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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대왕은 신하들의 반대에도 왜 한글을 만들었나요?
안녕하세요. 장상돈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세종의 아버지는 태종 이방원인데요.태종은 이제를 세자에서 폐하고, 충녕대군이었던 이도를 왕세자로 임명합니다.이유는 충녕대군이 총명하고, 학문을 즐겨하고, 정치를 알고, 의견을 잘 제안했다고 하네요.태종은 이도에게 임금 자리를 양위하고, 상왕으로 물러나 세종대왕을 도왔다고 합니다.태종은 개국공신들을 모두 제거하고 왕권을 강화해 두었고, 세종대왕은 상왕 아래에서 열심히 공부했던 것 같습니다.스트레스도 엄청 났을 텐데, 그래서인지 음악에 아주 능했다고 하는군요.세종대왕은 한글창제만 아니라, 우리나라 국악의 기틀을 마련하셨는데요.박연을 기용해 아악을 정리하셨고, 정간보(음의 시가 표기법) 편찬, 중국산 편경의 국산화, 악서 찬정, 여민락, 보태평, 정대업 같은 음악 제정이 제위기간에 완성되었습니다.세종대왕은 절대음감을 가지고 계셔서 궁중 악사의 연주의 틀린 부분을 지적하실 정도였다고 하네요.장영실을 기용해 천체를 살피는 기구와 농사기술도 개발하셨죠.도량형을 통일하여 널리 동일하게 사용하게 했고,농사직설, 대마도정벌, 4군6진, 집현전, 고려사 편찬, 법전 편찬, 해시계 양부일구 제작, 물시계, 자격루 발명, 총통, 신기전, 자격루 개발, 칠정산 편찬까지 뭐 수도 없이 많은 일들이 일어났네요.훈민정음의 필요성은 집현전의 학문적 분위기에 더 크게 영향을 받았을 것이라고 보는 데요.훈민정음 해례본은 이를 잘 드러내 주는데요. 훈민정음 해례본이 발견되면서 훈민정음 창제의 비밀이 밝혀졌습니다. 자음은 발음 기관의 모양을 본떠 만들고, 모음은 천지인을 본떠 만들었다고 밝혀놓았는데요.자음이 발음기관의 모양을 본떠 만들었으니, 과학적이고,모음은 우주를 이루고 있는 천, 지, 인을 본떠서 기본자 '∙', 'ㅡ', 'ㅣ'를 만들었다고 하니 철학적입니다.기본자를 한 번 합성하여 초출자를, 두 번 합성하여 재출자를 만들었다네요.하늘과 사람, 하늘과 땅의 조화를 의미하는 조합들이랍니다. 'ㅏ'는 사람과 하늘의 조화, 'ㅗ'는 하늘과 땅의 조화 뭐 그런 의미를 담았다는 것이지요.이런 음가와 구강의 모양을 과학적으로 본떠는 것은 세종대왕의 절대음감도 한글 창제에 큰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 생각해 봅니다.어쨌든 세종대왕의 이러한 노력들은 결국 애민사상이었을 것이고, 그의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에도 불구하고 백성들이 효과적으로 삶에 적용하지 못하는 것이 언어 문제라고 생각하신 것 같습니다.효행록, 삼강행실도(그림으로 교육적 자료를 배포) 등의 노력이 효과를 거두지 못하자,언문의 필요를 더 크게 느꼈던 것 같습니다.한자와 그림으로 그려서라도 백성들의 삶이 행복하기를 바라셨고,집현전이 확대되면서, 지혜가 있고 총명한 이들을 발탁하셨는데,이들의 학문적 노력에서도 소리 글자인 언문이 필요하다는 것이 느껴진 것 같습니다.결국 훈민정음, 한글창제는 한자로는 세종대왕의 애민정신을 다 담아내지 못해서 탄생하게 된 것이 아닌가?또, 백성을 사랑하는 세종대왕의 마음이 너무 지나쳐서 창제되지 않았나 생각해 봅니다.과연 신하들이 모두 반대했을까?제 생각에는 최만리와 정창손의 반대 상소 역시 충심이었다고 생각됩니다.그리고 반대하는 신하들만 있었던 것은 아니라고도 생각합니다.이미 태종께서 개국공신들을 제거하시고, 새시대를 열 수 있는 신하들을 조정에 발탁하셨기때문에, 세종의 업적을 도운 신하들이 훨씬 많았지 않았을까요?그렇지 않다면, 어떻게 32년 재위기간에 저렇게 많은 일을 할 수 있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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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23.0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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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건축물이 무엇인가요?
