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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영어가 세계 공용어가 됐을까요?
안녕하세요. 장상돈 경제·금융/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영어는 대영제국시절, 영국 제국주의의 희생이었던 전세계 곳곳의 식민지들이 침략자들의 언어를 배우면서 확산되었다고 봐야겠죠.English는 England에 기원을 두고 있는데, 앵글로프리지아어와 저지 게르만어가 섞이면서, 서게르만어군에 속합니다.자음 21개와 모음 5개로 아주 단순하며, 주변 언어들의 단어를 그대로 수용하면서 어휘를 늘려갔습니다.5세기 앵글로색슨족이 섬나라 영국에 정착을 하게되고, 이어 바이킹이 침입하여 고대 노르드어가 섞였습니다.고대 언어가 중세 언어로 발전하는 동안, 12세기에 AEnglisc, Engle이라는 복수형을 사용하게 되는데, 중세의 종교적 영향으로, 라틴어, 고대 그리스어가 모두 수용되면서, English라는 형용사형 명사가 됩니다. Engle+ish인 셈이죠.중세를 지나면서, 섬나라인 영국은 해양세력을 확장하면서, 주변 섬나라들과 다른 대륙으로 진출하게 되고, 이런 해양진출 경험은 영국의 문학적 표현을 풍부하게 만듭니다.영국 문학가라고 하면 셰익스피어가 떠오르겠지요?영국사람들은 셰익스피어와 인도식민지를 바꾸지 않겠다는 둥, 제국주의자의 오만함을 염치도 없이 드러내게 되는데, 이는 셰익스피어의 작품으로 알려진 것들이 얼마나 강력한 문화적 영향력을 가졌는 지를 알게 합니다.셰익스피어의 작품은, 연극으로 공연되는 희곡이었으며, 문학으로서만 아니라, 미술, 음악 등 예술의 다양한 분야에서 셰익스피어의 작품에 근거한 창작이 이루어집니다.16세기의 셰익스피어가 영어라는 언어에 미친 영향은 너무나 놀라울 따름입니다.지금도 공연되고 있을 뿐 아니라, 수 많은 평론에서 셰익스피어의 창작물은 절대 비교대상으로 존재하죠.17세기의 명예혁명, 18세기의 산업혁명, 19세기 대영제국의 식민지 개척은,마치 알렉산더대왕이 그리스문화를 전세계에 심기 위한 사명감으로 세계를 정복했듯이,대영제국은 식민지들마다 영국화, 영어 사용을 요구합니다.대영제국의 식민지였던 나라들은 모국어보다 영어를 국가의 공용어로 지금도 사용하고 있지요.여기에 영국인들이 아메리카대륙으로 건너가 미국이라는 나라를 세웠기때문에, 미국 역시 영어를 사용하는 나라입니다. 영국 영어와 미국 영어는 조금의 차이는 있지만, 미국이 2차대전 이후 초강대국이 되고, 특히 컴퓨터와 인터넷이 미국에서 시작되었기 때문에,모든 도스 명령어와 웹 운영어가 영어로 만들어졌죠.그러나 사실, 미국내에 거주하는 사람들 중에도 전혀 영어를 사용하지 않는 사람도 있고,전세계 각국은 다시 자민족의 언어를 제2공용어에서 제1국가 공용어로 회복시키고 있기도 합니다.이것은 전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있는 민족주의 영향이라고 생각됩니다.우리나라 대통령이 공식적으로 외국인을 만나 영어로 대화하지 않고, 통역을 세워서 대화를 하는 것은 자국 민족주의에 근거한 것이라고 할 수도 있겠죠.영어가 필수라고 하지만, 베트남 사람들은 베트남전에서 자국에 패배한 패전국, 미국의 언어를 아직도 배우려 하지 않습니다.언어가 가진 힘은 그 속에 생활풍습, 문화, 사상, 철학이 그대로 표현되기때문에,문화식민지화되지 않으려면 자국 민족의 언어를 발전시키고, 세계 공용어를 제2공용어로 사용할 필요가 있겠죠.한국어가 7번째 유엔공식언어가 되길 기대합니다.영어, 프랑스어, 중국어, 스페인어, 러시아어, 아랍어로 6개의 UN공식언어가 존재합니다.7번째 한국어가 되면 좋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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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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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과 바다, 허무주의가 바탕에 있다..?
