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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도국이 기후위기의 책임을 져야하는 것이 옳은 것일까요?
안녕하세요. 장상돈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개발도상국은 국제정치에서 힘이 없기때문에, 어쩔 수 없이 힘 센 나라들의 압박을 견뎌내야합니다.기후위기에 대처하기위해 국제사회가 규정을 만든다면, 당연히 개발도상국들을 더 힘든 상황을 맞습니다.질문자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선진국들이 개도국에게 굳이 더 많은 희생과 노력을 요구하지 않는다고 해도,동일한 원칙을 적용해 버리면, 선진국은 이미 기후위기 대책으로 합의할 규정으로부터 자유로운 산업에만 치중되어 있고,개발도상국들은 아직 규정을 지킬 수 있는 경제상황이 되지 않았기때문에 어려움을 겪을 수 밖에 없지요.탄소배출권을 예로 들자면, 할당량시장이 형성되어, 탄소를 배출할 수 있는 총량만큼 산업을 유지하고, 부족하면 더 사들여서 산업을 지속하고, 남으면, 팔 수 있죠.크레딧시장은 교토의정서 감축의무국가들이 개발도상국가의 온실가스 배출 저감 사업에 투자하여 개발하고, 그 저감된 양을 UN에서 인증을 받아, 그 양만큼 탄소를 배출할 수 있는 권리가 만들어집니다.이러한 크레딧의 유통시장에는 온실가스 배출 저감 프로젝트 참여자가 획득한 크레딧을 매매하는 시장으로,프로젝트 참여자 외에도 최종 수요자 및 중개 기관 등 다양한 참여자가 시장을 형성하고 있습니다.이런 예들로 보면, 환경오염과 기후위기 등 전지구적으로 인류가 직면한 문제를 해결하려는 노력을 부정적으로 볼 수는 없을 것입니다.과연 개발도상국들이 2005년 교토의정서나 UNEP(유엔환경계획, United Nations Environment Programme), IUCN(국제자연 및 자연자원보존연맹, International Union for Conservation of Nature and Natural Resources), 그 외 국제사회의 합의에서 불이익을 당하지 않을 수는 없을 것입니다.그러나 선진국의 환경파괴가 계속 진행될 것 같은데, 그것은 이익집단의 속성때문일 것입니다.이익집단이 아닌 환경론자들의 정치 로비가 어느 정도 힘을 발휘할 수 있을까요?사막화를 막기 위해 몽골과 아라비아사막에 10만그루와 100만그루의 나무심기가 진행되고 있습니다.선진국과 개도국으로 구분하고 있을 상황이 아니죠.전세계 CDM(청정개발체제, Clean Development Mechanism)이 시행되고 있고, 이런 노력을 책임회피하기 위한 보여주기식 프로젝트라고 비판할 수도 있지만,그래도 세계 각국이 함께 힘을 모아 무엇인가를 하고 있다는 것은 중요한 변화이지요.질문자님이 "지금 일어나는 대부분의 환경오염과 기후위기가 정말 개도국만의 책임인지?"를 언급하셨는데,UN이나 탄소배출권, 청정개발체제 프로젝트가 개도국을 희생시키는 사업만은 아니죠.개도국도 지난 천년간 선진국으로 발돋움했다면, 지금의 선진국과 다를 바가 없었을 것입니다.다 함께 이 문제를 해결해 나가야하기때문에,개발도상국의 입장에서는 환경문제를 해결하는 데, 선진국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한 것도 사실이고,어쩌면 선진국이 개발도상국을 압박하는 카드로 환경문제를 사용할 지도 모릅니다.탄소배출량에 의해 수출하는 제품에 관세가 더 높이 책정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그렇다고 하더라도, 개발도상국에만 책임을 지우는 것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모두가 마음을 모아야겠죠.오히려 개발도상국은 청정개발체제 프로젝트를 통해 기간산업을 육성하고, 선진국은 탄소배출권을 사가게 되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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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22.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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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의 정복군주 알랙산더는 페르시아 제국을 정복후 아시아 로 향했는데요 오느날 어느지역까지 진출했었습니까?
