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사병은 어떻게 유럽 사회구조까지 바꿔놓았나요?
14세기 흑사병의 유행으로 유럽 인구의 1/3에서 절반 가까이 사망하여 인구가 급감했습니다. 이는 노동력이 희소해져 영주들은 예전처럼 농노를 묶어둘 수 없었습니다. 따라서 노동 가치의 상승은 농노 중심의 장원제의 약화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농노들은 부역 지대를 생산물 지대나 화폐 지대로 대신하였습니다. 또한 임금 노동이 더욱 확대되어 농노 해방이 확산되었습니다. 일부에서는 와트타일러의 난, 자크린의 난과 같은 농민들의 저항도 있었습니다. 또한 귀족과 영주의 권력이 상대적으로 줄고 도시 상공업자와 노동자의 영향력이 커졌습니다. 즉, 흑사병의 유행으로 인구가 급감하여 노동 가치가 상승하였으며, 이는 농노 중심의 장원제가 붕괴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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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숫자의 기원은 어떻게 되는지 궁금합니다.
현재 우리가 사용하는 숫자 즉, 0~9는 아라비아 숫자라 부릅니다. 하지만 이는 3~6세기 인도에서 완성된 십진법 위치 기수법을 아랍 세계가 유럽으로 전파한 것입니다. 따라서 인도에서 만들어져, 이슬람권 학자들을 거쳐 스페인, 이탈리 등 유럽 전역으로 확산된 것입니다. 숫자를 누가 최초로 썼는지는 알 수는 없습니다. 숫자 체계는 한번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여려 세대에 걸쳐 발전한 것이고, 우리가 아는 아라비아 숫자는 인도 수학자들에 의해 완성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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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르카손의 십자군전쟁은 어떤 전쟁인지 궁금합니다.
카르카손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십자군 전쟁과 다릅니다. 십자군 전쟁은 셀주크튀르크의 성지 순례자 박해에 대해 동로마 황제가 로마 교황에게 구원을 요청하면서 예루살렘 등 동방 성지 회복을 위해 1096년부터 시작되었습니다. 하지만 카르카손은 프랑스 남부의 이단 카타리파를 토벌한 알비주아 십자군을 말합니다. 이는 외부의 이슬람 세력과 싸운 것이 아니라 1209년 교황 인노켄티우스 3세의 명령에 의해 기독교 세계 안의 이단 토벌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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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9 혁명은 왜 학생들이 중심이 되어 일어났나요?
4.19 혁명 당시 학생들의 역할이 컸습니다. 당시 학교는 이미 정치적으로 동원되는 구조였습니다. 4.19혁명 당시 부정선거와 독재에 대해 가장 민감하게 대응하였습니다. 특히 2.28 대구 학생 시위처럼 학생들의 시위가 먼저 터져 나오면 전국 확산의 불씨가 되었습니다. 또한 학생들은 학교 조직 단위로 빠르게 움직일 수 있었습니다. 학내 조직을 바탕으로 집결과 시위 속도가 빨랐습니다. 예를들어 마산의 김주열 사건 시위, 고려대 학생 시위가 연달어 이어이면서 학생 시위가 주도적 역할을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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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 투표권은 언제 어떤 계기로 갖게 되었나요?
우리나라는 민주주의 도입과 함께 남녀 보통 선거가 시작되었습니다. 하지만 세계적으로 여성들의 참정권 확보는 남성 중심의 제한 선거에 대한 저항의 결과 부여된 것입니다. 가장 먼저 여성의 참정권 부여는 1893년 뉴질랜드입니다. 이후 20세기 여성 참정권 운동이 확산되면서 핀란드가 1906년, 노르웨이 1913, 덴마크 1915년, 미국 1920년, 영국 1928년에 와서 여성들의 참정권이 인정되었습니다.특히 1차 대전 전후로 여성들의 사회와 경제적 지위와 역할이 커지면서 정치 참여에 대한 기회가 참정권으로 반영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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맬빵바지 패션은 언제부터 어떠헤해서 유행하게댄건가여?
