인, 포르투갈의 영향을 받은 지역입니다. 앵글로 아메리카와 라틴 아메리카는 비슷한 시기에 형성되었다고 봐야 합니다.하지만 언밀하게 말해서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하기 이전에 라틴아메리카는 마야, 아즈텍, 잉카 문명이 존재했습니다. 따라서 문명사를 기준으로 한다면 라틴 아메리카 지역이 먼저라고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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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앤애는 상임이사국이 있다고 하는데 그 나라는 어디이고 왜 그렇게 몇몇 국가만 상임이사국이 되는건가요?? 우리날도 할수 있나요??
유엔의 안전보장이사회의 상임이사국 제도는 2차 대전 이후 본래 전쟁을 막고 국제 질서를 관리할 힘을 가진 나라들에게 책임과 권한을 준 제도입니다. 현재 상임이사국은 미국, 영국, 프랑스, 러시아, 중국입니다. 상임이사국 제도는 단순히 인구가 많거나 경제적 규모가 큰 것이 아니라 전후 체제 형성 당시 국제 정치 현실을 반영하여 선정된 것입니다. 우리나라가 이론적으로 가능하다고 말할 수 있지만 현질적으로 매우 어렵습니다. 그 이유는 상임이사국을 바꾸려면 유엔 헌장 개정이 필요하고, 현재 상임이사국들의 동의가 사실상 필요해서 문턱이 매우 높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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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양 죽녹원에 갔는데 죽나무에 새긴 남녀사랑 다짐
공공 재산에서 낙서를 하거나 훼손하는 것은 무례한 행동입니다. 개인의 감정 표현이 다른 사람에게는 피해를 끼칩니다. 또한 오히려 순간의 충동을 낭만으로 착각한 행동에 가깝습니다. 진짜 애정은 상대와 주변을 함께 존중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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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폴레옹의 프랑스내에서의 평가는 어떻나요?
프랑스에서 나폴레옹에 대한 평가는 상반됩니다. 그는 프랑스 혁명 이후 혼란을 정비하고, 나폴레옹 헌법을 제정하여 프랑스 혁명 사상을 반영하였습니다. 그 외에도 중앙집권적 행정, 교육, 금융 제도의 정비를 통해 프랑스의 근대화에 큰 역할을 하였다고 평가합니다. 또한 나폴레옹 전쟁을 통해 영토를 넓힌 영웅으로 묘사됩니다.하지만 그는 황제로 즉위해 권력을 집중하고, 유럽 각지에서 전쟁을 벌였으며 막대한 인명 피해를 저지른 독재자라는 평가도 있습니다. 즉, 프랑스에 내에서는 나폴레옹을 프랑스 혁명 사상을 확산 시키고, 영토를 넓힌 영웅과 전쟁과 인명 피해를 일으킨 독재자의 상반된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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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테라를 맨 처음 개발한 사람이 누구실까요?
카스테라는 특정 인물이 개발한 것이 아니라 스페인의 카스티야 지방에서 유래한 과자가 포르투갈에 의해 16세기 일본으로 건너가 카스테라가 된 것입니다. 포르투갈 상인이나 선교사들을 통해 일본의 나가사키로 들어갔는데, 이를 독자적으로 발전시킨 것입니다. 즉, 카스테라는 스페인 카스티야, 포르투갈의 경우, 그리고 일본에서 발전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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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중앙박물관 반가사유상 미니어처
미륵보살반가사유상은 우리나라 고대 미술의 정수를 보여주는 유물입니다. 그런데 최근 반가사유상 미니어처 같은 뮷즈 열풍은 전통 문화를 박물관에서 일상 속에 두고 쓰는 취향 소비재로 변환시키는 영향을 미쳤습니다. 색감과 크기, 쓰임을 바꿔 현대적 소품으로 재구성한 사례로 전통 문화와 유물을 가까이할 수 있는 생활형 문화가 될 수 있습니다.게다가 MZ 세대의 궂즈 열풍과 연결하여 단순 기념품이 아니라 개인의 취향을 드러내는 아이템으로 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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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아더 장군이 우리나라에 끼친 좋은 영향들
맥아더 장군은 6. 25 전쟁 당시 인천 상륙 작전에 성사시켜 전세를 뒤집는 역할을 하였습니다. 또한 전쟁 시찰과 현지 지휘로 병사들과 지휘관들에게 심리적 지지를 줬다는 평가가 있습니다.그런데, 본래 맥아더 장군은 6.25 전쟁 이전에 2차 세계 대전 동안 태평양 전역에서 연합군을 지휘했습니다. 그리고 일본 항복 수락과 점령 통치하였습니다. 전후 일본의 최고사령관으로서 항복을 받아 내고 일본 재건 과정에서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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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호선 광흥창역 이름인 광흥창의 유래를 아시나요?
광흥창은 본래 원래 고려 때 제도를 이어받은 창고였습니다. 조선에서는 호조 소속으로 편제되어 관리들에게 줄 곡식과 녹봉을 맡던 곳입니다. 현재 서울 마포구 창전동 서강 일대에 있었습니다.지하철 6호선 광흥창역은 그 주변에 옛 광흥창 터가 있었기 때문에 이름에서 유래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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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학계에서는 미실이 실존했을 ...
사학계의 주류 견해는 미실의 존재를 확정하기 어렵습니다. 미실 관련 사건은 <삼국사기>, <삼국유사> 같은 핵심 정사에서 나오지 않습니다. 오직 필사본 <화랑세기>에 의존하는데, 이 필사본은 위서 가능성이 큽니다. 일부 연구자는 미실이라는 인물의 원형이 이었을 가능성은 열어두지만 실존했을 가능성을 부족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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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혁당 사건은 어떤 일이 배경이 된 사건인가요?
1차 인혁당 사건은 1964년 한일 회담 반대 운동을 탄압하기 위해 평화통일론을 주장하던 혁신계 인사들을 묶어 북한의 지령을 받은 지하 조직이라고 조작하여 구속 탄압한 사건입니다. 당시 사건 연루자들은 반공법 위반 등으로 기소되어 일부는 징역형, 일부는 무죄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2차 인혁당 사건은 흔히 인혁당 재건위 사건이라 부르는 사건으로 1974년 민청학련 사건의 배후로 다시 이들을 지목하여 구속, 고문으로 8명에게 사형을 집행하였습니다. 1, 2차 인혁당 사건은 정권이 반대 세력을 국가 안보와 사건으로 엮어 처벌한 사건으로 2013년 재심으로 무죄가 선고됐으며, 2015년 대법원이 이를 확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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