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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침략기에 항일 운동을 한 근우회는 어떤 단체였나요?
안녕하세요. 신현영 인문·예술 전문가입니다.근우회는 일종의 여성사회운동 성격을 띄고있는 단체였습니다. 1927년 5월에 처음 설립되어 광복운동을 위한 여성 후원 단체였어요. 이전 19년 3.1운동 이후 조직되었던 여러 항일 여성 단체들이 있었으나 대부분 일본의 탄압으로 인해 공중분해 되었습니다. 이후 여성운동은 교육운동이나 신앙운동 계몽 운동등으로 나뉘어 전개되었는데요. 여러 분야로 양분된 운동중 항일민족운동역시 여러 성격으로 분열된 경향이 있었어요. 그러다 강력한 민족운동을 위해 1927년 신간회가 조직되었고 더불어 여성운동 통합론이 일어나 그해 5월 여성운동단체인 근우회가 조직된것입니다. 이 근우회의 목적은 여성의 단결과 지위 향상이었습니다. 당시 일본 식민지 치하에서의 해방과 더불어 봉건사회의 족쇄에서 벗어나서 여성들 스스로의 해방을 함께 제시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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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23.0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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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최초의 현대무용가는 누구라할수 있나요?
안녕하세요. 신현영 인문·예술 전문가입니다.우리나라 최초의 현대 무용가는 최승희로 알고 있습니다. 미국 뉴욕타임즈에서 '가장 아름다운 예술가, 조선 예술은 사람들의 기억에 영원히 남을거다' 라고 극찬할 정도로 조선에서 유명하고 대단한 무용가로 알려져있어요. 심지어 우리가 아는 유명한 작가들인 피카소,마티스 조차 극찬할 정도였습니다. 당시 우리나라에서 춤추는 여자는 화류계나 무당이라고 생각할 정도로 후진적 사고방식의 나라에서 최승희는 굉장히 진보적인 인물이었다는걸 알수있습니다. 일본에서도 큰 성공을 거두고 만능 엔터테이너였던 최승희는 미국 뉴욕 브로드웨이에서 공연을 한 이후 큰 성공을 거두어 세계 순회공연을 할 정도의 업적을 이루게 됩니다. 다만 이런 업적에 비해 안타깝게도 한국내에서의 여론이 매우 좋지 않고 친일파라는 비판에 큰 욕을 먹게 된 이후 월북을 하게 됩니다. 이후 한때 최승희 무용연구소를 차릴정도로 대접 받지만 마지막은 숙청당함으로 삶을 마감한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시대를 잘못 타고 난 천재 예술가인것 같아 안타까운 인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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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23.0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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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 실시 한 의창은 어떤 제도였나요?
안녕하세요. 신현영 인문·예술 전문가입니다.고려시대의 의창은 말씀사힌대로 농민들을 위한 빈민 구제을 위한 창고같은 존재였습니다.풍년이었을때는 곡식을 보관해 두었다가 보릿고개가 심하고 흉년이 심하여 백성들이 굶어 죽어가고 고통받을때 의창을 열어 곡식을 주었습니다. 이는 공짜는 아니고 빌려주는 개념이었던걸로 알려집니다. 보통 식량이 없는 시기에 빌려주었다가 가을 추수를 하고 나서 다시 회수하는 방식을 취했습니다. 대신 이자는 받지 않았다고 해요. 의창이란 개념은 중국에서 시작되서 삼국시대부터 어느정도 전해져왔다고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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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23.0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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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우리나라를 아침의 나라라고 부르나요?
안녕하세요. 신현영 인문·예술 전문가입니다.예전부터 한국을 '고요한 아침의 나라'라고 부르는 글을 종종 봐왔었지요. 이는 한국에서 불려진것이 아닌 '노르베르트 베버'라는 이름의 한 독일 신부가 한국에 대해 이런 이름을 지어 영화를 찍은것에 따온 문구입니다. 독일 선교사였더너 이 베버 신부는 조선에 선교를 위해 오고 난 이후 한국을 깊이 사랑하게 되어 흑백으로 된 무성영화를 남겼습니다. 한국의 아름다운 고유 문화와 정이 가득한 한국인들의 검소한 삶 등 그당시 1920년대의 한국의 모습을 마치 역사 자료라고 할수 있을정도로 상세히 애정을 담아 만들어진 영화라고 합니다. 독일에 돌아간 베버 신부가 이 영화와 더불어 한국에 대해 400페이지에 가까운 책까지 써서 기록에 남겼다고 하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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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23.0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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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년전쟁이 유럽의 판세에 미친 영향은 무엇인가요?