안녕하세요. 장상돈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알랙산더대왕은 마케도니아왕국에서 시작하여 그리스를 통합하고, 페르시아제국, 이집트, 이란고원, 인도 인더스강까지 정복했습니다.중국을 정복하고 싶었으나, 오랜 전쟁으로 부하들의 반대로 회군을 하는 도중 사망했습니다.붉은 색으로 지도에 표시된 부분을 10년동안 모두 정복했다고 하니, 전쟁만 한 셈이네요.그런데 알랙산더대왕은 자신이 정복한 나라와 민족의 문화를 존중하고 수용했습니다.그래서 그리스문화, 페르시아문화, 중동지역문화, 인도문화까지 하나의 언어, 그리스어로 통합된 헬레니즘이라는 독특한 문화를 만들어내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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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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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에는 눈이 내립니다. 눈이오면 기분이좋아지는 이유가 있나요?
안녕하세요. 장상돈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익숙하지 않은 경험때문일까요?낯설게하기 같은 느낌이 눈이 내리면 익숙하지 않은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되어 신선한 느낌을 받기때문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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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
22.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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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에서도 '3'이라는 숫자를 좋아하나요?
안녕하세요. 장상돈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좋아하는 정도가 아니라 신념같아 보입니다.숫자 3은 인간이 경험한 현상을 가장 오랫동안 쉽게 기억하는 모든 인문학적 도구들에 스며들어 있는 것 같네요.철학, 수학에서도, 수사학이나 문학작품 속에서도 3등분하거나, 세가지 등장인물의 유형을 구성하거나, 세가지 예를 들어 확증하는 방식에 아주 익숙한 것 같네요.아마도 인간의 기억의 한계나 편의성을 찾아 숫자 3을 가장 적당한 숫자로 받아들이지 않았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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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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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에는 왜 아직도 왕실이 존재하나요?
안녕하세요. 장상돈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워낙 왕실재산이 많아서 왕실재산기관이 관리하고왕과 왕실재산기관은 세금을 내지 않는데요.39조원 정도의 자산으로 연 5천억원 정도의 순이익을 내고왕에게 137억 정도 왕실교부금으로 주는 데, 여기 이런 돈흐름에는 세금면제죠.만약 챨스3세가 왕이 아니라면?왕실재산의 상속세를 내야되겠지요.영국의 왕실재산은 왕이라는 제도를 유지시키는 가장 큰 힘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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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22.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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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잔티움과 콘스탄티노플은 같은 것입니까
안녕하세요. 장상돈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콘스탄티누스대제는 공식 호칭이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플라비우스 콘스탄티누스 막시무스 피우스 펠릭스 빅토르 아우구스투스"라네요.이 사람이 330년에 현 튀르키예 이스탄불에 자신의 이름을 딴 도시를 건설했는데, 콘스탄티누스의 도시라고 콘스탄티노폴리스라 부르게 했네요.그런데 이렇게 신도시를 형성하기 이전의 그 땅을 부르는 이름이 비잔티움이었군요.1557년 신성로마제국의 역사가 히에로니무스 볼프(Hieronymus Wolf)가 제국의 수도 콘스탄티노폴리스의 고대 이름에 착안한 "비잔티움 역사집(CORPUS HISTORIAE BYZANTINAE)" 이라는 사료 모음집을 출판한 것이 비잔티움이라는 이름이 다시 사용된 최초의 기록이라고 하는 군요. 그 이후 몽테스키외 같은 서구 계몽사상가들이 중세의 로마 제국을 '비잔티움 제국'이라고 부르는 현상이 생겼다고 하네요.서로마, 동로마라는 말은 당대에 사용된 용어는 아니고, 당대에는 두 지역 모두 그냥 로마였네요.나라가 둘이 아니라, 행정구역이 나뉜 것이고 사두정치로 각 행정구역에 황제가 따로 있었지만, 한 나라의 행정관으로서의 황제군요.그런 역사적인 사실에 근거하면 동로마제국보다 비잔티움제국이 뭔가 역사를 더 잘 담아낸다고 생각한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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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22.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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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가 안 좋은 가족을 콩가루 집안이라고 하는 이유는?