안녕하세요. 장상돈 경제·금융/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노인과 바다(The Old Man and the Sea)는 어니스트 헤밍웨이가 1952년에 썼습니다.2009년 8월 제가 플로리다에 있는 끝 섬, 키웨스트로 가서헤밍웨이가 살았던 집을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헤밍웨이가 여기에 살았던 이유는 그가 자신의 태어난 고향이 아니지만,<노인과 바다> 작품을 쓴 쿠바를 그리워하며 미국 땅 중에서 가장 쿠바와 가까운 이 섬에서 마지막 생을 마감합니다."나는 이 상을 받은 최조의 입양 쿠바인이다. 나는 그래서 행복하다"1954년 <노인과 바다>로 노벨문학상을 받은 그의 수상 소감은 참 독특했습니다.그 전 해인, 1953년에는 퓰리쳐상을 수상했었죠.1939년부터 20년간 쿠바에서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도 탈고했죠.그에게는 두번째 고향도 있는데, 바로 스페인입니다.1936년 일어난 스페인 내전은 세계 지식인 5만여명이 몰려와 참전하게 된 전쟁이고, 헤밍웨이도 거기 있었습니다. 함께 이 전쟁에 참전한 지식인 중에는 까뮈, 사르트르, 앙드레 말로, 피카소, 조지 오웰, 파블로 네루다, 생떽쥐베리, 쇼스타코비치, 로버트 카파, 존 도스 파쏘스, 존 콘포드 등, 이들은 국제여단(International Brigades)으로 파시즘에 반대한 문화예술가들이었습니다.1938년 헤밍웨이의 모습입니다.스페인내전 참전지식인들은 스페인 공화파연립정부의 부패와 무능력에 전쟁참전을 후회하게 됩니다.지식인들이 총을 들었다가, 파시즘에 패했을 뿐만 아니라, 자신들이 돕고자 했던 공화파의 부패와 무능을 경험하는 것은 큰 사고의 전환을 가져왔을 것입니다.<노인과 바다>는 사실을 근거로 쓴 것입니다.그레고리오 푸엔테는 헤밍웨이보다 오래 살았는데요.104세까지 살다가 2002년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헤밍웨이보다 2살 연상으로, 헤밍웨이에게 53일동안 한 마리도 못 잡다가, 큼직한 6마리를 잡았는데, 돌아 오던 해상에서 상어를 만나 모두 잃고 빈 손으로 돌아왔다고 말했고, 헤밍웨이가 그 이야기를 소설로 쓰고 싶다고 하자,돈 같은 것은 필요 없다. 지금 술 한 잔만 사달라고 하며 허락했다고 합니다.이후에 헤밍웨이는 푸엔테를 찾아와 2만달러, 노동자의 7년치 급여로 집 2채를 살 수 있는 돈을 건넸고, 정색하며 받지 않으려고 했으나, 내던지고 도망쳤다고 합니다.헤밍웨이는 61세에 미국정부가 자신을 도청하고 있다는 망상에 시달리다가 권총 자살합니다.그의 자살때문에 그의 작품이 허무주의로 읽히는 경향이 있습니다. 질문자님은 잘 읽으셨다고 생각됩니다.소설의 말미에는 노인은 침대에 두 팔을 벌리고 지친 몸을 누입니다.마치 십자가에 못 박힌 구원자의 모습을 그리려고 한 것 같습니다.전쟁과 정치의 이면을 경험한 헤밍웨이와 국제여단의 지식인들은 엄청난 갈등을 어떻게든 작품화해야했을 것입니다. 84일 동안 한 마리도 잡지 못한 물고기였는데, 다시 바다로 나가야하는 것이 어부 노인의 삶이겠죠.그리고 잡은 큰 놈 하나 역시 인생의 한 부분일 것입니다.어쩌면 헤밍웨이가 스페인으로 가서 총을 들고 적과 싸운 이유이겠지요.그러나 그 인생은 상어 두 마리에 의해 갈기갈기 찢기고, 앙상한 뼈만 남습니다.노인의 손도 상처투성이이죠. 그 옆엔 노인을 바라보며 펑펑 울어주는 소년도 등장합니다."나를 살게 해 주는 건 그 아이야!""상어의 뼈가 저렇게 아름다울 줄은 몰랐다"고 감탄하는 관광객의 말 속에 헤밍웨이는 자신이 겪고 있는 삶의 아이러니를 꾹꾹 눌러 담아놓은 것 같습니다.인간이 인간으로서의 존재의 가치를 지킬 수 있을 것인가?헤밍웨이는 노인을 통해 인간은 존재할 가치가 있다고 소리쳐 외치고 있는 것 같습니다.독자들은 자신의 삶의 경험을 통해 작품을 해석하게 되겠지요.헤밍웨이는 스페인 내전에서 총을 들었던 이유, 파시즘을 반대한 그의 생각이 잘못된 것이 아니었다고 주장하고 싶었을 지도 모릅니다.헤밍웨이는 쿠바 땅에서 이 작품을 쓰면서, 자신이 태어난 곳이지만, 인정할 수 없는 조국 미국이 인간 존재의 가치를 인정하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었는 지도 모르겠습니다.오늘 우리도 이 작품을 다시 읽는다면,나는 인간으로서의 존재 가치를, 인간의 존엄을 지키고 있는지 확인해 볼 수 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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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
22.0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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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비둘기는 평화를 상징하는 이미지가 되었나요?
안녕하세요. 장상돈 경제·금융/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성경에 노아라는 사람이 대홍수 후 방주에서 밖으로 나갈 수 있는 지 알아보려고 비둘기를 내보냈다고 기록되어 있죠.비둘기는 귀소본능이 있어서 메시지를 전달하는 전령의 역할도 했구요.비둘기가 사냥을 하지 않는 것도 그렇고,비둘기의 눈이 세상 선한 모양으로 보이기도 하구요.무엇보다 사람들이 '비둘기'를 평화의 상징으로 많이 비유하고 언급했기 때문이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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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
22.0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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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시는 어떻게 해석하나요?