안녕하세요. 신현영 인문·예술 전문가입니다.어찌보면 인류역사상 가장 오랜 전쟁이지 않았나 싶습니다. 1337년~1453년까지 백년이 넘게 영국과 프랑스 왕가에서 영토다툼과 왕권 경쟁을 위해 이뤄진 전쟁이었어요. 영국과 프랑스가 서로의 왕권에 개입하고 적개심을 품고 한치의 양보도 없이 싸우던 전쟁은,, 우리가 익히 아는 잔다르크 이야기를 통해 알수있듯이 프랑스의 승리로 끝나긴 합니다. 종전 이후에는 프랑스 역시 그 후유증으로 인한 피해와 전쟁으로 인한 역병과 정치적인 내분등으로 큰 피해를 입었습니다. 결국 양국 모두 피해를 어마어마하게 입은것으로 보면 전쟁은 대부분의 나라에게 좋지 않은 결과를 가져오는것은 확실합니다. 이 시기에는 전쟁시기답게 기사 계급이 매우 높게 추앙받던 시기이기도 합니다. 이후 종전이 오고 나서 기사계급이 쇠퇴하게 되지요. 결국 백년전쟁 이후 봉건적 군사 제도가 끝나게 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됐다고 생각합니다. 전쟁.기사계급으로 인한 영광과 지위가 아닌 상인.경제쪽으로 기득권이 옮겨지게 되지 않았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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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23.0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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헨델의 대표작은 무엇이며 그 특징은 무엇인가요?
안녕하세요. 신현영 인문·예술 전문가입니다.헨델의 의심할 여지가 없는 대표작은 '메시아'가 아닐까요? 서양 음악에서 항상 단골로 연주되는 음악중 하나이기도 합니다. 음악의 아버지 바흐와 더불어 음악의 어머니로 불리는 헨델은 종교음악으로도 유명하긴 하지만 그보다는 오페라나 오라토리오 쪽으로 큰 업적을 남겼답니다.그 오라토리아 중 하나가 바로 '메시아'라는 작품이에요. 이 메시아는 유럽에서 매해 항상 연주되는 음악일 정도로 매우 유명합니다. 극음악쪽으로 큰 업적을 남기니 헨델이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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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23.0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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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가장 오래 산 왕은 어느 왕인가요
안녕하세요. 신현영 인문·예술 전문가입니다.조선시대의 왕들의 평균적인 수명은 40대 중반이었다고 해요. 아무리 예전 시대라해도 왕이라면 좋은것과 좋은것을 입고 좋은곳에 머물렀을 터인데도 수명이 길지 않은걸 볼 수 있네요. 더욱이 궁에 있는 양반들의 평균수명 50세에도 미치지 못한것을 보면 왕의 삶이 고단했던것을 유추할 수 있습니다.아마 왕위 다툼으로 인한 죽음이나 스트레스가 컸을터이고 당시 의술이 발달하지 않은 탓도 있고 조선시대 왕들은 매우 타이트한 일정을 소화했다고 하니 업무과중에 시달렸다고 생각됩니다. 그럼 왕들중 가장 장수했던 조선시대 왕은 누구일까요? 가장 오래 살았던 왕은 바로 83세에 죽은 '영조'입니다. 다음으로는 태조(74세) 고종(67세) 등이 있습니다. 조선실록으로 유추하건데 전문가들은 영조의 긴 수명의 이유로 소식을 꼽고 있다고 해요. 기존 왕들은 음식을 하루 5끼를 먹었었는데 영조는 3번을 규칙적인 시간에 먹었다고 하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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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23.0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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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카소의 6.25전쟁 담긴 명작 있는데 직접 현장을 보고 그렸나요?
