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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십년 전 경제성장기에는 왜 민가에서 막걸리를 제조하는 것을 국가에서 단속하였나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예나 지금이나 술을 직접 만들어 판매를 하려면 주류 제조업 신고를 국가에 해야 합니다. 술을 직접 담궈서 본인이나 가족만 음용을 하는 것은 상관이 없지만 판매를 하게 되면 세금을 내야 하기도 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위생 이나 건강 문제가 발생 할 가능성도 있기 때문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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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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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우디아라비아는 근친혼이 발달된 이유는 무엇인가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사우디 뿐 아니라 이슬람 문화권에서는 사촌간의 결혼이 성행한다고 합니다. 여자는 아버지 쪽의 사촌으로부터 청혼이 들어오면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받아들이는 것이 관례인데 주변에서도 바람직한 일로 여긴다고 합니다. 만일 사촌 간에 적당한 배필이 없으면 가급적 가까운 친척 중에서 고르는 것이 순리라고 하는데 친척이 아니거나 다른 부족, 외국인, 이종교 상대와의 결혼은 샤리아에 저촉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이유는 결혼해서 여자가 남편측에 땅이나 재산을 공유 하게 되는 것을 꺼리는 문화가 존재 하고 종교적인 이유도 있는 것으로 추정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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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23.0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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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봇이란 말의 유래는 어디에서 시작되었나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로봇( Robot)이라는 말은 체코어의 로보타(robota)의 뜻에서 나왔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이는 노예, 일하다, 강제적 노동을 의미하는데 1920년 체코슬로바키아의 작가 카렐 차페크가 희곡 ‘Rossum's universal robots (로섬의 만능 로봇)’를 발표하면서 로봇이라는 단어가 사람들에게 알려 지기 시작 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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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23.0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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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영국에서 우는 소년/소녀 그림이 왜 인기가 있었나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어린 소년 혹은 소녀가 눈물을 흘리면서 정면을 응시하고 있는 모습을 그린 ‘우는 아이’ 시리즈는 스페인 화가 브루노 아마디오(1911~1981)의 작품들인데 1950년대에 27~28점가량의 비슷한 그림들을 그린 것으로 추정되고 있으며, 그 후 수많은 복제품들이 대량으로 시중에서 팔렸다고 합니다. 잘 팔리던 그림이 사람들의 특별한 관심을 받기 시작한 것은 1985년 영국의 대중지 <더 선>의 기사 때문인데 당시 9월 4일자 기사에서 <더 선>은 “우는 소년의 불타는 저주”라는 제목으로 “사우스요크셔에 살고 있는 홀 부부의 집에 불이 났는데 놀랍게도 ‘우는 소년’의 그림이 화재의 원인일지 모른다”고 보도했다고 합니다. 서레이에 사는 한 여성은 “그림을 사고 6개월 후에 갑자기 집에 불이 났는데 집에 있던 모든 그림들은 다 불탔는데 ‘우는 소년’ 그림만 무사했다”고 말했는가 하면, 노스요크셔의 한 여성은 “나뿐만 아니라 집에 그림을 건 시누이와 또 한 명의 친구 역시 집에 불이 났다”고 말했다고도 했습니다. 시민들이 두려움에 떨기 시작하자 소방당국은 “화재와 그림은 아무런 상관이 없고 발생한 화재는 대부분 전기 누전으로 인한 것이었으며, 조사 결과 그림이 그려진 하드 보드가 불에 잘 타지 않는 소재였기 때문에 무사할 수 있었다”라며 안심시키려 했습니다. ‘우는 소년’ 그림이 알려지자 사람들 사이에서는 그럴 듯한 추측과 이야기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하는데 어떤 사람은 아마디오가 관광객들을 상대로 그림을 그린 것이 아니라 사실은 스페인의 한 시골 마을에 있는 고아원에서 만난 아이들을 소재로 그림을 그린 것이라고 주장했는데 그림을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고아원에서 화재가 발생했으며, 이로 인해 불에 타 죽은 아이들의 원한이 그림에 깃들었다고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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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
