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때는 남녀결혼시 남자와여자쪽중 어디서 혼수를 장만했나요
고구려시대 결혼시 혼수로 신랑집에서 돼지고기와 술을 보내는 풍습이 있었습니다. 이는 재물을 주고 받는 것을 부끄럽게 여겼기 때문입니다. 혼수로는 수의를 준비하는 경우도 있었는데, 이는 죽을 때까지 부부의 예를 다하자는 의미로 해석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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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라는 소설은 정말 실존한 내용인가요?
<삼국지연의>는 정사 <삼국지>를 바탕으로 하여 명나라 시기 나관중이 쓴 소설입니다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하고 있으나 민담, 설화가 결합되었으며, 작각의 허구가 가미된 것입니다. 70%는 역사적 사실이지만 나머지 30%는 허구로 구성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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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에서는 삼별초의 난에 대해 어떻게 평가했나요?
몽골의 지배에 대한 저항으로 전개한 삼별초의 항쟁에 대한 시각은 다양합니다. 우선 삼별초의 항쟁을 자주성의 의지로 평가받고 있는 것입니다. 이는 정부와 몽골군에 대한 투쟁 의지가 고려인의 자주성과 민중 의지를 표현한 것이며, 민중 사회 내부에 고양되었다는 점에서 역사적 의미가 있습니다. 또 다른 평가는 무신정권의 사병으로 무신정권의 붕괴에 따른 권력 유지 수단에 불과한 행위였다는 주장입니다. 이는 삼별초가 무신정권을 지탱하는 군사력으로 이용했기 때문입니다.
3.0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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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성총관부는 어떠한 것인지 궁금합니다.
쌍성총관부는 1258년부터 1356년까지 몽골이 철령 이북 지역인 동북면에 설치한 통치 기구입니다. 쌍성총관부는 원나라 간섭기에 직접 통치하였으며, 고려를 견제하는 역할을 했습니다.이 지역은 조휘와 탁청이 몽골에 투항하면서 원의 직할령이 되었고, 그 후 조휘의 가문이 총관직을 세습하여 영향력을 행사했습니다. 공민왕이 반원 자주 정책이 시행되면서 1356년 무력 정벌로 수복되면서 폐지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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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해서 나라가 없어져버린 나라가 있을까요?
과도한 부채로 소멸한 국간느 20세기 존재하지 않습니다. 다만 2001년 아르헨티나는 심각한 외채 문제로 인해 국가 부도가 선언되었고 이는 경제적 혼란을 초래되었습니다. 비록 국가 위기 사태로 가져왔지만 국가 소멸로 이어지지는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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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의 국호가 고려였다고 하는데요. 사실인지 알려주세요.
고구려가 '고려'로 국호를 사용한 것은 5세기 장수왕 때 개칭한 것으로 추정합니다. 이 시기 고구려는 국력을 강화하고, 수도를 평양을 천도하였습니다. 이를 통해 국가의 변화를 추진하였으며, 국호 변경도 그 일환으로 추진된 것입니다.
5.0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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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지 유신은 어떻게 막부를 이겨내고 성공했나요?
메이지 유신이 성공할 수 있었던 요인은 개항 이후 막부의 권위가 약화되고, 반막주 세력이 성장했습니다. 또한 불평등 조약 체결 등 외세의 압박으로 막부에 대한 불만을 증폭시켰습니다. 그리고 '존왕양이'를 사상과 같은 이념이 확산되면서 천황 중심의 국가 체제를 지지하는 세력이 늘어났습니다. 결국 사쓰마와 조슈번 등의 연합 세력이 막부를 타도하고 천황 중심의 정부 수립할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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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계는 왜 위화도에서 회군을 하였을 까요?
1388년 이성계가 요동정벌을 위해 출정하였지만 위화도에서 회군하였습니다. 그리고 개경으로 진격하여 우왕과 최영을 제거하고 군사권을 장악하였습니다.그는 여동 출정 전에도 4불가론을 내세우며 요동 정벌에 반대 입장을 표명했습니다. 어쩔수 없이 출정을 하였지만 압록강 도하 중 큰 비로 인해 군대가 어려움에 쳐하자 독단적으로 회군을 결심한 것입니다. 즉 위화도 회군의 배경은 평소 4불가론에 따른 요동 정벌 불가 입장도 있지만 군사적 실권을 장악하기 위한 의도가 반영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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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불대왕은 어느 왕을 가리키는 것인가요?
'을불'은 고구려 13대 왕인 미천왕의 본명입니다. 그의 아버지 돌고가 봉상왕에 의해 처형된 이후 도망쳐 수실촌의 음모의 집에서 머슴살이를 하며 고생했습니다. 이후 소금장수로 생계를 이어가던 , 압록강 변의 노파와 갈등으로 도둑으로 몰려 태형을 받고 소금을 빼앗겼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신분을 숨기고 지내다가 국상 창조리의 도움으로 왕에 즉위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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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에서 무협이라는 장르가 처음 만들어진건가요?
중국에서 무협은 기원전부터 기원하지만 본격적인 형태는 한나라 시기 확립됩니다. <사기>에 실린 자객열전과 같은 고대 문헌에서 시작된 것으로 여겨집니다. 그리고 당나라 <규염객전>, 송나라 시기에 도시의 발전과 함께 무림이라는 개념이 형성되고 협객과 호협의 문화가 발전하였습니다. 명나라 시대의 <수호전>도 무협 장르의 원류로 간주합니다. 그리고 오늘날의 무협 소설의 시작은 20세기 초반으로 1920년부터 대중 문화로 자리잡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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