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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기간에 토익 점수를 잘 낼 수 있는 방법
안녕하세요. 장상돈 전문가입니다.토익시험 준비를 하시고 계시군요.일단 첫 시험에서 좋은 점수가 나올 것이라고 생각하지 마십시오.그러면 실망해서 토익공부를 하지 않게 됩니다.열심히 공부하셔서 토익시험을 일단 보십시오.그런데 토익시험을 친다기보다는 먼저 경험을 해본다는 생각으로 문제를 찬찬히 살피십시오.내가 만약 다시 토익시험을 치게 된다면 이런 유형, 이런 조합, 이런 이런 준비가 필요하겠구나라는 생각으로요.모의고사나 토익강의를 통해 준비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경험을 하게 될 것입니다.그 다음, 토익공부를 다시 하십시오.토익시험은 자주 있으니, 두번째 시험에서 내가 원하는 점수를 낸다는 생각으로 첫번째 시험을 보십시오.시험을 치르는 것이 아니라 토익시험을 경험해 본다는 생각으로, 그리고 다음 시험을 위한 공부에 무엇 무엇이 필요한 지를 생각하면서요.시험을 한 번 치고 나면 토익책이나 토익강사가 강의에서 왜 저런 말을 하는 지 이해가 더 잘 되실 것입니다.유형이 있기때문에, 토익책이나 토익강사가 말하는 대로 시험에 나옵니다.문제는 경험이 없기때문에 그 유형이 그 유형이라는 것을 깨닫지 못하는 것이 문제입니다.토익책이 말하는, 토익강사가 말하는 바로 그 유형이라고 문제를 보는 순간 알게 되면 점수가 훨씬 잘 나옵니다.물론 공부는 열심히 하셔야되지요.그러나 왜 이런 문제가 나왔는지를 알고 공부하는 것과,그냥 문제라고 하니 푸는 것과는 공부 효과가 전혀 다를 것입니다.부디 좋은 성적을 받으실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그리고 한 달 뒤 시험 외에는 아무 의미가 없다면,제가 쓴 글은 아무 의미가 없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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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4일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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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썼는데 이 글을 읽고 감상을 나눠주셨으면 해요
안녕하세요. 장상돈 전문가입니다.글을 써 보셨군요. 글을 쓰는 것은 참 고독한 일입니다.누군가 나를 읽어주었으면 하는 마음이 상처가 아물고 또 아물지 않으면 감히 쓰지 못하지요.자신의 감정이 상대방에게 전달되기를 원한다면 누구나 내 글을 읽고 그렇게 생각하도록 써야하죠.그래서 쓴 글을 읽어 보고, 또 수정하고, 수정합니다.글쓴이의 글은 초고같군요.마음에 떠오르는 단어들을 조합했을 뿐, 수정을 거치지 않은 글로 보입니다.'우린 낡았다' - 난 낡았다가 아니라 우린 낡았다는 말은 나에게 상처를 준 누군가에게 화가 치밀거나, 아니면 누군가에게 미안해하는 마음이 읽힙니다.'더 이상 새로운 게 없다' - 이미 상처난 상태로 다시 이전으로 되돌아갈 수 없다는 마음을 읽을 수 있군요.'계절은 충동적으로 바뀌고' - 자신을 타인의 시선에서 감추려고 계절을 끌고 오셨지만, 충동적이란 말에 이미 자신의 상처나 미안함이나 감정의 동요가 나 자신의 이성적이고 합리적으로 행동하지 못한 결과라고 말하고 있네요. 그런데 감추고 싶어서, 알아주기를 바라지만, 내 아픈 곳을 내보일 수는 없고, 복잡한 감정이 읽힙니다.'나는 먼지 거품을 뒤집어쓴 그랜드 피아노처럼 느껴진다.' - 자신의 꿈이었던, 또는 꿈 꾸고 있는 것에 도달하지 못할 것 같고, 그 이유가 나 자신의 처신이 아니라, 누군가 다른 이에 의해서 파괴되었거나, 대중 앞에 나서지 못하게 만들었다는 비난이 보입니다.이 정도 1연의 글을 다시 읽어 보고, 수정을 한다면, "낡을 대로 낡은 우린 더 이상 새로울 게 없다. 계절들이 바뀌는 걸 나만 몰랐을까? 먼지를 뒤집어 쓴 그랜드 피아노 너만은 내 온기를 기억해 줘."글을 쓰는 것은 초고에서는 쏟아내는 것이 맞습니다.그리고 수정하고 또 수정하면서 내가 쏟아낸 감정이 서론, 본론, 결론 또는 클라이막스를 향하게 하거나, 어느 정도는 완결된 느낌을 갖게 수정해 줄 필요가 있습니다.누군가 내 감정 너머 깊숙이 숨겨놓은 내 실체를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채 보여주고 싶지는 않겠지요.그러나 글을 읽는 이가 전혀 내 감정을 이해하지 못하도록 글을 쓰는 것 또한 의미가 없습니다.이 외줄타기를 잘 해야하지요.보여줄듯 보여줄듯 하면서 독자가 그 내면을 들여다보고 싶도록 유도해야합니다.그러지 않으면 읽지 않을 테니까요.여기서 읽는다는 말은 숙고해 보고, 상상해 보고, 자기 경험과 비교해 본다는 의미입니다.이렇게 하도록 하기위해서 글에는 구성이 있는 것이죠.기승전결의 구성을 잘 짜는 것이 독자가 다시 읽고 다시 읽게 만드는 구조니까요.좋은 글을 많이 많이 써 보십시오.무엇보다 좋은 글을 많이 읽어보십시오.그리고 좋은 글들을 흉내내기 해 보십시오.좋은 작가가 되시기를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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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4일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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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어는 배우기 매우 어렵나요?? 출장가는데 좀 배워 볼까하는데요./
