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박문수는 왜 광인으로 불렸던 건가요?
박문수는 조선 영조 당시 암행어사로 활약한 정치인입니다. 그가 광인, 즉 미치광이로 불리게 된 것은 그의 독특한 행보때문입니다. 그는 양반들이 꺼리는 육체 노동을 직접 했으며, 이는 양반들에게 미친놈이라고 불릴만했습니다. 또한 그는 암행어사로 부패한 관리를 엄격하고 단호하게 처벌하고 때로는 과격하게 보여 미친 사람처럼 보였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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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보고는 어떻게 장군까지 될수있었나요?
장보고가 장군이 되게 된 배경은 비록 평민 출신이지만 뛰어난 군사적 재능과 당나라에서 활약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그는 당으로 건너가 물여군에 입대하고 뛰어난 무예 능력으로 무령군 소장의 자리에 오르게 됩니다. 또한 장보고는 산둥성 일대의 해적을 소탕했으며, 신라로 돌아와 청해진 대사로 임명되어 1만명의 병사를 거느리고 해상무역을 관할하면서 장군이라 부르게 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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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에서 루이 14세는 태양왕으로 불리는데 어떤 이유가 있나요?
루이 14세가 태양왕으로 불리게된 것은 1653년 '태양의 축제'에서 루이 14세가 태양신 아폴로를 연기한 것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이로 인해 그가 태양왕이라는 불리게 된 것입니다. 게다가 루이 14세는 왕권신수설을 믿었는데, 자신의 권력을 태양에 비유하여 절대적인 권력을 상징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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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수수 개발의 기원을 알고 싶습니다.
옥수수는 약 9000년 전에 멕시코에서 기원한 것입니다. 원래 옥수수는 테오신테라는 잡초인데, 인간에 의해 선택적 교배를 통해 현재의 옥수수로 진화된 것입니다.옥수수는 멕시코에서 시작되어 북미 대륙으로, 그리고 콜럼버스에 의해 유럽을 전파되어 세계로 확산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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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길동전의 저자 허균은 무슨 일로 사형을 당했나요?
허균은 1618년 광해군 시기에 역모 혐의로 처형됩니다. 당시 허균은 계급 사회의 모순을 비판하고 서얼들과 어울렸는데, 당시 지배층에게는 위협적인 행태로 비춰졌습니다.그 와중에 남대문에 '포악한 임금을 벌하러 하남 대장군이 온다'리는 벽서가 발견되었으며, 벽서를 붙인 사람이 허균의 심복으로 밝혀지는 사건이 발생합니다. 이 사건으로 인해 허균은 역적으로 몰려 능지처참으로 처형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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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대에는 핸드폰이 없었는데 어떻게 사람들이 약속을 어떻게 잡고 만났을까요?
1980년대 약속을 잡는 방식으로는 주로 집전화나 공중전화 등 유선전화를 사용하여 사전에 약속을 잡는 것입니다. 또는 편지를 통해 사전에 약속을 잡기도 했습니다. 혹은 특정 장소와 시간을 정해 약속을 잡는 경우도 있습니다. 당시로는 약속을 잡고 성사에는 많은 노력과 정성이 들어가야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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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 초기의 5부족에는 어떤 세력이 포함이 되나요?
고구려는 5부족 연맹 체제로 초기부터 중요한 정치적 구조였습니다. 이들은 각자 독자적인 자치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5부족으로는 계루부, 절노부, 순노부, 관노부, 연노부에 해당됩니다. 태조왕 때부터 계루부가 고구려 중심 세력으로 자리잡았습니다. 그러나 고국천왕왕 혈연적인 부족제를 행정적 부족제로 개편되어 동부, 서부, 남부, 북부, 중부로 바뀌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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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 발전과정에서 중세시대가 빠진 이유는 무엇인가요?
민주 정치의 기원은 고대 그리스의 아테네입니다. 그리고 로마 시대 공화정이 발전하면서 평민권이 신장되었으나 제정으로 변화되었습니다. 중세 유럽은 주종 관계에 따른 봉건제도가 발전했습니다. 당시 중앙집권화가 추진되고 왕권이 강화되었으며, 16~18세기 절대왕정이 성립되었습니다. 그런데, 중세 시대 봉건세력과 별도로 상공업이 발달하면서 시민이 성장하고 이들은 절대왕정과 봉건세력에 대항하면서 시민혁명을 일으킵니다. 시민혁명으로 통해 자유와 평등의 기본권이 보장과 더불어 민주정치가 발달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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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일제 강점기때에 일본이 우리나라에 점령못한곳이 있었나요.
일제강점기는 1910년 8월 29일 한일병합조약에 의해 한반도 전체를 일본 제국에 통치를 한 것으로 모든 지역이 일본의 지배에 들어간 것입니다. 따라서 일본의 영향력에서 벗어난 곳은 없다고 보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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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빙사로 파견이 됐었던 조선의 관리는 누가 있었나요?
1882년 5월 미국과 체결한 조미수호통상조약을 체결하고 미국에 1883년 파견된 보빙사를 파견하였습니다.전권대사에 민영익, 부대신에 홍영식, 종사관에 서광범, 수행원으로 유길준과 변수가 파견되었습니다. 이들은 1883년 7월 16일 인천을 출발하여 미국으로 향하였고, 미국에서 약 40일동안 머물다 1883년 11월 21일 귀국했습니다. 민영익은 유럽을 돌아보고 1884년 5월 31일, 유길준은 미국에서 유학을 마치고 유럽을 시찰한 후 1884년 9월에 귀국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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