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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전체에서 소재로 쓰였던 사물에는 어떤것들이 있나요?
가전체는 어떤 사물의 꾸며낸 일대기를 서술하는 문체입니다. 고려 후기에 등장하였는데 사물의 의인화풍자적 주제함축적 수사계세징인의 목적전고에 의존한 사건등이 주된 내용이었다고 합니다 주요 작품과 대상이 된 사물은 다음과 같습니다. 공방전/임춘 - 돈국선생전/이규보 - 누룩술국순전/임춘 - 누룩술저생전/이첨 - 종이죽부인전/이곡 - 대나무청강사자현부전/이규보 - 자라규중칠우쟁론기/작자미상 - 자, 가위, 바늘, 실, 인두, 다리미, 골무의 규중칠우정시자전/석식영암 - 지팡이해의국사/박상연 - 김화왕전/임춘 - 꽃등이 있고, 더 세분화하면 다양한 것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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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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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범주안에 있다 할 때 범주는 무슨뜻인가요?
범주의 사전적인 뜻은1.동일한 성질을 가진 부류나 범위.2.철학 사물의 개념을 분류함에 있어서 그 이상 일반화할 수 없는 가장 보편적이고 기본적인 최고의 유개념(類槪念)이것은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하여 술어화된 것이라고 하며, 분류의 기준과 구체적인 분류 내용은 철학자들마다 다르다고 합니다. 영어로는 Category라고 하며, 제한된 범위를 뜻하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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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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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시는 한자로 쓰였는데 우리나라 문학인가요?
문학의 형태는 여러가지 입니다. 하지만 문학이 작품으로 평가받기 위해서는 문자로 표기되어야 합니다. 당시는 한자문화권이 더욱 강했기 때문에 중국을 중심으로 한국, 일본, 베트남 등에서 한시가 많이 지어졌습니다. 한자로 표기되었지만 그 정서는 우리 민족의 것이기 때문에 당시 글자가 없었던 우리로서는 한자로 표기되었다고 하더라도 우리 사상과 정서, 이념이 담겨져있는 우리 문학이 맞습니다. 훈민정음 반포 이후 사대부층에서는 한글을 꺼려한 부분도 있었지만, 그것은 그들이 중국의 성리학을 받들었기에 그랬던 깃이고, 평민들과 여인들 사이에서는 한글이 널리 퍼져 한글로 시조나 시가가 많이 지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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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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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보다 더 팔린 책이 돈키호테라는것이 사실인가요?
돈키호테는 현재까지 5억부 넘게 팔린 것으로 추정되는데 이것은 역사상 가장 많이 판매된 책 중에 하나이고, 성경 다음으로 가장 많이 번역된 책입니다. 성경은 25억부 이상 판매되었다고 추정하고 있으니 그 다음으로 많이 판매된 책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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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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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방가사는 왜 한글을 사용하게 되었나요?
내방가사는 규중가사, 규중가도라고도 불리웁니다. 작자와 연대가 미상이고 조선시대의 문헌에 있으며, 특히 영남지방에서 성행하였습니다. 한때 조선시대의 가사문학은 학자층을 중심으로 지어졌었으나 임진왜란 이후 민간에도 널리 유행하게 되었습니다.조선시대의 학문과 문자교육은 한자 중심이어서 사대주의 사상에 젖어 있던 대부분의 학자·문인들은 세종대왕이 배포한 훈민정음, 즉 한글을 도외시하였습니다. 하지만 반대로 부녀자층에 쉽게 보급되어 여성의 아름다운 감성이 담긴 시가가 많이 창작되었습니다. 그리하여 대부분은 내방가사들은 한글로 지어진 것이 대부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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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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멍청이와 멍청구리? 멍텅구리? 모가 맞는건가요?