안녕하세요. 장상돈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요즘은 콩가루를 잘 사용하지 않지만, 과거에는 콩가루를 뿌려서 떡과 떡이 서로 붙지 않도록 했지요.요즘 떡집에는 떡을 먹기 좋게 잘라서 비닐포장을 하더군요.요즘 말을 만든다면 "떡포장지 집안", '포장지 비닐 집안'이라고 해야겠네요^^가족이라는 것은 혈연관계로 아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사이로 생각되지만,어떤 가족은 여러 가지 이유로 서로 관계가 좋지 않지요.그래서 차라리 아무런 관계도 없는 사람보다 가족관계에 있는 사람이 더 싸우고 나쁜 감정을 가지고 있으면, 콩가루집안이라고 할 것입니다. 반대말은 '찰떡같다' 어때요?찰떡이 서로 달라붙기때문에 찰떡 사이에 콩가루를 뿌리는데,질문자님의 가족, 집안 가문, 친구사이가 찰떡같이 긴밀한 관계를 가지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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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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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시를 쓰고싶고 시인이 되고 싶습니다.어떻게 하면 등단을하고 어디에 등단하면 좋은가요?
안녕하세요. 장상돈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시인이 되는 방법은 시를 쓰면 됩니다.그러나 시인으로 인정받으려면, 쓰신 시를 누군가 인정해 주어야합니다.이렇게 인정받는 방법으로는 신춘문예(각 언론사마다 연말인 12월 초까지 원고를 받습니다.)에 작품을 보내는 것입니다.인터넷에 "신춘문예" 검색하시면, 각 언론사의 신춘문예 공모가 게시되어 있습니다.문학잡지에 원고를 보내어 문예지에 보낸 원고가 등재가 된다면,이 방법도 다른 사람들이 나의 시를 읽게하는 방법이고, 시인이라는 공식적인 인정을 받는 방법입니다.마지막으로 시집을 출판하시면 됩니다.신춘문예는 대부분 5편의 작품을 요구합니다.문학잡지는 10편 이상의 시를 보내야 할 것입니다.자신만의 시집을 내시려면 최소 50편 이상의 시를 써야만 하겠지요. 그리고 시집출판의 비용도 듭니다.만약 SNS상에서 자신의 블로그 등에 자작시를 올리고 대중의 인기를 얻는다면, 이것도 시인이죠.공식적으로 시인이라는 호칭을 얻으려면, 대중의 인기가 확인되어 자신의 시가 많이 알려져야할 것입니다.시인으로 돈을 번다는 질문은 아직 시인이 무엇인지의 정체성을 갖지 않고 하신 말씀 같습니다.시를 쓴다는 것은 내 안에 응어리처럼 뭉쳐진 생각들이 마치 진주처럼 눈물로 딱딱하게 굳어진 시어로 세상에 보여지는 것입니다.시인이 아니라도 글을 써서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은 많이 있습니다.굳이 시인이 멋지고 부러운 이유가 직업적인 것뿐이라면, 시를 쓰시는 것을 권해 드리지 않고 싶습니다.공모전에 당선되시거나, 원고가 채택이 되면 원고료를 받으실 수는 있습니다.시집이 팔려서 인세를 받으실 수도 있습니다.나의 시가 인기가 많아서, 전시가 되거나, 각종 영역에서 나의 시를 저작권료를 주고 사용할 수도 있습니다.그러나 수년 또는 수십년을 진주가 만들어지는 것처럼 고통이 따르는 작업입니다.아무도 알아주지 않거나, 문학평론가나 대중으로부터 비평을 혹독하게 받으실 것입니다.그래도 꼭 시인이 되어야하는 이유는,도저히 시로 표현하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기때문이지,멋있어 보여서 시인이 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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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22.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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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키의 나라 이름이 변경 되었는데 그 이유가 ?
