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원폭을 투하하기 위한 후보지로 고른 다섯 도시는 어디였나요?
미국이 태평양 전쟁 당시 원폭 후보지로는 히로시마, 고쿠라, 교토 등지였습니다. 도쿄나 오사카는 미 항공대의 융단 폭격으로 원자폭탄의 위력을 보여주지 못할 정도로 이미 박살난 상태였습니다. 이 외로 나가사키는 포함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협의를 거쳐 일본인의 문화적 역사적 정체성을 담고 있는 교토는 폭격 대상에서 제외되고 나가사키를 선정했습니다. 다양한 협의 끝에 히로시마, 고쿠라, 나가사키, 니카타 4곳으로 좁혀졌습니다. 교토까지 포함하면 5곳이라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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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라고 하면 천주교를 말하는건가요?
크리스트교, 즉 기독교는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따른 종교의 총칭을 말합니다. 그런데 1054년 로마 교회를 중심으로 하는 로마 가톨릭과 그리스정교회로 나누어졌습니다. 그리고 로마 교황을 수장하는 로마 가톨릭은 우리나라에서는 우리나라에서는 천주교로 합니다. 반면에 16세기 종교 개혁을 통해 천주교에서 분리된 교단을 개신교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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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대전 때 유럽전선에서 노르망디 상륙작전 이후 공방전을 연합군이 완전히 승기를 잡은 건 어떤 전투에서였나요?
노르망디 상륙작전 이후 1944년 7월 25일부터 8월 21까지 전개된 '생로 돌출부 전투'는 2차 대전의 서부 전선에서 중요한 전환점이 된 전투입니다. 이 전투는 노르망디 지역의 생로 인근에서 미군이 독일군 방어선을 돌파하여 독일군을 포위하였습니다. 대규모 공중 포격을 통해 독일군 방어선을 약화시켰으며, 기갑 부대를 이용한 신속한 기동전으로 독일군 후방을 차단하였습니다.생로 돌출부 전투로 독일군 5만명이 포로가 되었으며, 연합군의 프랑스 내륙 진격을 가속화하여 파리 해방의 길을 열어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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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대전 당시 연합국의 수뇌부들이 모여서 전행했던 회담들은 무엇이 있나요?
2차 대전 중 연합국 수뇌부들은 전후 평화 질서를 위해 여러 차례 회담을 열었습니다. 그 예로 루스벨트, 처칠 , 장제스가 참석한 카이로 회담(1943.11.22)에 이어 1943년 11월 28일(~12월 1일) 테헤란 회담으로 루스벨트, 처칠, 스탈린이 주도했습니다. 그리고 얄타 회담은 1945년 2월 4일(~11일)에 루스벨트, 처칠, 스탈린이 전후 독일 처리, 소련의 대일전 참전, 유엔 창설을 논의했습니다. 그리고 1945년 7월 17일(~8월 2일)에 포츠담에서 트루먼, 처칠(에틀리), 스탈린이 독일의 처리, 폴란드 서부 국경선 확정, 일본에 대한 항복 요구를 위해 열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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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대전 당시 독일이 항복 문서에 서명한 날은 언제인가요?
프랑스 랭스에서 1945년 5월 7일 독일군 총참모장 알프레드 요들 장군이 연합국에 항복 문서에 서명했습니다. 그러나 소련이 5월 7일 항복을 인정하지 않아 베를린에서 다시 5월 8일(소련에서는 5월 9일) 독일 국방군 최고 사령부를 대표하여 빌헬름 카이텔 원수가 다시 한번 항복 문서에 서명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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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대전 당시 독일의 괴벨스는 어떻게 히틀러에게 발탁이 됐나요?
괴벨스는 탁월한 연설가이자 선전가로 그의 수사학적 기술과 대중 조작 능력을 히틀러는 높이 평가했습니다. 특히 미디어 활용 능력이 뛰어났습니다. 또한 괴벨스는 나치즘의 이념을 깊이 이해하고 열정적으로 지지하였으며, 반 유대주의는 히틀러의 이념과 일치하고 신임을 얻는데 중요했습니다. 그리고 괴벨스는 베를린에서 나치당의 영향력을 크게 확대하였는데 이는 그의 조직력과 리더십을 보여주는 것이었습니다. 이와 같은 이유로 괴벨스는 선전부 장관으로 발탁되어 히틀러의 핵심 측근이 될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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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한 말기 사람들은 왜 동탁을 인정하지 못했을까요?
우선 소제를 폐위하고 어린 유럽(헌제) 을 세웠는데 이를 원소는 가짜 황제로 간주했습니다. 즉 동탁을 찬탈자로 여긴 것입니다. 그리고 원소는 유우를 대립황제로 세워 헌제의 정통성을 부정한 것입니다. 동탁은 반대 세력의 공격을 피해 뤄양에서 장안으로 천도했습니다. 이는 수도를 포기하고 도망친 것으로 인식되었습니다.
4.7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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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야는 철의 나라라고 하는데, 가야에서 철은 어디에서 나온 것인가요?
가야는 철의 나라라 할 정도로 철 생산이 많아 덩이쇠를 낙랑, 왜에 수출하도 했습니다. 김해 지역은 금관 가야의 중심지로 철 생산지 중 하나입니다. 출토되는 유물에는 철기 제품이 많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경남 성산 패총 네 곳에서 철이 녹아 내린 흔적이 발견되었습니다. 야철 송풍관, 노지, 쇳물이 흘러낼 수 있도록 경사지 홈통 등이 발굴되어 야철 흔적을 입증합니다. 그 외에도 경남 다호리, 장수 지역에서 철을 생산한 흔적을 엿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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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서 발견된 땅꿀은 몇개인가요?
우리나라가 공식적으로 발견한 땅굴은 총 4개입니다. 제 1 땅굴은 1974년 11월 5일 연천군, 제 2땅굴은 1975년 3월 강원도 철원군, 그리고 제 3땅굴은 1978년 10월 17일 경기도 파주시에서 발견되었습니다. 그리고 1990년 3월 양구 북동방 26km 비무장지대 안에서 깊이 145m의 땅굴이 발견되었습니다.미국 해병대가 1997년에 발간한 <북한 핸드북>에 따르면 약 20개의 남침용 땅굴이 있을 것으로 추정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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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은 어떤 이유로 세계적인 화약고가 되었나요?
중동은 오랜 역사동안 다양한 민족과 종교, 문화가 공존해온 곳입니다. 특히 종교적으로 이슬람교의 수니파와 시아파의 오랜 대립과 이슬람교와 유대교, 기독교 간의 갈등이 지속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중동은 석유 자원이 풍부해 이를 둘러싸고 국제적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습니다. 정치적으로 중동은 독재 정권이 뿌리깊고, 민주 화 요구 사이의 갈등, 쿠데타, 내전 등으로 인한 정치적 불안정이 지속되고 있으며, 영토분쟁도 끊임없습니다. 이 와중에 미국, 러시아, 중국 등 강대국의 이해관계가 충돌되어 복잡한 정세를 형성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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