안녕하세요. 장상돈 경제·금융/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현대시를 해석하려고 하는 것 자체가 모순이 아닐까요?그냥 몇 번을 읽어보시고 느껴지는 것으로 끝내는 거죠."독자가 없다면, 시인은 언어라는 독방에 갇힌 사람일 뿐이에요. ..... 당신이 있어 가끔은 삶이 새롭고 설레요. 진심으로 고맙습니다."시인 이민하의 말이다."시를 쓰는 나의 의도만큼 시가 자율적으로 향하는 길을 존중해 줘야 한다는 생각까지 들었다"고도 했다.전주에서 태어나 12살의 경험, 첫 등교하여 뒷자리에 앉았던 아이가 그 다음날 죽음으로 돌아오자, 성장기에 죄책감에 시달린 경험, 6학년 1년간 치료때문에 운동장을 내려다보아야만 했던 경험 등으로 국문학을 졸업한 후 지금까지도 오랜 기간 야행성 삶을 살고 있다고 한다.시인이 겪은 삶의 생채기가 진주가 되어 세상에 빛나고 있다고나 할까요?이민하 시인의 '키스論'이 해석을 도와줄까요?19금이라 여기에 올릴 수는 없구요^^만19세가 넘으셨다면, 검색해서 읽어보세요.시어를 분석해 보라고 한다면, 그냥 제 느낌이에요.붉은 -> 욕망, 입술의 색깔 빙산 -> 열정과 이성 사이, 또는 마음 속에서 요동치는 복잡한 생각들, 상대방 심리 파악마른 -> 긴장감, 입술이 바짝 바짝 말라들어가는성냥을 그어대는 두 개의 분화구 -> 아시겠죠^^오른쪽엔 바다로 가는 계단 -> 키스 후에 어떻게든 그 다음 행동이 요구되죠. 그 다음은 무슨 결정을 내릴까요?왼쪽엔 용암에 타는 나무 -> 바다와는 대조되는 선택지를 생각해 보시길.....찢어질 듯 양 날개로 헤엄치는 -> 시에서 구성의 클라이막스에 대부분 사용할 수 있는 표현들이네요. 찢어지는 감정들, 나비가 헤엄을 치는 게 아니라, 바다에 빠져 허우적거리겠군요. 오른쪽 왼쪽 양 선택지 중에 어느 하나를 선택한다면, 그 다음은?목 잘린 나비 한 마리 -> 결국은 목 잘리고, 한 마리로 남겨졌네요.이민하 시인은,성장기의 죄책감, 타자 개념, 연애라는 3개의 카테고리 속에서 상처를 어떻게든 끌어안으려고 하고 있는 것 같네요. 이 말은 제가 시인의 말을 조금만 변형한 것입니다.시인은 어떻게든 대화를 시도하고 있습니다.대화를 하기위해 세상의 모든 것을 시어로 표현해내려고 하는 것 같습니다.
학문 /
미술
22.0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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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틀러가 유태인을 학살한 구체적 이유가 뭔가요?
안녕하세요. 장상돈 경제·금융/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유태인학살은 오랜 기간동안 여러 지역에서 600만명이나 학살했기 때문에 구체적인 이유가 존재할 수는 없습니다.그러나 굳이 이유를 말해야한다면,그것은 독일의 기술과 경제발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물론 이것은 독일이 세계대전을 일으킨 이유이기도 합니다.우리나라에서는 지금은 아무도 관심이 없는 제1차세계대전이 일어나기 전 유럽의 지도는 너무나 단순했습니다.제국화된 국가들이 각자의 식민지를 가지고 있었죠.제1차세계대전이 독일제국의 항복으로 끝나자,제국들이 해체되고, 각 국들이 독립하게 됩니다.독일제국은 해체되면서, 영토를 잃었고, 독일제국의 식민지였던 지역들은 모두 독립합니다.그러나 제1차세계대전은 독일과 러시아가 당시로서는 첨단 기술로 무장한 전쟁무기를 실험한 것이 되었습니다.독일제국 해체는 독일인들에게 수치스러운 일이었을 것입니다.이 때 등장한 아돌프 히틀러는 정권을 잡고 제3제국이라고 자칭하며, 독일 시민들의 마음을 사로잡습니다.이 시기에 우리에게도 익숙한 '아우토반'이 건설되었고, 대규모 국가주도 사업이 실시됩니다.전쟁 이후, 세계는 대공황을 겪고 있었지만,독일은 경제가 활성화되었고, 실업자가 오히려 줄어들었습니다.히틀러는 독일 시민들의 지지를 얻기 위해 아리아인 우월주의를 주창했고, 독일 시민들은 이에 환호했습니다.히틀러는 독일 내에 존재한, 롬인들(집시, 유랑 문화를 가진 북부 인도에서 기인한 사람들)을 아리아인의 우월성과 지도를 따르지 않는 존재로 여겨, 유태인 600만명과 함께 롬인들도 80만명 이상을 학살했습니다.인종차별주의는 슬라브족, 동성애자, 장애인, 정치범에게로 확대되었습니다.여기에는 전쟁훈련을 받지 않으려는 여호와의증인들도 포함되었습니다.당연히 아리아인 우월주의는 독일 내 유대인들에 대한 멸시로도 서서히 발전했습니다.독일제국의 영토에 있었던 나라이지만, 제1차세계대전 이후 제국이 해체되어 분리된 헝가리는 여전히 독일의 영향 하에 있었으며, 오스트리아 역시 인종차별주의가 나타났습니다.여기서 잠깐,조선과 동남아시아를 지배하려고 했던 일본제국도 인종차별주의에 근거하여 한반도를 병합했지요.