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혜옹주가 한국으로 귀국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인가요?
안녕하세요. 이기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1950년대 초반에 당시 『서울신문』 도쿄 특파원이었던 김을한이 병원에 입원 중이던 덕혜옹주를 방문하였다가 충격을 받아 반드시 귀국시켜야 한다고 결단하였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다가 1961년 11월 김을한이 당시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이었던 박정희를 만나, 병상에 있는 덕혜옹주와 영친왕이은의 사정에 대하여 이야기하면서 이들의 귀국은 빠르게 이루어졌습니다. 당시 최고 권력자였던 박정희 의장은 덕혜옹주와 영친왕이은 부부의 귀국을 적극 돕기로 결정하고, 이를 추진했고 덕혜옹주는 1962년 1월 26일 유모 변복동 및 상궁들, 그리고 옛 학교 친구의 마중을 받으며 37년 만에 한국에 돌아왔다고 합니다.생활은 낙선재에서 했으며, 서울대병원에서 입원했다가 이후 통원치료 할만큼 경과가 좋아졌었다고 합니다. 그러다 1989년 4월 21일 78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고 4월 25일 경기도 미금시 금곡동(金谷洞)에 있는 아버지 고종의 무덤인 홍유릉(洪裕陵)의 부속림에 안장되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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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시대 시기 신라는 왜 가장 늦게 중앙집권체제를 이루었나요?
안녕하세요. 이기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신라의 경우 특이한 부족국가의 형태로 시작하였는데, 그것이 박, 석, 김 성을 가진 핵심세력들이 돌아가면서 왕을 했습니다. 처음 박혁거세가 주위 6개의 부족을 통합하여 신라를 건국하고, 그 부족의 포섭을 위해 핵심되는 세력들이 번갈아가면서 왕을 했기 때문에 권력의 분산도 심했습니다. 그러나 이후 신라는 김씨성으로 왕족이 단일화되었고, 엄격하게 골품제라는 신분제도 내에서 승계를 해나가면서 권력도 집중되기 시작했습니다. 초기에 지도자를 '거서간(시조)→차차웅(무당)→이사금(왕,우두머리)→마립간(왕,우두머리)→왕'으로 당시 중국 및 주변국에서 사용하는 명칭으로 바꾸면서 중앙집권적 개혁을 추진합니다. 왕이라는 호칭은 문무왕 때부터 사용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이차돈의 순교를 기점으로 불교를 국교로 들이면서 종교를 이용하기도 하였습니다. 이러한 시기를 거치다보니 건국부터 단일 왕권을 가졌던 고구려나 백제보다 초기에는 발전이 더뎠던 것으로 보여집니다. 가장 늦은 시기에 중앙집권적 국가체제를 갖추었으나, 국력이 약했지만 외교력이 강했고, 이에 외교를 통해 국가의 위기를 넘기면서, 뒤로는 국력을 키워갔습니다. 그렇게 100% 삼국의 통일을 이루지는 못하였어도 당시 고구려, 백제, 신라의 3국 중 가장 마지막에 남아 한반도를 차지한 국가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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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베르 카뮈가 프랑스 사람이 아닌가요?
안녕하세요. 이기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알베르 카뮈는 1913년 11월 7일에 프랑스령 알제리 콩스탕틴 주 몽도비에서 태어났고, 1960년 1월4일 프랑스 부르고뉴 욘주 빌블르뱅에서 사망하였습니다. 당시 프랑스는 많은 식민지가 있었는데, 그 중에서도 알제리는 단순 식민지가 아니라 프랑스의 확장된 영토로 생각할만큼 각별하여 프랑스 사람들이 본토로부터 기회의 땅이라고 많이 이주하였습니다. 알베르 카뮈의 부모도 그랬습니다. 현재의 시점에서는 알제리는 독립 국가이기 때문에 알베르 카뮈가 알제리 지역에서 태어났으니 알제리 사람 아닌가 하는 말을 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지만, 애초에 프랑스 국적을 가진 순수한 프랑스 사람입니다. 예를 들어 일본이 대한제국을 식민지화하여 운영하였지만, 당시 일본에서 건너온 사람들이 우리 땅에서 자녀를 낳았고, 국적도 일본이었는데, 지금에 와서 대한민국이 독립하였다고 하더라도 그들을 한국 사람이라고 하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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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의 딸을 부를 때 '옹주', '공주'라고 부르는데, 무슨 차이인가요?
