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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란장수 소배압은 어떤 인물인지요?
안녕하세요. 유영화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소배압은 거란 경종의 딸인 위국공주와 결혼하여 사위가 되었으며, 소손녕의 형입니다. 몽골족 정벌에 공을 세웠으며, 986년 하북으로 진격해온 송나라 군대를 격파하였습니다. 1010년 거란의 2차 침입 당시 개경을 점령하고, 1018년 3차 침입시 10만 대군을 지휘하였으나 강감찬의 귀주 대첩으로 대패하여 귀국후 파면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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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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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조 재위시기 시행한 균역법은 양반은 군포 부담이 제외되었는데, 왜 균역법인가요?
안녕하세요. 유영화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영조시기 일반 백성의 군역 부담이 늘어나자 양역을 변통하여 개혁을 시도했습니다. 특히 결포론, 호포론 등 면제자들도 부담을 지게하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초기 계획은 시행 반 년 만에 큰 반발을 불러왔습니다. 결국 군역 부담을 줄여주는 감포론이 대세가 되었습니다. 즉 양인이 부담해야 할 군포를 2필에서 1필로 줄여 주고, 부족한 양만큼 보충하는 형태였습니다. 그런데 새로 양역을 지게 된 선무군관들이나 어염세, 선세를 거두고 있던 궁방(宮房) 등에서 불만을 토로해왔습니다. 결국 영조는 기존의 균역법 내용을 다시 보완하여 1751년(영조 27) 9월에 균역법을 공포하게 되었습니다.균역법 시행에 따라 양인의 군역 부담은 2필에서 1필로 줄였고, 기존에 각 궁방이나 아문이 점유하고 있던 어염세, 선세를 중앙 기관에서 수취하게 되면서 특정 기구의 특권을 없앴으며, 상층 양인들에게 선무군관이라 하여 군포 부담을 확대했습니다. 비록 양반은 제외되었지만 개인마다 약간씩 차이가 있던 군포 부담을 1필로 확정한 것 역시 양인들 간의 부담을 균등하게 한 성과가 있었기 때문에 균역법이라 칭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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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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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에는 사람이 태어나면서부터 신분이 정해져 있었나요?
안녕하세요. 유영화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조선시대는 양천이 구분되고, 세부적으로 반상제(양반, 중인, 상민, 천민)가 존재했습니다. 즉 태어나면서 부터 신분이 정해진 귀속지위입니다. 다만 고대, 중세 시대에 비해서는 신분 이동이 가능한 개방사회였습니다. 특히 조선 후기는 군공, 공명첩, 납속 이외에도 족보 매입 및 위조, 도망 등으로 신분 이동이 가능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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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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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석기 시대에는 어떤 유형의 자산이 가치가 있었을까요?
안녕하세요. 유영화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구석기 시대는 생존을 위한 것들이 가치가 있을 것으로 판단됩니다. 일단 먹거리가 최고 중요하죠. 당시는 먹이를 찾아 이동했으니 음식이 최고 가티입니다. 두번째는 자신을 지키는 수단이 중요했을 것입니다. 호신도구, 옷 등이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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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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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는 왜 신탁통치를 받아야 했나요?
안녕하세요. 유영화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1943년 12월 2차세계 대전중에 미국, 영국, 중국의 수뇌들이 한국의 독립을 약속했으나 '적절한 절차를 거쳐'를 붙였습니다. 여기서 신탁통치를 염두해 두었을 것으로 판단합니다. 그리고 광복 직후 1945년 모스크바 3상 회의에서 5년간의 신탁통치를 합의했어요.그러나 한국 임시정부 수립을 논의하기 위한 미소공동위원회가 결렬되고 모스크바 합의도 무산되면서 신탁통치도 폐기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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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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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조왕건이 고려를 건국하면서 후세에게 남긴 열가지 당부는 무엇인가요