안녕하세요. 장상돈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사찰로는지금의 전등사, 처음 지을 때 이름은 진종사삼국시대인 381년, 고구려 소수림왕 11년, 아도화상이 지금의 자리에 진종사眞宗寺를 창건했고, 고려 충렬왕 때 송나라에서 가져온 대장경을 보관하게 하고,옥등(玉燈)을 시주해, 전등사라 이름을 바꾸었다고 합니다. 인천광역시 강화군 길상면 온수리의 정족산에 위치해 숱한 전란에도 건재할 수 있었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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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23.0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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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토벤은 청각장애인 맞은가요? 노래를 어떻게 들을 수 있나요?
안녕하세요. 장상돈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베토벤이 청각장애를 가진 것은 사실이지만, 완전히 청력을 상실했는 지에 대해서는 다른 견해도 존재하네요.미국 오하이오주 켄트주립대 음악학 교수인 시어도어 알브레히트는 베토벤이 왼쪽 귀는 들을 수 있었다고 주장하는군요.베토벤은 1827년 세상을 떠났고,1824년에 교향곡 제9번의 초연 때 뿐만 아니라, 1826년 3월 현악4중주 제13번 내림나장조(작품 130)를 마지막으로 지휘했을 때까지 완전히 귀가 안 들린 것은 아니라고 주장하네요.대부분 그의 말년에는 청각이 전혀 기능하지 않았다고 주장하고 있기때문에,그런 측면에서 살펴본다면, 베토벤이 청각을 잃기 전에 이미 많은 작품을 작곡했기때문에,귀가 들리지 않는 것이 오히려 작곡에 전념할 수 있었던 동기라고 주장하죠.1798년쯤 귀에 이상을 느꼈던 것으로 보이고,1801년 친구에게 보낸 편지에서 '3년 전 귀가 안 들리기 시작했어'라고 처음으로 고백했고,이듬해에는 '세련된 대화도 불가능하다. 마치 사라진 사람처럼 따로 살아야 해. 다른 사람보다 더 정확해야 하는 이 감각의 결함을 인정할 수 없어.'라는 말을 남겼기 때문에 청각이 그의 대화에 심각한 문제를 일으켰다고 생각하게 합니다.그리고 '대화책'이란 것을 들고 다니면서 글로 써서 대화를 했는데, 이런 그의 행동도 청력을 상실했다고 생각하게 하는 것이죠.그러나 알브레히트는 1798년 청력을 잃기 시작한 베토벤은 1818년부터 이 '대화 책'을 들고 다녔고,베토벤의 대화 책 중 1823년 작성된 한 장에는 베토벤이 자신의 청력 감퇴에 대한 한 낯선 사람의 충고를, '목욕과 시골 공기는 많은 것을 향상시킬 수 있다. 너무 일찍 기계 장치(나팔형 보청기)를 사용하지 마라. 그것들의 사용을 자제하는 방식으로 나는 상당히 내 왼쪽 귀를 보존해왔다'고 적었는데, 베토벤이 '가능하면, 글을 통한 대화가 더 낫고 청각은 예비가 될 것'이라고도 기록해 놓은 것으로 보아, 베토벤이 여전히 소리를 들을 수는 있었다고 주장하네요.청력을 서서히 잃어가면서 베토벤이 느낀 충격과 이로 인해 사람들과의 접촉을 피하고, 더욱 작곡에 몰입했다고 보는 것이 맞을 것 같습니다.청각장애가 베토벤이 죽기 전 어느 시점에 어느 정도의 장애가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완전히 청력을 상실한 것은 아니었다고 볼 수도 있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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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23.0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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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노비제도는언제없어졌나요?
안녕하세요. 장상돈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조선 후기, 1886년 2월 6일, 고종황제는 노비세습제 폐지를 공포했답니다.동학농민혁명은 고부군수 조병갑의 수탈에 항거하기 위해 시작된 농민들의 봉기였으나,양반, 양인, 천민으로 나눠진 신분제도 1984년 갑오개혁(고종 31년)에서 신분제도가 폐지되었고,2년 후 고종황제는 노비세습제도 폐지하면서, 노비제가 완전히 폐지되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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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23.0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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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이 해가 지지 않는 나라라고 불린 이유는?