일본 역시 메이지유신 이후에, 영국과 미국의 기술을 전수받아 아시아 최강국으로 발전해 있었습니다.일본에서 생산되는 전기제품은 일본 내에서 완전 소비될 수 없었고, 산업화는 소비해 줄 식민지가 필요했습니다.독일 역시 마찬가지였죠.히틀러는 독일 시민들의 마음을 얻기 위해 게토(ghetto)화를 진행합니다.아리아인 우월주의는 위에서 언급한 부류들을 강제 이주하는 방식으로 지역을 선정하여 집단생활을 하도록 합니다.게토화전략은 이들에게서 사회적, 경제적 권리를 완전히 빼앗고, 그들 부류 내에서 스스로 위원회를 조직하여 자치하도록 만듭니다.다시 일본을 생각해 보겠습니다.일본 역시 한반도에서 한민족을 게토화했습니다.여기서 다시 유태인과 한민족의 역사를 잠깐 살펴 보면,유대인들은 그들의 신념 속에 있는, 예루살렘, 시온이라는 개념이 있었는데, 기원전과 기원 후의 기로에서 로마에 의해 철저하게 파괴됩니다. 로마에서 추방 당한 역사도 있고, AD70년 로마 장군, 티투스에 의해 예루살렘은 철저히 파괴되고 유태인들은 모두 철저히 추방 당하죠.이후로 유럽사회는 중세시대의 긴 기간 동안 유태인들을 예수라는 인물을 잔인하게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인 기독교의 적으로 몰아갑니다.사실, 유태인들은 기독교를 전파한 사람들이지만, 로마의 국교로 승인된 이후, 기독교 경전인 성경에서 마치 유대 지도자들이 예수를 죽인 것처럼 편집됩니다.팍스 로마나 체제에서 예수를 처형할 권한이 로마의 식민지 유태인들에게는 사형선고를 내릴 수 있는 권한이 전혀 없었는데도 말입니다.유태인 혐오는 중세 교황의 치세 하에 끝 없이 발전해 왔고, 기독교 국가였던 독일이 독재자의 권력집중을 위해 이용하기에 가장 좋은 사상이 된 것입니다.2,000년 전, AD74년에 마지막 한 명까지 모두 자살하며 저항으로 마감했던 마사다전투의 경험을 가진 유대인들은이후 학대에 무저항으로만 임하게 된 역사적 경험이 있습니다.그 경험은 아우슈비츠로 알려진 수용소와 수 많은 수용소들, 그리고 독일의 영향 하에 있었던 과거 식민지로 강제이주될 때,조금의 저항도 없이 유대인들이 순순히 끌려가는 결과를 낳았습니다.독일, 제3제국 독재권력은 이들보다 더 좋은 게토화 대상이 없었죠.인류 역사상 모든 독재자, 또는 정통성을 인정받을 수 없는 통치자들이 사용하는 방식이 바로, 저항할 수 없는, 또는 저항하지 않는 부류들을 처형하여 광장에 목 메달거나, 화형시키고 그 현장을 시민들에게 오랫동안 노출시켜 자국 시민들이 저항할 수 없도록 만드는 것입니다.독일의 시민들, 지식인들, 의사들, 정치인들, 심지어 종교인(목사들)은 나치의 정책에 자발적으로 동참합니다.일본의 한반도 게토화 역시 마찬가지였죠.한반도 5,000년 역사에 너무나 많은 전쟁을 겪은 한민족은 일본에게 스스로 나라를 내어줍니다.1919년 3.1운동도 무저항운동이었죠.그러나 한반도에 살던 우리의 조상들은 1930년대 유태인들과 달랐습니다.3.1운동 후 대한민국임시정부가 만들어 졌고, 한반도 내에서도 중국과 러시아에서도 끝없이 일본에 저항했습니다.결과는 유태인학살과 비슷하게 노역으로, 731부대에 의한 인체실험, 일본군 징집을 당했지만, 무저항으로 일관되지는 않았죠.유태인은 우리 민족과 달리 국가체제가 없었고, 지식층은 이미 독일을 탈출하고 없었습니다.제2차세계대전이 끝나고 이스라엘이라는 국가가 탄생합니다.유태인들은 한민족에게 배운 것이 많았죠.무저항 속에 당한 학살과 한민족이 당한 학살은 확연히 차이가 있었습니다.우리 민족의 저항 덕분에 그들도 국가를 세우고 세계 최강의 군대를 조직하고, 세계 국가의 일원으로 등장하게 되었죠.지금도 이스라엘은 우리나라와 깊은 관계를 맺고 있습니다.이제 결론을 내려 볼까요?독일의 히틀러와 나치정권은 통치사상에 해로운 존재들을 게토화시켜서 독일 시민들의 눈을 가렸습니다.유태인과 롬인, 그리고 여러 사회적 약자들을 게토화시켜서 독일시민들이 나치정권의 통치사상에 적극 협조하도록 만들었죠.유태인들도 그들의 역사적 경험때문에 불의한 요구에 무저항으로 순응해 버렸습니다.그들의 무저항은 나치가 이용하기에 너무나 효율적이었죠.결국 유태인만 600만명을 학살할 때까지 저항은 없었습니다.일본 역시 메이지유신 이후에 일본 열도 내에서 감당하기 힘들었던 경제발전의 후폭풍을 미개한 조센징(?)을 게토화시키는 데 이용했습니다.쇄국정책과 동학혁명, 서구열강의 제국화에 힘을 잃은 대한제국은 스스로 미개함을 인정하고 일본 천황에게 충성을 맹세했죠.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느냐고 질문하셨는데,지금도 여전히 진행중입니다.한반도의 최근 역사에서 한반도 땅의 독재자들은 끝도 없는 게토화(약자를 범죄자 취급하며, 모든 수단을 동원해 더 많이 죽음으로 내몰고 있죠)를 통해 시민들이 독재에 저항하지 못하도록 만듭니다.악의 평범성(Banality of evil), 독일계 미국인 정치철학자 한나 아렌트가 1963년 저작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에서 제시한 개념인데요.