안녕하세요. 이기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정실부인 즉 중전에게서 낳은 자손은 아들은 대군, 딸은 공주라 부르고, 후궁에게서 낳은 자속은 아들은 군, 딸은 옹주라고 부릅니다. 부름에 있어서 차이는 있었으나, 후계로 낙점된 세자가 아니고서는 대우는 동일하다고 보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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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페라와 뮤지컬의 차이는 무엇인가요?
안녕하세요. 이기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오페라와 뮤지컬은 문학, 음악, 미술, 무용까지 종합적으로 결합되어 무대에서 보여지는 예술이라는 것에 대해서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누구나 두 장르가 차이가 있다고 인식하고 있고 또 그 특징에서 차이가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1. 오페라는 연극적인 요소보다 음악적인 요소를 중요시 하고 순수 클래식곡을 기반으로 한 악극의 형태이고, 뮤지컬은 스토리와 연극적인 요소의 구성에 대중적인곡을 삽입한 형태입니다. 2. 오페라는 벨칸토 창법이라고 하는 성악적 창법만으로 음향시설을 사용하지 않고 무대를 채우기 때문에 아무 공연장이나 할 수 없고 오폐라 전용극장에서 공연합니다. 하지만 뮤지컬을 무선 마이크 등 음향시설을 사용하여 대중적인 발성을 이용하기 때문에 공연 공간의 제약을 덜 받습니다. 3. 오페라 출연하는 사람은 오페라 가수라고 하고, 뮤지컬에 출연하는 사람은 뮤지컬 배우라고 합니다. 어디에 중점을 두고 있는 지가 명확한 것이죠. 그래서 오페라는 대부분 성악을 전공한 사람이 하고, 뮤지컬은 그렇지 않습니다.4. 오페라는 고전적인 문학의 스토리를 중심으로 고전주의 음악에 기반하여 지적인 자극을 관객에게 전달하고 충족시키는 반면에, 뮤지컬은 춤, 노래, 연기 등으로 눈과 귀를 즐겁게 하는 대중적인 목적을 가지고 있습니다. 5. 오폐라는 음향시설을 사용하지 않고 목소리로만 전달하고 노래하기 때문에 대부분 오페라 가수들은 정자세로 서서 노래를 부르는 경우가 많고, 뮤지컬은 음향시설도 사용하고 연기 자체에서의 분위기에 따라 흐트러진 자세 즉, 눕거나 관객석으로 내려오거나 하는 이벤트로 관객의 몰입을 유도하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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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인보컬은 알겠는데, 리드보컬과 서브보컬은 무엇인가요?
안녕하세요. 이기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서브보컬(Vocal): 그룹의 보컬 파트 중 하위(Sub-)영역을 담당하는 보컬 포지션리드보컬(Lead Vocal): 보컬 실력이 뛰어나며, 그룹의 보컬을 주도(Lead)할 수 있는 수준의 보컬포지션메인보컬(Main Vocal): 리드보컬들 중에서 그 실력이 출중하여, 그룹의 보컬을 대표(Main)한다고 할 수 있는 포지션위와 같이 정의적인 면에서는 구분을 하고 있으나 사실 노래를 잘하고 못하고 보다는 역할의 분배라고 보면 될 것 같습니다. 서브보컬의 경우에는 일부 브릿지 파트의 짧은 한 두 소절 정도를 소화하는 역할로 걸그룹이나 보이그룹 등 팀에 있어서 보컬 외 다른 역할(랩 또는 댄스)도 병행하고 있어 가창의 부담을 덜어주고 핵심 역량에 집중할 수 있게 하는 것입니다. 사실 메인보컬과 리드보컬은 그 개념이 거의 유사하게 가창력으로 최상위권에 있는 보컬리스트를 떠올릴 수 있는데 걸그룹, 보이그룹의 경우 팀 인원이 많고 다이나믹한 곡들이 많아 역할을 나누어서 가창력이 뛰어난 두 파트 중 도입부나 안정적인 가창을 요구하는 부분에는 리드보컬이라 하고, 사비 부분의 고음이나 큰 성량을 필요로 하는 부분은 메인보컬이라 역할적으로 구분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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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시습이라는 사람은 어떤인물이었나요?