안녕하세요. 장상돈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영국이 15세기부터 식민지로 삼았던 지역들,British Empire(브리튼 제국)은 15세기 대항해시대에 20세기까지 식민지를 건설했고, 이 때 대영제국의 통치 지역은 세계 역사상 가장 큰 영토였죠.위 지도에서 보듯이 전세계 어느 지역에나 식민지가 있었기때문에, 해가 지지 않는 나라라고 불렸죠.1921년에는 당시 전 세계 인구의 약 4분의 1에 해당하는 4억 5천 8백만 명의 인구,지구 육지 면적 1/4에 해당하는 대략 35,500,000 평방킬로미터의 영토를 차지하게 되었습니다.그러나 세계대전을 두 차례 치르면서 대영제국은 사라졌고, 영국연방이 되었으며, 식민지들은 독립했죠.마지막으로 홍콩이 반환되었고, 아르헨티나의 포클랜드전쟁도 겪었죠.그러나 여전히 영국의 영토들이 세계 곳곳에 남아있습니다.영국 영토만 아니라, 영국 왕실의 영토도 3개나 있죠.14개의 해외영토영국령 인도양지역, 사우스조지아 사우스샌드위치 제도, 영국령 남극지역, 케이맨제도, 세인트헬레나, 핏케언 제도, 앵궐라, 몬트세렛, 영국령 버진 아일랜드, 지브롤터, 터크스 케이크스 제도, 버뮤다가 있고, 이 모두를 합쳐도 인구가 25만이 되지 않기때문에, 이 지역은 독립을 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이 영국령 지역들은 영국 정부로부터 자치권을 부여받아 행정이 유지됩니다.왕실령은 영국 국왕에게 소유된 영토인데, 채널 제도, 맨섬으로 영국의 주변에 흩어져 있는 섬입니다.케이맨제도는 자치권을 가지고 있어서 영국령으로 분류되지만, 왕실령이라고 표기되기도 합니다.조세피난처로 유명한 곳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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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23.0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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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나라나 자기만의 신화를 가지고 있는것 같습니다.
안녕하세요. 장상돈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건국신화는 기록된 역사적인 배경이 있습니다.단군신화 역시 고려의 승려였던 일연이라는 분이, 아마도 고려 정부의 지원을 받으며 기록을 남겼을텐데요.이분은 승려이지만, 보각국사(普覺國師) 지위에 오른 분이죠.역사적 배경은 몽골의 고려 침공인 것 같습니다.고려는 원나라의 속국이나, 식민지로 편입되었던 시기라고 볼 수도 있을텐데요.이렇게 되면, 나라를 완전히 잃어버릴 수도 있죠.그래서 원나라와는 다른 고려의 역사적, 지역적 독자성과 문화적 우수성을 강조하기 위해 건국신화를 기록한 것입니다.특히 고조선을 고려 왕조의 기원으로 보고, 단군 조선(檀君朝鮮)으로부터 삼한(三韓)과 삼국을 거쳐 고려에 이르는 역사를 설정했죠.질문자님의 질문대로, 단군신화가 우리 민족에게 주는 교훈 중 가장 큰 부분은 우리는 원나라가 아니란 것입니다.침략 당한 나라로서, 홍익인간, 재세이화를 강조하는 것은 방어적 요소가 강해 보입니다. 호랑이가 아닌 곰도 수사학적으로 공격적이지 않고 방어적이죠.여기에, “바람의 신[風神], 비의 신[雨神], 구름신[雲神]등을 거느리고는 곡식과 목숨과 질병과 형벌제도와 선악의 구별 등을 다스리면서 인간세상의 삼백예순 일들을 갈무리하였다.”고 하는 기록은 제국을 거부하고, 일반 시민들을 위한 정치를 중요하게 생각해야한다고 강조함으로써, 원제국화에 대한 거부를 드러냈다고도 할 수 있겠지요.이후로 우리나라는 다른 나라를 침공한 적이 없고, 방어적이었으며, 시민을 위한 정치가 우선되어야한다는 의식이 강하게 되었다고 하 수 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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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23.0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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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로마 신화는 어떻게 전해지는 건가요?