독일 나치는 가스밸브를 여는 사람이 그렇게 하면 유태인들이 죽는다는 것을 모르게 철저히 분업화했습니다.전범재판에서 아이히만은 상부의 지시에 따랐을 뿐이라고 변명했습니다.지난 80년간 한반도에서도 수 없이 많은 학살이 자행되었습니다.한반도에서 80년 동안 독재자가 자행한 학살에 희생당한 시민들은 50만명이 넘을 것입니다.어떻게 그렇게 많이 죽었느냐고요?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났는데도 전혀 알지도 못하고 살 수 있느냐고요?독재자들은 자신의 통치를 정당화하기 위하여 게토화를 효과적으로 이용하기때문입니다.100년 전 독일에 살았던 시민들이나, 지난 80년간 한반도 살았던 시민들도 동일하게 게토화에 적극 동참했습니다.악의 평범성이죠.나는 죽이지 않았습니다.그저 나에게 주어진 투표권을 딱 한 표만 행사했을 뿐이지요.그러니 한 개인이 책임을 질 일은 아닙니다.한 예를 들어 볼까요?여전히 국회는 차별금지법을 통과시키지 못하고 있는데요.이 법은 2007년에 발의된 것입니다.어떻게 차별금지법이 14년 동안이나 국회를 통과하지 못할까요?바로 한반도에 사는 시민들이 게토화를 적극 지지하고 있기때문입니다.하루에 3명이 산업재해로 죽어나가도 산업근로자의 게토화는 계속 되어 왔습니다.2021년 드디어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되었습니다.그러나 이 법으로 처벌을 받은 경우는 아직 한 건도 없습니다.생각해 보십시오.1명이라도 산업안전법을 어겨 사망하면, 그 회사의 모든 재산을 국가가 환수해버린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그렇게 되면, 우리나라 산업계는 어마어마한 타격을 입을 것이고, 그 결과 산업관련 비용의 증가로 인플레이션이 상상을 초월할 것입니다.그래서 우리는 경제적 이익을 위하여 모두 악의 평범성 뒤에 숨어 살고 있습니다.정말 마지막 결론으로,바로 나와 질문자님의 악의 평범성이 유태인을 학살하고, 지금도 여전히 한민족, 동족들을 죽이고 있는 것입니다.오늘도 내 형제 중 하나가 산업재해, 차별, 게토화로 몇 명이 사망했을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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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
22.0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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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쓰는 공부는 어떻게 할 수 있을까요?
안녕하세요. 장상돈 경제·금융/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글쓰기는 무엇보다 읽기가 먼저입니다.시를 쓰는 공부는 좋은 시를 많이 읽고, 반복해서 읽고, 또 읽어보는 것입니다.시를 쓰기 위해서 공부를 하신다면, 특히 좋아하는 시, 좋은 시를 몇 번을 반복해서 읽으시는 것이 필요합니다.그 다음에는 복제를 하는 것입니다.거의 외우다시피하시는 시를 자기 방식으로 다시 재구성하며 시를 베껴 써보시는 것입니다.그 다음에는 인문학에 관한 산문체의 여러 글들을 읽으시고, 사상과 철학, 세계관, 가치관을 이해하는 것입니다.그 다음에는 신문이나 SNS, TV 등 매체를 통해 현실을 분석하는 능력을 기르는 것입니다.그 다음에는 시어를 창조하는 감성을 기르는 것입니다.세상의 모든 사물과 사건과 존재할 수 있는 모든 것에 열린 질문을 수도 없이 던지는 것입니다.스스로 답할 수 없는 질문에는 답하기위해 인터넷검색을 해 보셔야겠지요.사실 지금 당장 글을 쓰기 시작하셔야합니다.시가 아니라 어떤 문장이든 매일 쓰는 습관을 길러가면서 공부하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시어가 더 감성이 깊어지고 감정이입이 되려면, 자신은 물론 타인의 고독과 고통과 슬픔과 기쁨의 감정을 많이 경험해야할 것입니다.자신의 삶의 체험이라면 더 말할 것도 없겠지만,소설과 수필, 드라마, 영화를 통해서 인간의 다양한 삶의 현장을 간접적으로 체험하시는 것이 필요하겠지요.미리 아름다운 시인 한 분을 만나게 되어 영광이었습니다 ^^
학문 /
문학
22.0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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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소설은 어떤 조건이 있나요?