안녕하세요. 이기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김시습은 우리나라 최초의 한문소설 [금오신화]의 작가입니다. 세조에게 밀려난 단종에 대한 신의를 끝까지 지키며 입신하지 않고 자연에 은거한 생육신의 한 사람입니다. 그는 그렇게 초야에 묻혀 살아가는 떠돌이의 삶이었지만 학문을 실천에 옮기는 지식인의 의무를 철저하게 이행하였고, 율곡 이이로부터 백세의 스승이라는 칭송을 들을 정도의 존경을 받았던 인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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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이 신대륙 발견에 앞장선 이유는 무엇인가요
안녕하세요. 이기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당시 유럽은 스페인, 프랑스, 영국 등이 강대국이었고, 그들은 먼 바다까지 항해가 가능한 선박을 건조할 수 있는 기술과 선진화 된 무기가 있었습니다. 그 중 스페인은 스페인함대가 상징적인 군사력의 표본일 정도로 해상군사력이 강했습니다. 콜롬버스가 발견한 아메리카 대륙은 스페인으로서는 가만히 둘 수 없는 기회의 땅이었습니다. 그리고 거기에 금은 등 가치가 높은 자원들이 많았고, 당시 대항해시대에 스페인이 아메리카 대륙에서 스페인으로 실어나른 금의 양은 유럽 전체에 존재하던 금보다 더 많았다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였습니다. 스페인이 신대륙 개척 및 식민지 건설에 선두주자였던 이유는 당시 그만큼의 국력과 군사력을 갖춘 최강대국이었기 때문입니다. 항해의 기술력을 가지고 있었고, 군사력과 자금이 많았죠. 이후 영국, 네덜란드의 동인도회사 등으로 그 확장의 힘이 이어졌습니다. 제국주의의 끝판왕들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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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대왕은 첫째가 아닌데 왜 왕이 된건지?
안녕하세요. 이기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태종 이방원에게는 원경왕후 민씨 사이에 세 아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어려서 세 아들이 모두 죽고 다시 얻은 아들이 양녕대군 이제입니다. 태종은 어렵게 다시 얻은 아들이 기쁘고, 왕자의 난을 겪어 왕이 되었던 터라 정통성을 확립하기 위해 장자인 양녕대군을 세자로 책봉합니다. 그 이후 아들 둘을 더 낳았는데 효령대군 이보, 축령대군 이도입니다.하지만, 양녕대군은 왕을 자질이 되지 않았던지 여러가지 비행을 일삼았고 태종의 여러 번의 경고에도 개선되지 않아 결국은 페위시키게 됩니다. 그 이후 효령과 축령대군을 두고 세자 책봉을 저울질 하였고 결국에는 막내인 축령대군 이도를 세자로 책봉하고 그가 세종대왕이 된 것입니다. 야사에는 양녕대군이 왕이 되기 싫어했고, 자신이 아닌 축령대군에 마음이 있으나 장자라 어쩔 수 없이 자신에게 주려한다는 생각에 일부러 비행을 저질러 폐위되고, 동생인 효령대군에게도 태종의 마음이 축령에게 있으니 자리에 욕심부리지 말라 말렸다는 이야기가 있다 하나 증명된 바는 없습니다. 조선왕조실록에 기록된 내용으로는 양녕은 한량이고 문제아였고, 효령은 너무 조용하고 술도 못하여 중국사신이 와도 술 한잔 나눌 수 없을 정도로 융통성이 없어 군주로서는 부적합하다 판단하였고, 그에 비해 뛰어나다 판단된 축령이 선택되었던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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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이트칼라가 백인을 얘기하는 건가요?
안녕하세요. 이기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화이트칼라는 회사 내근직 직장인을 상징하는 것이고, 블루칼라는 현장 즉, 생산라인에서 일하는 직장인을 상징하는 말입니다. 과거 사무실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하얀색 와이셔츠에 넥타이, 양복을 갖춰 입었었고, 공장생산라인의 경우 푸른색 셔츠 작업복을 일반적으로 입었었습니다. 그래서 그 직업군을 상징하는 말이 색으로 대표되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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