23.0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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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좌근에 대해서 알고싶습니다.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안동김씨 세도정치의 중심인물인 김좌근은 1819년(순조 19)에 생원이 되고 부수(副率)·상의원첨정(尙衣院僉正)을 거쳐 1838년(헌종 4) 판관으로 정시 문과에 병과로 급제, 부교리(副校理)·직각(直閣)·대사성·이조참의·공조판서·이조판서·한성부판윤·대사헌·병조판서·지돈녕부사(知敦寧府事) 등 요직을 역임하였다고 합니다. 1850년(철종 1)에는 우참찬·제학 겸 지실록사를 거쳐 총위영(總衛營)을 총융청(總戎廳)으로 개편, 총융사(總戎使)를 맡고 이어 금위대장 등 무직(武職)의 수뇌부를 관장하여 당시 혼란한 사회를 무력으로 진압한적도 있던 그는 그 뒤 예조판서·형조판서·훈련대장·공조판서·호조판서를 거쳐 영의정에 세 번씩이나 보직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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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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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락양반은 어떻게 생활했나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몰락한 양반은 양민 들보다 더 가간 하게 살았습니다. 양반의 체면에 농사를 지을 수도 없기에 경제 활동도 마음대로 할 수 없었고 그래도 생활은 해야 겠기에 여인들이 주로 품을 팔아서 바느질이나 허드렛일을 도우면서 생활을 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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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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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조는 단종비를 왜 그렇게 핍박했나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핍박 하지는 않았습니다. 정순왕후 송씨(定順王后 宋氏, 는 조선 단종의(端宗)의 정비 입니다. 시호는 단량제경정순왕후(端良齊敬定順王后) 입니다. 여량부원군 송현수(礪良府院君 宋玹壽)의 딸로, 본관은 여산 인데 김종서의 사후 1454년에 간택령에 따라 왕비교서를 받고 즉위하였고 남편 단종이 강등되면서 군부인(君夫人)으로 격하되었다가, 관비가 되었다고 합니다. 이후 세조는 그를 노비이지만 아무도 범하지 못하게 나름대로 보호 해 주었다고 합니다. 한 예로 신숙주가 자신에게 단종의 비인 정순왕후를 달라고 했으나 세조는 거절 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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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23.0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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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은 한국에서 어떤 경제적 이익을 추구했나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일제 강점기는 1910-1945년 까지 약 35년 입니다. 이 기간 동안 일본이 우리 나라에서 얼마나 많은 경제적 이득을 취했는지를 숫자 상으로 계산 하기는 불가능 합니다. 워낙 많은 인적 자원, 물적 자원, 인명 피해 , 문화재 손실등을 다 합치면 아마도 천문학 적인 금액이 될 것 같습니다. 참고로 2차 대전 당시 폴란드가 전범인 폴란드를 상대로 요구한 금액은 1,750조 원을 제2차 세계대전 피해배상금으로 요구했다고 합니다. 제대로 계산해보니, 독일이 폴란드에 끼친 피해가 1조3,000억 유로(약 1,752조 원)에 달한다는 것인데 겨우 1939-1945년에 걸친6년에 걸친 보상금이 이정도 인데 이 보다 6배가 넘는 기간인 36년에 결친 수탈에 대한 보상금은 아마도 6배인 한화 약 8천조원 정도는 피해 보상금으로 잡아야 할 것으로 간주 됩니다. 아마도 이 돈을 일본이 다 갚으려면 100년은 걸릴 것으로 보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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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23.0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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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속에 빠져산다라는 비판은 나쁘게만 들어야할까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물론 동화 속에 세상을 꿈꾸며 수수한 마음을 가지고 산다는 것은 나뿐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어른이 되고 나이가 들어도 동화 속의 세상만 꿈꾸고 산다는 것은 그만큼 현실성도 없고 생활력도 없다라는 말과도 같습니다. 아무리 이상이 있고 꿈을 가지고 살아도 두 눈을 다 감고 살 수는 없는 것 입니다. 한눈은 뜨고 세상을 바라보며 한눈은 감고 꿈을 꾸며 동화속의 세상을 그리며 사는 것은 갠찮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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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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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자왕은 성군인가요? 아니면 사치와 향락에 빠졌던 무능한 왕인가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백제의 마지막 왕 의자왕은 어린 시절, 우애가 깊어 해동증자(海東曾子)라 일컬어지기도 했으나 말년에 방탕과 실정으로 나·당 연합군의 공격을 받음으로써 초대 온조왕으로부터 이어진 백제는 멸망하였고, 의자왕을 비롯한 왕족들과 수많은 백성들은 당나라 낙양으로 끌려갔 습니다. 결국 나라를 망치게 한 왕이니 무능한 왕이라는 후대의 평가는 어쩔수 없는 것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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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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