안녕하세요. 신현영 인문·예술 전문가입니다.말씀하신대로 피카소의 유명한 작품중 하나인 [한국에서의 학살]이라는 그림으로 1951년에 그려진 그림입니다. 제 개인적으로 알기에는 피가소가 직접 한국전쟁의 현장을 보고 그린것은 아니라고 알고 있습니다. 그보다는 피카소가 한국전쟁에서 벌어진 학살의 참상을 접하게 되고, 그전의 비슷한 주제로 그림을 그렸던 '프란시스코 고야'의 [1808년 5월 3일의 학살] 이라는 작품과 '마네'의 [막시밀리안의 황제의 처형]이라는 작품에 영향을 받아 그리게 된것으로 보여집니다. 왼편의 전쟁의 희생자들과 오른편에 총을 겨둔 학살자의 대비를 보여주는 이 그림은 실제로 학살자의 주체가 무엇인지(자유주의인지 공산주의인지)를 작가 스스로도 밝히질 않아 여러 사람들의 의견에 따라 다르게 이야기 되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전쟁의 참혹함과 공포감을 잘 묘사한 이 작품이 비슷한 주제의 아주 유명한 [게르니카]와 더불어 전쟁의 야만적인 폭력성을 고발하고 있는 중요한 작품으로 평가 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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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
23.0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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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민지배를 받았으며 식민통치하에서 독립후 유일하게 선진국반열에 들어선 대한민국 세계가 극찬하는데 일본과 대만은 못마땅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안녕하세요. 신현영 인문·예술 전문가입니다.아무래도 타국은 한국과 직접적인 연관이 없는 나라이니 있는그대로 업적을 인정하고 칭찬할 수 있지만 일본은 본인들이 직접 식민지로 통치했던 나라이다보니 역전 되어 보이는 현상을 받아들일 수 없어 하는 듯합니다. 게다가 여전히 섬나라로서의 불안함을 안고있어서 한국으로 진출하고 싶은 정치적 욕구가 존재한다고 생각해요. 일본 입장에서는 한국을 아래로 두어야하는 상황에서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이름을 알릴수록 그 목적에서 멀어지니 경계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대만은 역사적으로 오랜기간 일본과 친교를 맺어오며 좋은 관계를 이어가고 있다보니 이러한 일본의 가치관에 동질감을 가지는 성향이 있는 듯 합니다. 게다가 대만과 한국의 관계가 조금은 비슷한 포지션인 탓도 있습니다. 둘다 반도체로 인해 크게 성장하고 기술력과 경제력으로 인정받고 있는 상황에서 대만과 한국은 경쟁 포지션에 있고 대만 역시 중진국에서 선진국으로 발돋움 하려는 위치에 있기때문에 견제 심리도 섞여 있는 것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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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23.0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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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주운전에 매우 관대한 이유가 뭘까요?
안녕하세요. 신현영 인문·예술 전문가입니다.타국의 나라를 보면 술을 밖에서 마시는것은 알콜 중독자나 하는 일이고 주량의 기준에 대해서도 매우 엄격한 편입니다. 하지만 그에 비해 한국은 술에 참 관대한데요. 주량으로 대결도 많이 해왔고 술을 잘 마시는게 일종의 무용담처럼 얘기하기도 하지요. 예전에 비해서는 음주에 대한 시선이 안좋아지고 있지만 여전히 한국은 음주자체에 대해 관대하다고 생각해요. 이는 우리 사회가 술을 마시는 행위에 대해서 일종의 사회생활로 보기 때문인것 같습니다. 한국은 워낙 워커홀릭처럼 과중한 업무를 감당해야하는 분위기이다 보니 그 과정에서 힘든것을 덜어낸다던지 쌓인 속내를 털어내는 과정에서 어색하지 않거나 다음날 서로 모른척 무마하기 좋게 음주를 많이 이용해왔습니다. 그러다보니 술로 인한 실수나 행태에 대해 어느정도 무마하고 이해하는 사회 분위기도 형성 된거지요. 이런 연장선상으로 음주운전또한 음주로 인한 실수로 다른 범죄보다 더 많은 이해를 받아온 것이 아닐까요?하지만 이 점도 시대가 지날수록 음주를 즐기지 않고 개인의 시간을 중시하는 분위기가 생기면서 지양되고 있는 것 같아 다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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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23.0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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