안녕하세요. 장상돈 전문가입니다.베트남어를 할 수 있다면, 베트남 현지에서 도움이 되겠죠.그러나 우리는 느끼지 못하지만, 남부와 중부, 북부로 베트남어의 차이도 있고,성조가 6개나 되며, 문자가 같아도 성조에 따라 의미가 전혀 다릅니다.문자로 쓰는 로마자는 우리가 아는 영어식 발음이 아니며, 지역별로 전혀 다른 소리로 발음됩니다. 프랑스어 영향도 받아, 발음을 듣기도, 흉내내기도 쉽지 않습니다.하지만 문법은 단순하여 신경 쓸 것이 없습니다. 관계중심, 모계사회여서 호칭이나 서열에 따른 표현이 다릅니다.요즘은 어플이 잘 발달해 있어서 폰앱을 사용하시면 간단한 의사소통은 한국어 베트남어 번역기로 충분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물론 시간이 충분하시다면 학습을 꾸준히 하시면 어느 순간 단순한 문법과 일정한 규칙성때문에 학습효과가 빨라지는 순간이 올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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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26.0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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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와 소설은 어떻게 다른건지 궁금해지는군요.
안녕하세요. 장상돈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한자와 동화는 "어린이에게 말하다"는 의미가 있죠.그래서 대부분 어린이의 감성으로 읽을 수 있는 이야기를 동화라고 생각하는데,또 한 분야는 판타지일 수 있습니다.상상 속에서나 가능한 이야기는 동화에 속했죠.그러나 현대사회의 기술발전은 상상 속에서 가능한 일을 현실화시키기 시작했고,판타지나 SF(Science Fiction)은 동화가 아니라, 소설로 분류되기 시작한 것 같습니다.동화가 만약 어린아이에게 교훈하기 위해 쓰여졌다면, 독자가 정해져 있는 거죠.그러나 소설은 특정 독자를 규정하지 않고, 자기 자신에게 쓸 수도 있을 테니, 독자가 다르기 때문에 인칭이나 문체가 다를 수 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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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23.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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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웅전에 부처님이 두분 이상 모시는 이유?
안녕하세요. 장상돈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대웅은 법화경에 석가모니를 큰 영웅으로 지칭하여 사용하는 말이니, 당연히 대웅전에는 석가모니불이 중앙에 모시겠지요.그리고 양 옆에는 아미타불과 약사 여래불을 모시는데,일반적으로 "나무아미타불관세음보살"에 등장하시는 두 분이시죠.나무는 귀의한단 의미이고, 아미타불은 극락왕생을 주관하시고,관세음보살은 이 땅의 희노애락을 주관하시니,이 두 분에게 다 맡기는 것이 참 깨달음을 얻을 수 있는 길이 되기 때문에,보통 대웅전에는 중앙에 석가모니불, 양 옆에는 아미타불과 약사 여래불을 모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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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
23.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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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의 동화를 보면 공주들이 키스를 받고 살아나는 장면은 다시 어떤걸 묘사한걸까요?
안녕하세요. 장상돈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공개적으로 키스를 하는 것은 사랑하고 있다는 증명이고결혼이라는 공식적인 절차를 거친 후 키스하기도 하죠.동화에서 키스라는 상황을 설정하는 것은 사랑의 힘을 강조하기 위해서겠죠.사랑은 마력이나 저주를 끊고, 죽음도 극복할 수 있다는 표현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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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23.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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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 최초에 콘서트는어떤분이 했나요?
안녕하세요. 장상돈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아하에 동일한 질문이 있네요.그 답변에 보면, 콘서트라는 단어가 우리나라에서 처음 사용된 것은 1978년, 산울림이 문화체육관 공연하면서 처음 사용했고,콘서트처럼 공연을 한 최초의 가수는 이자영이며,1957년 12월 15일에 공연했다고 하네요.https://www.a-ha.io/questions/4e7e93cd2f60f993bf95314cd751053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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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23.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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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율초재라는 인물에 대해서 알려주세요.