안녕하세요. 장상돈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글이 있었죠. 헬라제국을 형성한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마케도니아와 그리스, 소아시아, 이집트, 아케메네스 왕조, 그리고 지금의 파키스탄 변경(당시 인도)까지를 병합하고 중국으로도 제국을 확장하려고 했으나, 부하들의 반대로 제국확장을 그만 두었죠.알렉산더가 헬라제국을 확장한 이유는 바로 그리스문명의 확산이 그가 할 소명이었기때문입니다.그의 스승은 아리스토텔레스로, 아버지 필리포스가 그를 가르치도록 했습니다.그리스어로 가장 오래된 문학작품은 기원전 8세기 호메로스의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가 지금까지도 전해지고 있죠.동시대에 헤시오도스도 '신통기', '노동과 나날'을 남겼고, 여기에 그리스신화와 관련된 신들의 서사가 등장합니다.그리스신화를 채용한 로마신화는 로마제국 초기에 존재한 신화는 아닌 것 같습니다.로마시민은 신을 믿지 않았습니다.위대한 정쟁 영웅을 신으로 묘사했죠.최초의 로마 전쟁영웅 신격화는 '시이저(Gaius Julius Caesar)'겠죠.기원전 42년 원로원을 그를 신으로 Divus Caesar라 부르기 시작했습니다.그러나 이후 로마제국이 국교로 정한 기독교는 신화를 모두 파기해 버렸기때문에, 그리스신화도 자취를 감추죠.그리스 로마 신화는 중세시대가 마감되는 르네상스를 여는 시기에, 고전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복고풍이 유행하면서 각 분야에서 그리스신화를 자주 인용하게 되었죠.로마신화는 이런 시기에 중복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그런데, 우리가 읽고 있는 그리스로마신화는 19세기가 되어서야 편집된 내용입니다.19세기 미국의 교사이자 작가인 토마스 불핀치가 편집한 것이죠.편집이기때문에, 고대 그리스인들이나, 로마인들이 전수했던 내용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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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23.0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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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군이 최초의 국가인 고조선 건국한 연대가 언제인가요?
안녕하세요. 장상돈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단군 건국 년도는 단기라고 기록하고,서기 보다 2333년이 앞서기 때문에,BC 2333년이라고 할 수 있고,단기계산이나 지금부터 몇 년 전이었는지를 계산하려면,서기 + 2,333년 하면 됩니다.지금이 2023년이니,2023 + 2,333 = 4,356년즉 단기 4356년 또는 4356년 전에 단군이 고조선을 건국했다라고 말하면 되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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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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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탄 이라는 나라는 왜 불행한 나라로 전락했나요?
안녕하세요. 장상돈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우리나라와 UN 국가별 행복지수로 비교해 보면,부탄이 우리나라보다 행복지수가 높았던 적은 없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그러나 2010년, 영국 런던에 있는 신경제재단이 지구촌행복지수를 발표했는데, 부탄이 1위를 했습니다.신경제재단의 지구촌행복지수를 측정하는 지표는 삶의 행복, 환경오염, 기대지수로, 국가총생산보다 생산을 위한 자원을 얼마나 적게 투입하느냐로 지수를 측정했습니다.부탄에 살고 있는 분들이 행복하다고 생각하는 지수가 높으려면, 산업을 활성화시키지 않아야 하는 셈이죠.부탄은 자체 행복지수도 만들었습니다. GNH(Gross National Happiness)로 얼마나 행복하다고 느끼느냐를 설문한 것입니다.이렇게 2010, 2015년에 통계조사를 한 후,행복하다는 사람은 더 행복하게, 행복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행복을 느끼도록 국가 정부가 만들겠다고 선언한 것입니다.그래서 지구상에 가장 행복이라는 것을 중요하게 여기는 나라로 부탄이 생각되도록 했죠. 그러나 UN이 조사한 국가별 행복지수에서는 부탄은 100위 근처에 있었고,위 도표에서 보듯이 부탄 국가 정부는 이 조사에 응하지 않고 있습니다.질문자님이 말씀하시는 것처럼 부탄이 행복에 젖어 있었던 적도 없고, 가장 불행한 나라가 된 적도 없습니다.그냥 조사 방식이 다른 통계를 잣대로 사용한 것을 일직선상에 놓고 보았기때문입니다.부탄의 백성들은 왕과 함께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하게 잘 살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그러나 질문자님이 부탄에 가서 그 나라 백성이 되어 살기를 원하지 않으신다면, 질문자님의 관점에서는 그 나라는 행복한 나라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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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23.0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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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보다가 민며느리에 대해나오던데요
안녕하세요. 장상돈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한자로 '豫婦'예비신부네요^^10살쯤된 여자아이를 미리 데려다가 키우고,혼인할 나이가 되면, 자기 집으로 돌려보내 혼인준비를 하도록 하고혼례를 치르는 경우로,주로 가난한 집안의 여자 아이가 조금은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집으로 민며느리가 되는 경우가 있었다고,'옥저'의 풍습으로 기록되어 있는 제도네요.'민'은 미리의 줄임말, 밀이 며느리와 결합되면서 발음이 민으로 변한 것이 아닌가 하더군요.그러니까 '미리 며느리'라고 보면 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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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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