멍청이명사 아둔하고 어리석은 사람을 놀림조로 이르는 말.멍텅구리1.명사 아둔하고 어리석은 사람을 놀림조로 이르는 말.2.병의 목이 좀 두툼하게 올라와서 예쁘게 생기지 아니한 되들잇병.3.동물 도칫과의 바닷물고기. 몸의 길이는 25cm 정도이며, 갈색이고 잔점이 많다. 몸이 통통하고 가슴지느러미가 크며 배에 빨판이 있어 바위 따위에 붙는다. 한국, 일본, 베링해 등지에 분포한다사전적 뜻은 위와 같습니다. 원래 멍텅구리라는 말이 못생긴 바닷물고기인데 망둥어처럼 몸이 통통하고 배에 빨판이 있어 바위에 붙거나 했는데 사람들이 손으로 잡을 수 있을만큼 빠르지 않고 영리하지 않다고 합니다. 이에 이것을 사람에 비유하여 아둔하고 어리석은 사람을 놀릴 때 사용했는데 이것인 멍청이로 변한 것으로 보입니다. 멍청구리라는 말은 없고, 멍청이나 멍텅구리 둘 중 하나를 사용하시면 될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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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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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담의 기원에 관한 질문입니다. 알려주세요
자라의 등껍질이 무쇠솥뚜껑과 그 모양과 질이 비슷하게 보입니다. 자라도 큰 것은 등껍질이 4~50cm까지 자랍니다. 자라의 경우 육식동물로 아주 성질이 포악합니다. 그래서 사람이 손가락을 잘못 입주변에 가져갔다가는 물려서 손가락이 끊어질 정도입니다. 그래서 자라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던 것으로 생각됩니다. 이에 자라에 한번 물려봤던 사람은 솥뚜껑만 보더라도 트라우마처럼 느낀다는 뜻입니다. 비슷한 뜻으로는 중국의 '오우천월'이라는 사자성어가 있습니다 이것은 오나라는 남쪽에 있어서 아주 더웠는데 무더위에 소가 헐떡거렸는데, 너무 그렇다 보니 오나라 소가 달이 떠도 해가 뜬 줄 알고 헐떡거린다며, 어떤 일에 한번 혼이 나면 비슷한 것만 보아도 미리 겁을 먹는다는 뜻으로 사용하였습니다. 자라의 이야기도 특별한 유래가 있는 것은 아니고 사람들의 경험에 의해 했던 말이 속담으로 굳어져서 내려온 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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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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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조에는 연과 행의 구분이 있을까요?
시조의 경우 현대의 시처럼 초장 중장 종장의 45자 내외로 구성되어있기에 따로 연으로 구분되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시조의 경우에도 평시조는 한 수의 시조가 여러 편이 합쳐져 있는 작품이 있습니다. 이러한 경우를 연시조라고 하며 시조 한 수가 전체 작품에서는 하나의 연이 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한 수의 초장, 중장, 종장은 각각의 행으로 볼 수도 있습니다. 최초의 연시조는 조선 세종 때 맹사성이 지은 <강호사시가>입니다. 그리고 이황의 「도산십이곡」과 이이의 「고산구곡가」, 그리고 주세붕의 「오륜가」, 정철의 「훈민가」 등도 대표적인 연시조 작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작품들은 대부분 유교적인 사상을 포함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윤선도는 문학적인 재미, 상상력, 표현의 다양성을 나타냈는데 이러한 작품들이 「오우가」 여섯 수, 「견회요」 다섯 수, 「만흥」 여섯 수, 「어부사시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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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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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인박명이라는 사자성어는 왜 나왔을까요??
'佳(아름다울)가 人(사람)인 薄(얇을)박 命(목숨) 명'의 뜻은 ‘아름다운 사람은 명(命)이 짧다 즉, 여자의 용모가 너무 아름다우면 운명이 기박(奇薄)하다는 뜻입니다.이 사자성어의 유래는,북송 후기 적벽부를 지은 소식의 가인박명시에 나왔다고 합니다. 그 시의 전문은 다음과 같습니다.雙頰凝 髮抹漆 眼光入廉珠的白樂 쌍협응 발말칠 안광입렴주적백악故將白練作仙衣 不許紅膏汗天質 고장백련작선의 불허홍고한천질吳音嬌軟帶兒癡 無限間愁總未知 오음교연대아치 무한간수총미지自古佳人多命薄 閉門春盡楊花落 자고가인다명박 폐문춘진양화락<해석>하얀 두 볼에 옻칠한 듯 까만 머리쳐놓은 발에 비치는 눈빛은 옥같이 빛나네흰 비단으로 선녀의 옷을 지으니타고난 아름다움을 더럽힐까 연지 또한 거부하네오나라 사투리의 애교 섞인 목소리 아이처럼 앳띠나그 속 한없이 담긴 수심 도무지 알 수가 없네예로부터 아름다운 여인 모두 그 운명 기구하니닫힌 문 밖 봄이 다하니 버들꽃 떨어지는구나이 시 중 마지막 구절인 '自古佳人多命薄 閉門春盡楊花落'에서 나온 것처럼 아름다운 여인들이 버들꽃 지듯이 평균수명이 짧았으니 안타까움에 노래한 것이 지금까지 전해오는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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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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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임진왜란 전과 후의 시가문학은 어떤변화를 가지고 있나요?
조선시대의 시가는 전기는 평시조라 불리는 사대부시조가 중심을 이루어 충절, 자연진화, 인격수양 등 유교적 내용이 주를 이루었으나 후기로 가면서 사설시조라는 명칭의 평민시조가 등장하면서 전후 평민들의 생활상, 고위층에 대한 비판, 해학 등의 내용이 발달하였습니다.시조와 가사 문학 형태로 시조는 계속 시의 형태로 바전하였고, 가사의 경우 내용상 교술적인 형태도 띠고 있어서 운문에서 산문으로 이행되는 과도기적 성격도 있었다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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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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