안녕하세요. 장상돈 경제·금융/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현대 소설을 규정하려면 먼저 현대 이전의 소설과 비교해야할 것 같습니다.우리나라 현대 소설을 1900년 이후로 본다면,그 이전의 소설은 주로 권선징악을 다루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그러나 현대소설은 주제가 분화되고, 2차대전 이후에는 인간이 무엇인지에 대한 본질적인 질문을 던지는 것 같습니다.그러므로 현대 소설이 갖추어야할 주제 설정 자체가,인간이 가지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거나, 이에 답하려고 하거나, 아니면 열린 결말을 던져주는 것입니다.소설을 구성하는 방식이나, 서술하는 방식에서 고전적 소설은 평면적으로 주인공의 일대기를 따라 연대기적 묘사를 한다면,현대소설은 입체적 구성을 따라, 문학적 표현들을 뒤섞어 서술하기도 하죠.그렇기 때문에 현대소설의 문체는 지극히 극사실주의적이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새로운 단어의 조합이나, 상상력을 넘어서려는 문체들을 사용하기도 합니다. 그것은 현대인의 심리를 좀 더 자세하게 묘사하기위한 작가의 시도이겠지요.그래서 사건을 따라가며 서술하기도 하지만, 오히려 복잡하게 사건을 엮어서 독자들이 정확한 사건개요를 파악하기 힘들도록 만들기도 합니다. 이것은 과거 이성주의가 지배하던 시기에는 합리적인 질서가 절대적 가치를 지닌 반면에, 현대사회의 단면인, 질서가 무너진 현실, 가치관의 상실, 탈구조주의적 사고를 반영하기위한 사건 구성이나 서술방식이라고 생각됩니다.주인공 위주의 전개를 통해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주인공들의 대표적인 성격과 계층을 대변하는 모습에서 벗어나,현대소설은 주인공이 누구인지도 정확히 파악하기 어려운 작품이 등장합니다. 주인공이라고 설정되어 있어도, 그의 성격, 계층, 나이, 사회적 유대관계에서 전형적인 인물을 등장시키기 보다는 개성이 강한 존재들이 많고, 특히나 주인공보다 조연들에 대한 맛깔나는 전개가 돋보이기도 합니다.사건의 배경이나 등장인물의 배경 역시 현대소설은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듯 상세히 서술되기도 하죠. 독자들이 전혀 예상할 수 없었거나, 자신의 모습에서 발견할 수 있는 것이지만, 전혀 고려의 대상이 되지 않았던 배경들을 부각시키기도 합니다.현대소설의 결말은 앞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열린 결말이 많아서,독자들이 소설의 결말 이후를 끝없이 유추하도록 만들기도 하죠.인터넷 소설은 초현실주의, 비현실적 배경들을 기술하여 단기적인 관심을 끌거나,소설의 전개를 아주 빠르게 진행하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마치 온라인 게임처럼 구독자가 적극적으로 참여하기도 하고, 출판을 목적으로 하지 않기때문에 몇 부로 나누어 쓰기도 하고,구독자들의 반응에 빠르게 대응하는 글쓰기 방법이 형성되는 것 같습니다.소설이 예술성을 가지기 위해서는 결국 독자들을 감동시켜야하는데,요즘은 너무나 세분화되고 개성적인 사회이므로, 소설 역시 세분되고 전문적인 분야로 나뉘어지는 것 같습니다.
학문 /
미술
22.0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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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로마 신화로 불리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안녕하세요. 장상돈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로마라는 나라는 그리스의 인문학적 우위를 인정했기때문에그리스신화를 그대로 수용합니다.로마시민들은 신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았지만,그리스어를 사용하고 그리스문화를 그대로 받아들였습니다.고대 그리스 북부,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더가 그리스문화를 전세계에 전파하기위해 정복전쟁을 했다고 알려져있는데요.로마도 마찬가지였던 것 같습니다.시이저, 또는 카이사르라고 불리는 사후에 신이라 칭해졌고,그의 뒤를 이은 옥타비아누스(율리우스 카이사르의 양자로, 유언에 의해 후계자가 됨)는 아우구스투스(존엄자, 신의 아들)란 칭호를 받았지만, 황제가 되려하지 않았고, 원로원을 유지했으며, 그가 죽자, 원로원과 민회는 곧바로 그를 신으로 선포합니다.이렇게 본다면, 그리스신화는 로마제국 초기에는 민간에 전해져내려오는 신화이고, 그리스어 속에 존재하는 신화였을 것입니다.그러나 공화정 말기가 되면, 자신을 황제라 칭하는 이들이 등장하고,이들은 태양신숭배를 강조하며 자신의 황제권을 주장하게 됩니다.로마제국이 멸망하고,유럽은 르네상스를 맞이하게 됩니다.르네상스의 복고열풍이 로마전성시대를 연구하게 되고,이 시기에 그리스신화와 로마신화는 거의 혼합된 형태로 예술세계에 등장합니다.그림이나 조각, 문학작품이나 사상에도 그 기원을 그리스신화에서 찾으려고 합니다.그래서 그리스신화와 로마신화는 유럽의 문예부흥을 통해 전세계에 가장 널리 알려지게된 것이죠.질문에 답하자면, 로마와 그리스가 그들의 신화를 전한 것이 아니고,중세시대를 지난 후, 르네상스시대에 그리스로마신화는 함께 연구되었다고 보는 것이 맞을 것 같습니다.
학문 /
역사
22.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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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인들은 왜 중화사상을 가지게 되었나요?