안녕하세요. 장상돈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야율초재는 금나라의 관원으로 있다 몽골에 멸망 당한 후 칭기즈칸에게 선택된 인물이니,몽골인이 아니라 중국인이죠.그래서 그는 한자로 책을 남겼고, 중국의 원서에서만 그에 대한 기록이 남아있죠.역사를 기록하는 입장에서는,중국 본토를 초토화시켜 유목을 위한 목초지 땅으로 만들고, 중국인을 모두 죽여버리려고 했다는 기록을 들이대면,야율초재는 중국인의 생명의 은인이고, 현재 한족이 다스리는 중국이 유지되게 한 영웅이겠죠.그러나 야율초재 때문에 몽골이 인재 등용과 문화수용, 그리고 조세제도를 수립했다고 할 수는 없겠죠.몽골인들이 지금도 중국 대륙을 다스리고 있다면, 야율초재는 존재도 알기 어려웠을 수 있지만,중국 대륙을 한족이 다스리고 있으니, 그나마 몽골제국의 통치 아래, 찾아내고 찾아낸 한족으로 봐 줄 인물이 야율초재 아닐까요?
학문 /
역사
23.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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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 유럽에서 종교의 영향력은 어느 정도였나요?
안녕하세요. 장상돈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카노사의 굴욕'이라는 역사적 사건이 있었죠.1077년에 일어난 사건인데요.독일 또는 신성로마제국의 황제였던 하인리히4세가 당시 교황이었던 그레고리오 7세에게 용서를 빌었던 사건입니다.사건의 원인은 주교임명권이었는데요.황제는 영주의 권력을 가진 주교들을 임면할 수 있는 권리를 주장했고,교황은 주교임면권이 교황에게 있다고 한 것입니다.1073년 그레고리오7세는 교황이 되면서 성직자 임명권은 교황과 교황청에만 있다고 선언했습니다.이 시기에 작센에서 반란을 진압하던 하인리히4세는 1075년 반란을 진압하고, 밀라노의 주교 선출 권리를 행사했고,원칙주의로 개혁을 주장하던 그레고리오7세는 하인리히4세를 기독교에서 파문시켜버립니다.황제가 통지권력을 강화하려면 영주들의 충성을 받아내야했기때문에 신성로마제국의 주교들을 서임권을 행사했죠.그러나 교황은 종교적인 추종세력이 많았기때문에, 오히려 신성로마제국에서 새로운 황제를 추대하려는 움직임을 이끌어냅니다.이 배경은 하인리히4세의 강력한 황권에 부담을 느낀 제후들이 있었고, 교황의 파문을 구실로 돌아서버린 것이죠.하인리히4세는 사신을 보내었으나 교황은 두려워 피해버립니다.1077년 1월 말 하인리히4세는 카노사로 피해 버린 교황에게 직접 추운 날씨에 맨발과 누추한 옷을 입고 성문 앞에 무릎을 꿇죠.교황은 주저하다가 3일이 지나 파문을 취소해 줍니다.하인리히4세의 파문이 취소되었으나, 신성로마제국에는 새로운 루돌프를 황제로 등극시키려고 반란이 일어납니다.교황은 루돌프를 지지하며, 하인리히4세를 다시 파면해 버렸으나,교황의 변심때문에 제후들이 하인리히4세를 도와, 1081년 바이스 엘스터 강 전투에서 반란군에게 황제로 추대된 루돌프가 전사하고 반란세력은 흐지부지되어 버리죠.하인리히4세는 내란을 진압하고 황권을 강화하며 그레고리오 7세와 손 잡았던 제후들을 제거합니다.그리고 그 해에, 동로마제국황제였던 알렉시우스1세가 이탈리아 노르만족의 침입하자, 하인리히4세에게 동맹을 요청합니다.하인리히4세는 동로마제국과 동맹을 맺은 후에, 그레고리오7세를 폐위시키고 클레멘스3세를 교황으로 선포하고 이탈리아로 진격합니다.복수를 한 셈이죠. 교황이 제후들과 제국의 틈에서 줄타기를 잘 하면 황제의 힘을 제어할 수 있었던 시기도 있었고,오히려 교황의 권위가 추락하기도 했었던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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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23.0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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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시대 궁전은 남아 있지 않은걸까요?
안녕하세요. 장상돈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기원전부터 기원후 660년까지 존속했던 백제의 유적이 충남 공주시에 있는 공산성, 송산리 고분군 등 2곳이 있고, 충남 부여군은 관북리유적과 부소산성, 능산리 고분군, 정림사지, 부여 나성 등 4곳, 그리고 전북 익산시에 있는 왕궁리유적, 미륵사지 등 2곳이 있습니다.궁전 건물이 남아있지는 않죠.질문자님이 다녀오신 백제 문화단지에 복원을 해 2천년 전의 기록을 재현한 것이죠.신라와 고구려의 왕궁도 남아있는 것은 없죠.신라의 왕궁 역시 월성의 초기 왕궁이 있었다는 기록을 재현해 놓았죠.고려의 왕궁도 흔적만 남아있을 뿐 건물이 남아있지 않습니다.한반도가 외세의 침입을 자주 받는 전쟁터였기때문이기도 하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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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23.0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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