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시대 골동품중 환두대두 쌍용조각
"환두대도"를 사용한 주인공은 신라의 왕실, 최고위층에 속한 인물일 가능성이 큽니다. 환두대도는 손잡이 끝에 고리가 달린 큰 칼로 삼국시대 무덤에서 주로 출토됩니다. 특히 순금으로 된 둥근 고리, 두마리용, 옥장식은 신라 환두대도의 특징이며, 용 문양이 들어간 것은 가장 높은 계층과 연결됩니다.또한 칼집이 화려하게 장식된 점은 실전용 무기라기보다는 의장용, 권위용의으로써 성격이 강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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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역사에서 유방과 유비는 서로 어떻게 다른 인물인가요?
유방과 유비는 같은 묘금도 유씨이지만 활약 시기는 다릅니다. 유방은 진의 멸망 이후 초한전쟁에서 승리해 한나라를 세운 창업자이며, 유비는 후한말 삼국시대에 촉한을 세웠지만 천하통일에는 실패한 인물입니다. 성향적으로도 유방은 현실적이고, 실리적인 인물이라면, 유비는 의리와 명분을 중시하였습니다.하지만 공통점으로는 둘다 유씨, 낮은 출신, 사람을 얻는 능력, 혼란 시기에 새 질서를 세우려한 인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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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으로 왼손잡이들이 세상을 바꾼다거나 큰일을 했다고 하는데 맞는 건가요?
역사적으로 '왼손잡이들이 세상을 바꿨다'라는 말은 실제와 다릅니다. 왼손잡이는 전체 인구의 10%안팎인데, 유명 인물 목록에 자주 언급되기도 합니다. 알렉산드로스, 나폴레옹, 카이사르 같은 인물이 왼손잡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눈에 띄는 인물만 골라 보는 편향 때문이라 생각합니다."왼손잡이가 역사를 바꿨다"라는 말은 눈에 띄는 인물이 많아 보이기 하지만 왼손잡이라서 세상을 바꿨다는 일반화하기에는 어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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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MZ들이 쓰는 핫한 말, 단어같은 거 알려주세요.
답변자가 MZ 세대가 아니기 때문에 주변 청소년으로부터 엿들을 것을 참고하면 '사갈'이란 단어가 생각나네요. 사갈은 어이없거나 짜증날 쓰는 말이라고 하네요. 그리고 '밤티'는 촌스럽거나 퀄러티가 별로라는 뜻이며, '난리자베스'는 상황이 아주 난장판이거나 크게 소란스러울 때 하는 말입니다. 그리고 누군가의 상태나 모습을 그대로 오래 간직하고 싶다는 의미로 '동결건조'라는 단어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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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사오적은 대한제국에서 어떤 일을 하던 사람들이었나요?
을사오적에 해당하는 학부대신 이완용, 군부대신 이근택, 내부대신 이지용, 외부대신 박제순, 농상공대신 권중현은 을사늑약 조인에 동조한 관료들입니다. 직책 그대로 학부대신 이완용은 오늘날의 교육부 장관으로서 학문, 학교, 인재 양성을 맡은 책임자입니다. 그리고 군부대신 이근택은 국방부 장관이라 보면됩니다. 내부대신은 오늘날로 보면 내무, 행정, 치안을 담당하는 행정자치부장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외부대신 박제순은 외교부장관이고, 농상공부대신 권중현은 농업, 상업, 공업 등을 담당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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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전 세계의 신화나 전설 속에는 공통적으로 '거인' 이야기가 등장할까요?
좋은 질문이네요. 신화에서는 거인들이 반복적으로 등장합니다. 우선 인간이 본능적으로 큰 존재를 두려워하는데, 특히 거인은 압도적인 힘, 통제할 수 없는 개체로 상징하는 존재로 자연스럽게 생긴 것입니다. 또한 인간 마음 속에서 거인과 같은 거대한 존재, 압도적 적, 시련을 주는 존재로 오래전부터 공통적으로 집단 무의식으로 자리 잡아 왔습니다. 동시에 큰 화석이나 지형을 보고 상상한 결과로 거인을 신화에 포함시킨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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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경황후의 정치적 역할과 역사적 평가는 무엇인가요?
여흥 민씨 가문 출신인 원경왕후는 이방원이 권력 투쟁을 벌일 때마다 지지 세력으로 중요한 역할을 하였습니다. 조선 초기 혼란한 정국에서 왕자의 난 이후 이방원의 입지를 강화하는 데 조력하였습니다. 하지만 이방원이 즉위한 이후 태종이 외척을 견제하는 과정에서 원경왕후의 친정까지 피해를 입었으며, 이 과정에서 부부관계도 흔들렸습니다. 따라서 태종과의 관계에서 원경왕후는 초기에는 동지였지만 왕권이 굳어질 수록 갈등이 함께 존재한 관계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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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 전의 상황에 대한 통신사에 대하여
김성일을 매국노로 보는 것은 무리입니다. 서인계 정사 황윤길은 전쟁 가능성을 높게 보았으나 남인계 부사 김성일은 가능성이 낮다고 판단하고, 이를 선조에게 보고했습니다. 그렇다고 김성일의 오판이 곧 매국이라는 단정을 과합니다. 두 사람이 본 히데요시의 인상과 정세를 다르게 해석했던 것이고, 당시 붕당간의 갈등이 반영된 것입니다. 그리고 임진왜란 발발 이후 파직되었다가 다시 복직되어 항전을 독려하였습니다. 그리고 통신사 정사는 보통 정3품 당상관에 해당하며 홍색 계열 공복, 부사는 정3품 당하관에 해당하며 청색 계열 공복을 착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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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세계사시험 결과를 못 믿겠어요...
1206년 징기즈칸에 의해 몽골 제국이 성립되었으며, 이후 영토 확장 과정에서 원과 여러개의 울루스로 분할되었습니다. 특히 1271년 쿠빌라이칸이 대도(베이징)를 수도로 원을 수립하여 중국을 지배했습니다. 하지만 원나라 말기 라마교에 대한 광신과 교초의 난발로 재정 문란, 몽골인 제일주의에 따른 이민족의 반발로 이어졌으며, 결국 1368년 홍건적의 난으로 멸망하였습니다. 교과서 기술에서 북쪽으로 밀려났다고 하나 사실은 멸망으로 해석되어야 합니다. 즉 원은 중국 대륙을 지배한 제국이지만, 북원은 원의 후계 정권으로 몽골 고원으로 국한됩니다. 이후 중국은 원을 대시하여 명이 지배합니다. 따라서 5번 선지도 맞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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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해와 거란이 계속적으로 대립한 가장 큰 이유는 무엇인가요?
발해와 거란은 북방의 초원지대의 패권을 놓고 경쟁 관계였습니다. 발해는 만주와 연해주 일대에서 강한 국가였으며, 거란은 서쪽, 북서쪽에서 성장한 유목 세력이어서 활동 무대가 겹칩니다. 그런데 9세기 거란이 성장하면서 발해에 위협적인 수준이 되었습니다. 즉 발해와 거란의 초원 패권 경쟁과 거란의 급성장이 두 나라의 적대적 관계를 강화시킨 것으로 추정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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