안녕하세요. 장상돈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현대 중국인들이 중화사상을 새롭게 창안한 것이 아닙니다.중국의 중화사상의 뿌리는 아주 깊죠.중국의 오랜 역사 속에 한족(漢族)은 지배층을 유지했습니다.그렇기때문에 한족이 가장 지배층이고, 그 외의 민족들에 대해서는 낮추어보려는 것이죠.중국 (中國) 역시, 세계의 중심 나라라는 의미이잖습니까?세계의 중심이 중국이고, 중국 내의 소수민족과 주변 민족들보다 오랜 지배계급을 유지해온 한족이 우수하다는 생각을 하는 것은 당연해 보입니다.여기에 덧붙여 시진핑은 유학, 공자사상을 강조하기 시작했는데요.공자는 춘추전국시대에 중국을 다스리는 천자를 중심으로 백성들의 마음을 충성심으로 묶으려고 노력했었죠.사실 공자보다, 장자, 노자사상이 더 철학적이고 인문학적 가치를 높일 수 있지만,이분들은 지배계급에 대한 저항을 언급했기때문에 강조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시진핑주석이 미국 트럼프전대통령과 무역전쟁을 해야했습니다.전쟁은 당연히 자국중심주의로 뭉치게 만들죠.트럼프는 중국과 무역에서 발생하는 적자를 메우기위해 상상도 할 수없는 일을 벌였습니다.21세기에 보호무역을 주장했으니까요.사실 세계화, 또는 WTO(세계무역기구)체제는 미국이 전세계를 상대로 자국의 이익을 극대화하기위해 모든 무역장벽을 없앴습니다.그런데 미국이 지난 75년간 WTO를 운영하면서 남긴 막대한 이익은 생각하지 않고,관세를 부과하겠다고 했습니다.그 결과는 미국 내 기업과 농업에 치명적이었죠.그 결과, 의례적으로 트럼프는 재선에 실패합니다.그렇다고 현 바이든정부가 이 전쟁을 종전선언하지도 않았습니다.질문자님이 중국인이라면 이런 무역전쟁 상황에서 어떤 생각을 하시겠습니까?당연히 자국중심주의, 또는 자국이기주의로 치우칠 수 밖에 없겠지요?지금 중국은 미국과 전쟁 중입니다.우리나라를 생각해 보면 어떨까요?남과 북이 대치상태입니다.과연 남한에 살고 있는 사람이 북한을 인정할 수 있을까요?어떻게 해서든 북한이 전쟁을 포기하고 남한에 항복하기를 바랄 것입니다.중국도 마찬가지입니다.중국인들을 중화사상에 빠지게 만든 것은 미국이죠.냉전시대가 끝났다고 하지만, 여전히 서방국가로 대표되는 미국은 중국을 협상의 상대국으로 존중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학문 /
역사
22.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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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종교를 믿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안녕하세요. 장상돈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인간이 집단생활을 하지 않았다면, 공동체규칙, 국가제도, 그 외 문화라고 하는 것들이 생기지 않았겠죠.그런데 구석기시대를 지나, 신석기시대 말기, 지금부터 1만년 전, BC6,000년전쯤 농경과 목축을 시작했습니다.농경사회는 더 이상 자연채집활동을 할 필요가 없어졌고목축은 더 이상 수렵활동이 필요 없어졌죠.인간에게는 신체적으로 무기가 될 만한 것이 없으니 먹고 살기 위해 목숨을 걸고 채집과 수렵을 해야했을 것입니다.그러나 농경과 목축은 인류가 더 이상 확률이 낮은 먹거리를 얻는 활동을 하지 않아도 되도록 만들었습니다.그런데 농경과 목축은 지속적으로 잉여노동과 잉여생산물을 발생시킵니다.누군가는 일하지 않는 부류가 생겨나게 되죠.무노동계급의 탄생은 반대로 과노동계급을 종으로 부릴 수 있는 권력을 확대하게 됩니다.더 많은 무노동 생산물을 얻기 위해 부족간 전쟁을 일으켜 노예제도도 만들죠.공동체가 다 먹고도 남는 잉여생산물은 권력과 전쟁을 더욱 부추깁니다.노예제도만 아니라, 농기구와 무기도 발달하게 되죠.그래서, 청동기시대의 유적이 대부분 청동칼, 청동화살촉이죠.그런데 종교는 뭘 믿는 것일까요?구석기시대의 종교는 불확실성때문에 거주지에서 멀리 채집이나 수렵을 나갈 때 격려가 되었을 것입니다. 신석기시대에는 자연재해에 대한 불안을 잠재워주었을 것입니다.부족전쟁이 일어나면서, 전쟁의 결과에 대한 종교적 기대감이 커졌을 것입니다.인류는 승전한 집단과 패전한 집단간 구분이 되었을 것이고,거기에 종교는 정당성을 부여했을 것 같습니다.승전한 집단의 신은 패전한 집단의 신보다 강하고 높은 신으로 인식되었겠죠.사실은 공동체 안에서 무노동계급이 자기들이 놀고 먹는 정당성을 확보하기위해,하늘이나, 초자연적인 존재, 신의 신탁을 받았기때문이라고 주장했을 것입니다.과노동계급의 생산물을 무노동으로 차지하고 노동하지 않는 시간을 권력과 종교를 발전시키는 데에 사용했겠지요.전쟁도 불사하며 자국의 권력과 종교를 다른 나라에게 인정하게 만들기도 했을 것이 뻔합니다.이렇게 전쟁 역시 신탁에 의한 것이고, 신의 명령에 복종하는 권력자인 척 하면서 전쟁에 참여하는 군인들에게 신탁이라며 전쟁의 명분을 삼았을 것입니다.