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교육은 언제부터 시키면 이해가 가능한가요?
역사 교육과 아이의 발달 수준에 맞게 실시하는 것이 좋습니다. 역사 교육은 초등학교 시기에 시작하는 것이 적절합니다. 이때는 기초적인 역사적 사실과 개념을 배우고 역사를 통해 사고와 통찰력을 키울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역사적 사건이나 인물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위인전, 박물관 방문이 적절합니다. 또한 만화책과 그림책을 활용해도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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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광역시 연수구 선학동 문화유적지는?
인천시 연수구 선학동의 문화 유산으로는 '선학동 느티나무'는 오랜 세월동안 이 지역의 상징적인 나무로 3그루 가운데 가운데는 수령이 516년이나 됩니다. 그리고 갈마산 남쪽 기슭에 부평이씨 정량공파의 묘역이 있는데, 조선 인조와 효종 당시 무인이었던 이홍재를 중시조로 한 정량공파의 후손들이 안장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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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가 삼국통일을 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인가요?
신라가 삼국통일을 한 이유는 우선 외교적 성과입니다. 신라는 백제, 고구려의 압력을 외교적인 역량으로 해결했는데 648년 나당 동맹군의 결성에 성공하여 660년 백제, 그리고 668년 고구려를 멸망시켰습니다. 그러나 당군이 한반도에 대한 지배 야욕을 부리자 국가적 단합을 통해 당군을 물리쳤습니다. 특히 이 과정에서 삼국의 역량을 합쳐 당군을 물리쳐 통일을 달성할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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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무왕의 능이 바다에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무당들의 굿터로 인기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문무왕은 삼국 통일을 완성한 국왕으로 그가 "바다에 무덤을 만들면 내가 용이 되어 왜적의 침임을 막겠다."라고 유언을 남겼다고 합니다. 그의 유언에 따라 681년 사망 이후 화장을 하여 동해의 큰 바위 위에 안정하였습니다. 이 바위는 현재 대왕암 또는 대왕바위라 합니다. 대왕바위가 무당의 굿터로 유명한 이유는 그 곳이 신성한 장소로 여겨지기 때문입니다. 즉 문무왕이 죽은 후에 바다의 용이 되어 나라를 지키겠다는 유언에 따라 장례를 치룬 곳이기에 특별히 의미가 있는 곳이라 여겨 무속인들에게 인기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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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명절 문화는 언제부터 시작된 것인가요?
우리나라의 설날은 고대 제천의례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신라 시대부터 설날을 지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단오는 음력 5월 5일 양기가 가장 왕성한 날로 여겼는데, 중국 초나라 충신 굴원이 간신들의 모함에 빠져 멱라수에 투신한 날을 기리기위해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수릿날이라 하여 파종을 마치고 풍년을 기원하면서 기풍제를 지냈다고 합니다. 중국의 단오가 전해졌지만 구체적인 행사와 내용은 한국의 토착적인 요소가 주류입니다.추석은 신라 3대 유리이사금 당시 금성의 부녀자들을 두편으로 나누어 길쌈 경기를 하였는데, 음력 8월 15일 판정을 내려 축제를 열었는데, 이를 '가배'라 하였다고 합니다. 가배가 한가위의 기원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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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이전에 우리나라는 중국과 일본을 제외한 다른 나라와는 교류가 없었나요?
조선은 중국, 일본 외에도 여진족, 류큐, 동남아시아 여러나라들과도 교류했습니다. 여진족과는 무역소를 설치하여 교류했으며, 북평관을 한양에 설치하기도 했습니다. 류큐는 사신을 보내고 조선의 문물을 수입해 갔습니다. 동남아시아의 시암(태국), 자바(인도네시아) 등과도 교류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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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는 왜 똑같은 실수를 반복을 하는 걸까요?
인류가 실수를 반복하는 것은 우선 '휴리스틱(Heuristic)' 때문입니다. 즉 인간의 뇌는 빠르게 결정을 내리기 위해 경험과 직관에 의존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는 복잡한 문제를 빠르게 해결해 주지만 때로는 잘못된 결정을 반복합니다. 또한 사람들은 확증 편향에 의해 같은 실수를 반복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다수의 의견에 동조하려는 경향이 강해지면 비합리적 결정을 내리게 됩니다. 인간의 뇌는 효율적으로 작동하기 위해 진화하였지만 동시에 실수를 반복하게 만드는 원인되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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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말하는것을 옛날말로 후라이친다고 하는데 왜 후라이 치지 말라고 하는건가요?
"후라이친다"라는 말은 은어로 '거짓말 하다' 또는 '허풍떨다'의 의미로 사용됩니다. 이 표현은 1970년대에 코미디언 곽규석 씨가 "후라이 보이"라는 별명으로 활동하면서 대중화되었습니다. 후라이 보이는 뻥까는 사람(뻥쟁이)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여기서 "후라이"는 영어 "fry"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이며, 여기서 "친다"는 한국어 동사로, "거짓말을 하다."라는 의미로 사용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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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빔밥은 언제부터 누가 만들어서 먹은걸까요?
비빔밥을 만들어 먹은 것에 대해서는 다양한 의견이 있으나 역사적으로 조선시대 세조 당시 '골동반'이라는 표현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골동반은 여러 재료를 섞어 만든 밥을 말합니다. 이때 ‘골동반’의 골은 섞을 골, 동은 간직할 동으로, 골동이란 여러 가지 물건을 한데 섞는 것을 말합니다.비빔밥이란 용어가 처음 등장한 문헌은 1890년대에 씌어진 <시의전서>입니다. ‘골동반’과 ‘부빔밥’을 병기한 이 책은 “밥에 모든 재료를 다 섞고 깨소금과 기름을 많이 넣어 비벼서 그릇에 담는다”고 요리법을 설명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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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 여성의 사회적 지위는 어떠했나요?
고려시대는 조선에 비해 상대적으로 여성의 지위가 높았습니다. 고려의 여성은 경제적으로, 그리고 가정내에서 남성과 거의 동등했습니다.여성 호주가 있었으며, 호적도 출생순으로 등재되었고 사위도 처가 호적에 실렸습니다. 그리고 처가살이가 일반적이고, 외손자도 음서의 혜택을 보았습니다. 재산 상속에서도 남녀의 차별이 없고, 제사도 윤회봉사를 하였습니다. 그리고 과부의 재가가 자유로웠으며, 재가하여 나은 자식도 차별하지 않았습니다. 여성의 차별이 거의 없었던 이유는 모계 중심이 사회 풍습이 남아 있었고, 성리학이 자리잡지 못해서 그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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