맯빵바지는 본래 패션용이 아니라 작업복에서 비롯되었습니다. 18~19세기 바지가 흘러내리지 않게 잡아주는 실용복에서 출발하여 1890년대 데님 작업복으로 본격 생산했습니다. 특히 이 시기 리바이스 계열의 작업복에서 대량 생산하며 자리잡게 됩니다. 1차 대전 전후에는 군수 공장의 복장으로 1930년대에는 농부, 광부, 벌목꾼 등이 주로 입었습니다. 그리고 1960년대에 들어서 젊은층이 캐주얼 패션으로 받아들이면서 이미지가 바뀌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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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야괴담회보고 궁금한데 우리나라 신 랭킹이 있나요?
무속이나 민간 신앙에서 신을 서열을 붙인다면 하늘의 최고신 계열이 가장 위에 차지하고, 그 다음에 자연신과 신령, 조상신, 마지막으로는 집안과 마을을 지키는 신으로 순서를 매길 수 있습니다. 예를 든다면, 최고는 하늘신, 그 다음은 산신, 용왕, 칠성, 그리고 조상신, 장군신, 터주신으로 위상을 나열할 수 있습니다.다만 누가 더 세다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신에 따른 영역과 역할을 맡는다고 보는게 정확할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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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이 1970년대 이전부터 주력이었던 기술력 분야는 뭐가 있나여?
중국은 20세기 들어서면서 열강의 침략으로 청이 붕괴되고, 혁명의 연속이었습니다. 청나라 말기의 혼란, 군벌의 혼전 일본의 침략과 항일전쟁, 이후 공산 혁명과 대약진 운동, 문화 대혁명으로 이어지면서 사회 전체가 흔들렸습니다. 1900~1970년대 중국은 전통 기술보다는 산업화 기반 기술을 확대하고, 국가 주도 과학 기술을 강화하였습니다. 특히 해방 이후 중국은 철강, 기계, 에너지, 운송, 국방 분야 기술을 집중 육성하였습니다. 이 시기의 중국은 지금처럼 소비재, 첨단 IT 강국이 아닌 자립형 공업 기반 국가를 만들기 위한 기술 축적 단계라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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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 가신분 기제사 날자를 알고 싶습니다.
2025년 7월 20일 돌아가셨다면, 2026년 7월 20일 기제사를 지냅니다. 일반적으로 음력 기일 기준으로 지내는 집안이 많아 양력 7월 20일이 아니라 음력에 맞춰 매년 변경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최근에는 양력으로 지내는 분들도 많습니다. 보통 '자시'(11시~01) 사이에 지내는데, 전날밤으로 인힉할 수도 있지만 사실 자시는 전날밤이 아니라 기일로 넘어가는 시점에 해당합니다. 즉, 당일 기준의 첫 시간에 지내는 것입니다. 하지만 최근에는 가족 편의상 기일 전날 밤, 기일 자시(자정무렵), 혹은 기일 저녁으로 합의하여 지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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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는 어떻게 훨씬 강대한 페르시아 제국을 상대로 승리할 수 있었나요?
페르시아 전쟁에서 그리스가 승리할 수 있었던 것은 우선 시민주의를 바탕으로 한 그리스 체제의 승리입니다. 특히 아테네는 시민 중심의 중장보병이 단단한 전열로 페르시아 대군을 상대하였습니다. 자유 시민이 폴리스 체제가 전제적 제국에서 맞서 버틴 전쟁에서 승리한 것으로 훗날 아테네 민주정의 발전으로 이어졌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는 자신들에게 유리한 조선으로 바꿔 승리하였습니다. 즉, 그리스는 정면 승부를 힘으로 멎선 것이 아니라 지형, 전술, 기민한 지휘로 상대의 강점을 약화시켰습니다. 또한 페르시아는 거대한 제국이라 병력은 많았지만 멀리 떨어진 원정군이어서 보급과 지휘 통제가 불리했습니다. 반면 그리스는 자기 땅에서 싸우며 지역 지형을 잘 이용해 승리할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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