상대 부족도 동일하게 전쟁에 임하였을 것입니다.그러니 승전한 부족의 신은 패전 부족의 신보다 높은 신이라고 인정하게 되었겠지요.인류 최초의 토판 문자가 기록된, 지금의 터키와 시리아지역에서는,달과 별을 신으로 모셨습니다.이집트가 숭배했던 태양은 인간과 생명을 태워 죽이는 파괴의 신이지만, 달과 별은 밤길을 안전하게 지켜준다고 했다는 군요.그리스 로마신화에 나오는 신들은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지역의 신들과는 다르게 보입니다.제우스같은 그들의 신은 사실은 전쟁 영웅을 형상화하지 않았나 생각해봅니다.사실 그리스문화에서 신은 없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그런데 신화에 나오는 신들을 숭배하게 된 이유는 전쟁영웅을 칭송하기위한 방법이 아니었을까 생각해 봅니다.지금의 이스라엘로 불리는 유태인들에게 신은 하나님(우리말 번역으로)이고,그들의 신은 메소포타미아의 창조설화와 이집트의 신전으로의 항해, 그리스신화의 전쟁영웅이 모두 합쳐진 개념으로 발전한 것으로 보입니다.질문자님이 종교때문에 시작된 전쟁을 언급하셨기에, 혹시나 유대교와 이슬람교 사이의 전쟁을 염두에 두셨나 생각해 보고 설명해 봅니다.유대교의 신에 대한 히브리어식 발음은 '야훼', 이슬람교는 '알라', 한반도 고조선의 신은 한자로는 '환인(桓因)'이며, 한민족에게는 '알'로 발음될 수 있을 것입니다. 이 세 신의 이름은 모두 근원, 시작, 'I am who I am', '최초 근원으로서 스스로 있는 자'의 개념입니다.기원전 2,500년경, 세계 최대의 삼각주 평원이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 메소포타미아에 제국화가 시작됩니다.인류 최초의 제국화를 위한 이 끝도 없는 전쟁을 피해 현재 팔레스타인지역으로 이주한 아브라함이라는 사람이 장남, 이스마엘을 아내 사라의 몸종이었던 이집트여인에게서 낳았습니다. 이후에 사라는 이삭을 낳았다고 합니다.한 조상, 아브라함 아래 태어난 첫째 아들은 이슬람교의 근원이 되고,둘째는 유대교의 조상이 됩니다.유대교와 이슬람교는 유일신사상을 가지고 있습니다. 유대교는 하나님, 이슬람교는 알라 외에 다른 신은 인정하지 않는 것이죠.그러나 한반도의 환인은 하늘님으로 유일신이라기보다는 모든 신의 통칭, 범신론적인 느낌이 강합니다.이 두 개의 종교, 유대교와 이슬람교는 다른 종교나 다른 신을 인정하지 않을 수 밖에 없습니다.그렇다고 다른 신을 인정하지 않는 종교적인 이유로 전쟁을 하는 것은 아닙니다.서두에서 설명드린 것처럼, 전쟁은 경제적인 이유입니다.더 일하지 않고도 더 많은 소유를 갖게 되고, 가진 소유의 가치를 더 높이려는 의도이지요.제국들이 식민지를 만들고 플렌테이션을 통해 부를 쌓은 것이나,일본이 2차대전에 뛰어들어 아시아를 일본제품 소비자로 만든 이유도 마찬가지입니다.그런데 말입니다.종교는 평화를 지향하고, 불의에 저항하도록 설계되어있습니다.이런 정의로움이 없다면, 누가 종교를 관심이나 갖겠습니까?그럼, 왜 종교때문에 전쟁이 일어날까요?종교도 역시 경제적인 문제를 안고 있습니다.종교적 신념은 검소하고 박애를 강조하지만, 종교 역시 경제공동체이기때문에, 권력과 전쟁을 통해 더 많은 부를 축적하려고 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유대교, 이슬람교, 기독교, 불교 등 종교지도자들이 부를 쌓았다고 생각해 보십시오.자신들이 누리는 무노동으로 잉여자본을 얻을 수 있는 기회를 과연 그들이 가진 종교 경전이나, 진리라는 개념에 맞지 않는다고 내려놓을 수 있겠습니까?공동체와 공동체간 전쟁, 부족간 전쟁, 국가간 전쟁과 마찬가지로, 종교도 영역다툼이 생기겠죠.한반도에는 단군신화가 전해 내려옵니다.홍익인간, 재세이화는 동학의 인내천사상으로 이어집니다.이 사상은 고려의 몽골제국 침략때문에 형성되어진 사상이라고 볼 수 있고,단군신화는 한반도 시민들이 제국을 형성하기위한 침략전쟁을 생각도 하지 못하게 만듭니다.지금 전세계는 한반도에 살고 있는 너무나 이상한 인류를 바라보고 있습니다.어떻게 국가가 수천년간 평화를 사랑하고,자국의 이익을 위해 이웃 국가를 침략하려 하지 않고, 상생하려고 할 수 있을까요?물론 한반도의 지정학적 영향도 있겠지만,저는 개인적으로 한반도에 살고 있는 한민족의 종교, 단군신화 속 철학과 사상을 생각해봅니다.아마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종교는 평화와 정의를 표방할 것입니다.그러나 종교전쟁이 일어나는 이유는 종교적 신념보다 권력과 전쟁을 선호하기때문일 것입니다.만약 우리 민족처럼, 평화와 정의라는 신념을 위하여 권력자들의 전쟁욕망을 거부할 용기가 있다면, 인류의 종교는 그 종교가 가진 참됨을 실천할 것입니다.결국 종교가 문제가 아니라, 사람이 문제인 것이죠.
학문 /
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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