안녕하세요. 유영화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훈요 10조는 태조 왕건이 후손에게 남긴 유언으로 나라를 다스리는 데 새겨야 할 내용을 요약한 것입니다. 제1조와 제2조는 함부로 불교 사원을 세우지 말고 도선(道詵)이 정해 놓은 곳에만 짓도록 해 불교에 대한 우대와 동시에 통제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제3조는 왕위 계승에 관한 것으로, 적장자가 왕위 계승자로 적절하지 못할 경우 차자(次子)나 형제 중에서라도 계승시킬 것을 당부하였습니다. 제4조는 중국 문화를 존중하면서도 무조건 따라서는 안 된다며 고려 고유 문화를 중시하는 의식을 담고 있고, 특히 거란에 대한 강한 경계심을 보이고 있습니다. 제5조에서는 서경(西京)이 지맥의 근본이므로 국왕이 그곳에 일정 기간 머무를 것을 당부하였고, 제6조는 연등회(燃燈會)와 팔관회(八關會)를 꼭 실천하라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제7조와 제9조에서는 인사와 상벌을 공정히 하고, 직언하는 신하를 가까이 둘 것이며, 백성들의 부역을 적절히 하고 군대를 소홀히 하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제8조는 가장 논란이 많은 조항인데, 차현(車峴) 이남 공주강(公州江) 바깥이 배역(背逆)의 지세이므로 이들 지역 사람을 등용하지 말고, 노비나 잡척(雜尺)을 함부로 등용하지 말라고 하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제10조는 경사(經史) 서적을 널리 보아야 하는데, 특히 '서경(書經)'의 무일편(無逸篇)을 그림으로 그려 붙여 드나들 때마다 보면서 반성하도록 당부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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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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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녀들도 계급이 있었나요? 체계가 어떻게 되었는지 궁금합니다
안녕하세요. 유영화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궁녀의 품계는 내명부의 위계에 따라 후궁 이하 품계인 정5품부터 받았습니다.정5품의 상궁(尙宮), 상의(尙儀), 종5품의 상복(尙服), 상식(尙食), 정6품의 상침(尙寢), 상공(尙功), 종6품의 상정(尙正), 상기(尙記), 정7품의 전빈(典賓), 전의(典依), 전선(典膳), 종7품의 전설(典設), 전제(典製), 전언(典言), 정8품의 전찬(典贊), 전식(典飾), 전약(典藥), 종8품의 전등(典燈), 전채(典彩), 전정(典正), 정9품의 주궁(奏宮), 주상(奏商), 주각(奏角), 종9품의 주변치, 주치, 주우(奏羽), 주변궁(奏變宮)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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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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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트리아와 독일은 같은 민족인가요? 같다면 왜 분리되었나요
안녕하세요. 유영화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독일과 오스트리아는 과거 신성로마제국의 구성원으로 허울만 하나의 국가였지 중세 봉건 영주가 독자적 지배권을 가진 독립 국가의 연합체였습니다. 당시 독일 지역은 프로이센의 비스마르크가 1871년 독일 제국을 건설하기 전까지만 해도 '독일'이라는 개념 조차 없었습니다. 신성로마 제국의 몰락 이후 독일의 통일을 이룬 호엔촐레른, 오스트리아는 헝거리와 크로아티아 지역을 통합하여 합스부르크 중심의 서로 다른 왕조로 분립되어 있었습니다.정치적으로 히틀러 집권 시기에 두 나라는 통합된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는 히틀러가 무리하게 강행된 거서으로 독일과 오스트리아 통합을 나치 잔재로 보는 시각이 있습니다. 2차 대전이 종료된 이후에 승전국에 의해 두 나라는 분단되었지만 이후 독일은 공산주의를 막기위해 NATO의 중심으로, 오스트리아는 영세중립국을 선언하여 NATO에도 미가입 상태입니다. 그러나 두나라 모두 EU 회원국으로 정치적 통일의 의미가 크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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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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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의 서당은 아무나 설립할 수 있었나요?
안녕하세요. 유영화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조선시대 서당의 설립과 운영에 대해서는 관의 지원을 최대한 배제하고, 지역의 백성들의 공동체적 일체감 속에서 민간 자산으로 이루어졌습니다. 또한 사족들의 향촌에 대한 지배력을 강화하기 위해 설립하기도 하였습니다. 설립과 운영의 형태로는 훈작 독영, 유지 독영, 조합 형태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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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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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로마 신화의 트로이 목자 작전은 실존 역사인가요?
안녕하세요. 유영화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트로이 목마와 관련된 신화는 고대 그리스 시대에 활동하던 유랑시인 ‘호메로스(BC 800?~750)’가 남긴 서사시, ‘일리아스’에를 바탕으로 전해져 내려오는 이야기입니다. 10년이나 계속된 전쟁에서 승리할 수 없었던 그리스군은 목마를 만들어 병사들을 숨긴채 되돌아 가고 트로이는 전리품으로 알고 의기양양 목마를 성안으로 끌고 들어갑니다. 결국 트로이 목마에 숨어 있던 그리스 병사들이 나와 트로이성을 함락합니다. 신화로만 여겼던 트로이 전쟁에 대해 19세기 후반, 독일의 사업가 하인리히 슐리만은 이 이야기가 진짜라고 믿고, 언젠가는 트로이 전쟁이 진짜 있었다는 사실을 밝혀내리라는 꿈을 꿨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1870년, 아나톨리아 북서부에서 드디어 트로이 유적지를 발견했습니다. 비록 트로이 목마는 신화로 과정된 부분이 있지만 트로이 전쟁은 사실일 가능성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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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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