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프로필
프로필
답변
잉크
답변 내역
전체
학문
파노플리 효과 de panoplie effet는 무엇인가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사람들이 특정 제품을 소비하면서 유사하거나 같은 급의 제품을 소비하는 소비자와 같은 집단, 같은 부류라고 여기는 환상을 가지게 되는 현상을 일컫는 용어인데 파노플리(panoplie)는 프랑스어로 한 세트(set), 집합이라는 뜻하는 단어 입니다. 예를 들어 마치 어떤 사람이 자신이 고급 승용차를 한대 사서 구매 하면 마치 자신이 상류층 사회의 일원이 된것 같은 착각을 일으키게 만드는 효과가 있다는 것 입니다.
학문 /
미술
23.08.28
0
0
세종은 왜 둘째아들 단속을 못해 비극을 불렀나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자식 고집은 부모도 못 말린다고 합니다. 역사상 왕위에 대한 욕심을 가기도 본인의 차례가 아닌데도 왕위를 노린 제왕들은 많았습니다. 조선의 첫 왕인 태조 이성계의 다섯번 째 아들인 이방원은 원래 왕이 될수 없던 자리였습니다. 자기형들이 4명이나 있고 동생이 2명이나 있는데 있는데 2명을 제외 하고는 다 죽이고 본인이 왕이 된 경우 입니다. 태조 이성계가 과연 자식 교육을 잘못 시켜서 일까요? 세종 대왕의 둘째 아들인 수양 대군도 관연 세종 대왕이 자식 교육을 잘못해서 자기 조카를 죽이고 수양이 세조가 되었을 까요?
학문 /
역사
23.08.28
0
0
한국에는 족보가 있는데요, 해외에도 그런 것이 있을까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동양권 뿐 아니라 미국에도 족보라는 것이 나타난 적이 있었습니다. 경제적 여유로 사회적 활기를 보였던 19세기 말엽 아메리카 대륙의 미국인들은 유럽의 귀족 가문에 뿌리를 둔 것처럼 보이는 족보를 다투어 만들어 신분을 과시하려 했는데 유럽 콤플렉스에서 비롯된 유행이었으나, 이때 이들이 제작한 족보는 우리처럼 이름을 적어 뿌리를 밝힌 '문서 족보'가 아니라 얼굴이나 이름을 적은 '그림 족보'가 대부분이었습니다. 이때 족보를 만든 사람들은 대부분 백인이였고 이후 족보 열풍은 1970년대 후반기까지 이어졌는데 당시 '뿌리(root)'라는 TV 연속극이 방영되면서 미국인들 로 하여금 백인들은 물론 흑인들까지 '뿌리' 찾기에 나서도록 만들었던 것입니다. 이에 따라 족보 회사들 이 난립했고 사립 탐정들이 족보 추적에 나서는 일도 벌어졌지만 족보 열풍은 많은 사람, 특히 흑인들에게 조상에 대한 그리움만을 새삼스럽게 일깨워 주었을 뿐, 현실화된 족보를 손에 쥔 사람은 많지 않았다고 합니다. 아프리카 시절에 대한 뿌리 찾기가 사실상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그 추적 비용이 너무 비쌌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나 미국이나 본인의 뿌리가 궁금 한 것은 사람의 본성 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학문 /
역사
23.08.28
0
0
발비온생할 경우가 어떤뜻인가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향후 발생할 경우를 대비해서(o) ==>향후 발비온생할 경우를 대비하여(x)어떤 기관인지는 모르겠지만 오타 라고 볼 수 밖에는 없네요. 발비온생힐 이라는 단어는 우리말에 없습니다. 오타라고 밖에는 생각이 안들구요. 공공 기관도 사람이 하는 일이라 오타가 발생 할 수 있겠지요. ^^
학문 /
역사
23.08.28
0
0
두음법칙은 왜 한자음에만 적용이 되나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두음법칙은 한자어에서만 나타나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한자어에서 더 많이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우리말 단어에는 한자어가 54% 순 우리말이 20% 나머지가 26%가 외래어 라고 합니다. 비율로 봤을 때도 우리말 보다 한자어가 2배이상 많기에 두음 법칙이 한자어에만 나타 나는 것 처럼 보이기 때문 입니다.
학문 /
음악
23.08.28
0
0
프랑스에서는 혁명이 왜 자주 일어났나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프랑스에서 근대에 걸쳐 혁명이 자주 일어난 이유는 경제적, 정치적, 사회적 문제가 복합적으로 얽혀 있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는데 18세기 말부터 19세기 초까지의 프랑스는 국민의 불평등, 국가의 부패, 경제적 고통 등의 사회적, 경제적, 정치적 문제로 인해 불안정한 상태였습니다. 그래서 다른 유럽 국가 들 보다 더 많은 혁명이 일어난 편이였습니다.
학문 /
역사
23.08.28
0
0
감초 같다 라는 말의 유래가 궁금합니다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흔히들 어떠한 일에도 빠지지 않는 다는 의미로 약방에 감초 같다 라는 말을 합니다. 감초 라고 하는 약재는 단맛을 내주는 식용 약재로서 한약에 거의 다 들어 가는 주된 재로 중 하나 입니다. 감초의 단맛이 쓴 한약을 그나마 조금은 달게 만들어 준다고 합니다. 그래서 약방의 감초 라는 말은 어디던 빠지는 않는 것 혹은 사람을 지칭 합니다.
학문 /
역사
23.08.28
0
0
제1회 대회는 1896년에 올림픽의 발상지인 그리스 아테네에서 개최되었는데요, 올림픽은 왜 4년에 한번식 열리는건가요? 역사적으로 이유가 있을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기원전 776년 그리스에서부터 4년마다 한 번씩 열렸다고 하는데 태양력과 태음력의 주기가 4년에 한번 이라서 그렇다고 합니다. 국제올림픽위원회 (IOC)를 창설한 프랑스인 쿠베르탱은 고대 올림픽을 근거로 4년마다 올림픽을 개최하기로 했고 1896년 그리스 아테네부터 현재까지 4년마다 올림픽이 개최되고 있습니다.
학문 /
역사
23.08.28
0
0
중국이 좋아하는 나라와 싫어하는 나라는 어디인가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중국이 제일 좋아하는 나라는 같은 공산 주의 국가인 북한 이겠지요. 러시아도 친한 국가에 속하겠구요. 중국이 싫어 하는 나라는 일본이 대표적일 것 같습니다. 일본은 중국과 청일 전쟁을 하기도 했고 일본은 과거에도 난징 학살등 중국인들을 대량 학살 하기도 했습니다.
학문 /
역사
23.08.28
0
0
설탕은 우리나라에 언제 처음 들어왔고, 그 결과 우리나라 사람들의 체형은 어떻게 변하게 됐나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설탕이 우리나라에 도입되기 전에는 음식에 단맛을 내기 위하여 꿀과 조청을 사용해 왔다고 합니다. 그러나 설탕이 보급되면서 단맛을 낼 때는 설탕을 많이 사용하게 되었는데 설탕은 중국을 거쳐 고려 명종 때 우리 나라에 처음 들어온 것으로 보고 있다고 합니다.
학문 /
역사
23.08.28
0
0
1054
1055
1056
1057
1058
1059
1060
1061
106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