안녕하세요. 장상돈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우리나라의 영어식 표기는 Republic of Korea, South Korea가 혼용되지만, 우리는 대한민국, 한국이라고도 말합니다.우리나라도 한 때, Corea로 표기할 것을 주장하는 사람도 있었으나, 영어 철자 하나를 바꾸는 데 들어가는 비용이 어마무시하기때문에, 공론화되지는 않았죠.Türkiye는 튀르크(Türk)인의 땅이라는 의미이고, 우리나라는 튀르키예공화국이라고 표기하게 되었습니다.튀르키예공화국이 이름을 바꾼 것이 아니고, 국제 표기에서 영어식 표기를 바꾼 것입니다.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Türkiye대통령은 2022년 UN에 영어표기를 Türkiye로 변경해 달라고 요청했고, 6월 2일 UN은 'Turkey'를 Türkiye로 국제적 공식표기로 결정했습니다.우리가 사용하던 '터키'라는 음역은 영어표기를 그대로 음역한 것일 뿐, 튀르키예공화국에서는 좋아하지 않습니다.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돌궐족'이라고 우리가 부르는 그 시대에, 튀르키예인들은 Türkiye를 사용해 왔습니다.튀르키예가 영어로 편입될 때, 처음에는 'Turkye'였으나, 어떤 영문인지 영어 철자가 'Turkey'로 바뀌어 버렸죠.영어에서 이 단어는 칠면조, 속어로 겁쟁이라는 의미가 담겨있는 영어단어입니다.튀르키예는 튀르크(Türk)인의 땅이란 뜻이고, 튀르크는 용감하다는 의미를 가졌다고 합니다.어마무시한 돈이 들어간다고 해도 바꿀 만 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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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22.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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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의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기독교를 국교로 삼은 이유가 뭔가요?
안녕하세요. 장상돈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로마의 콘스탄티누스황제를 기독교를 로마의 국교로 삼았다고 하는 것은 좀 잘못된 표현이고요.왜냐하면, 콘스탄티누스황제는 기독교를 공인(밀라노칙령으로 종교의 자유를 인정해 준)한 것이고요.기독교가 국교가 된 것은 테오도시우스황제 때이며, 이로 인해 아이러니하게도 다른 종교는 모두 금지됩니다.기독교 박해를 멈춘 것은 최초의 기독교 황제, 또는 로마의 기독교 박해를 끝낸 황제라고 보는 시각은 서구 유럽의 역사의식입니다. 서로마가 멸망하고, 교황만 존재했고, 동로마는 황제가 교황과 같은 권한을 동시에 행사했는데요.서로마의 교황을 중심으로 역사를 보는 시각에서는 마치 서로마가 기독교 박해를 끝낸 것처럼 말하지만, 사실은 동로마가 먼저 기독교 박해를 끝내고, 기독교를 공인합니다.동로마 황제였던 리키니우스가 콘스탄티누스의 누이와 결혼하는 과정에서 밀라노칙령이 선포되어, 서로마도 기독교를 공인한 것입니다.3세기 로마는 사두정치(서로마와 동로마에 정제와 부제를 두어 통치하도록 함)체제가 있었는데, 이것이 깨어지면서, 동로마에는 이미 일인체제가 확보된 리키니우스와 갓 일인체제를 확보한 콘스탄티누스가 동맹협정을 확인하는 만남을 가진 것이 콘스탄티누스가 자신의 누이를 리키니우스와 결혼시키는 방식이었고, 그 때, 리키니우스가 요구한 기독교 공인을 콘스탄티누스가 승인한 것이라고 보아야 옳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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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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