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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충신 정몽주의 단심가가 무엇인가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포은 정몽주는 고려말의 충신 입니다. 조선의 건국을 함께 하고자 이방원이 하여가를 먼저 보내고 회유를 했는데 거기에 대한 답가로 절대 고려 왕조를 배신 할수 없다는 내용의 단심가를 보냈다고 합니다. 이 몸이 주거 주거 일백 번(一白番) 고쳐 주거백골(白骨)이 진토(塵土)되여 넉시라도 잇고 업고님 향한 일편단심(一片丹心)이야 가싈 줄이 이시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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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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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루이 마운트배튼의 생애가 궁금합니다.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영국의 귀족이자 군인, 정치가 이며 백작 입니다(Earl Mountbatten of Burma). 스웨덴의 왕비 루이즈 마운트배튼의 남동생이자, 영국의 빅토리아 여왕의 증손자이고 영국의 여왕 엘리자베스 2세의 남편인 필립 마운트매튼의 외삼촌이기도 합니다. 인도제국의 마지막 총독이었으며, 2차대전 당시 영국군의 특수부대 창설에 큰 공을 세우기도 했는데 1979년 아일랜드 에서 아일랜드 무장 독립 테러단체인 IRA의 폭탄 테러로 사망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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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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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원나라는 어느나라에 의해서 멸망하였나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원나라는 1368년 명나라에게 망했습니다. 홍건적의 세력이 확장되면서, 각지의 반원 세력들은 스스로를 왕이라고 칭하게 되었고, 원왕조와 대립하게 되었습니다. 계속되는 홍건군과의 내전으로 원 왕조는 점차 몰락해갔는데 1368년 주원장은 명군에 북벌을 명하고 대도를 공격하여, 원나라의 멸망을 선고하였고 원나라 순제는 북의 상도로 도망가 버렸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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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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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수학책 산학계몽은 지금의 수학책과 비교했을 때, 어느 정도 수준이라고 보면 될까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조선시대 가장 대중적으로 배우던 책은 상명산법으로, 곱셈이나 나눗셈 등 가장 기본적인 수학 개념이 서술돼 있습니다. 돈과 세금을 관리해야 했던 조선 시대 호조 산원들이 배워야 했던 필수 과목이었다고 합니다. 산학 계몽은 이 보다 조금 더 어려운 내용도 포함 하는데 고차 방정식 까지도 포함 하는 내용이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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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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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은 황제이고 우리나라는 왕인 이유??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고려와 조선 시대를 거치면서 우리나라는 항상 중국에 사신을 보내 국가의 중대한 일을 허락 받아 왔습니다. 즉 중국을 상국으로 모셔왔다는 것인데 고려 시대에는 원나라, 조선에서는 명나라와 청나라가 그러했습니다. 그래서 중국의 왕은 황제이고 조선의 왕은 왕이 된 것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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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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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야마구치현 나가토시에 양귀비의 무덤이 있다는데 무슨 이유 때문인가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일본에는 양귀비의 행방에 관한 여러 가지 설이 있는데 양귀비 대신 다른 누군가가 중국에서 죽은 것이고 양귀비는 일본의 야마구치현山口縣 오오쓰군大津郡 유야쵸油谷可 구즈久津로 도망했다고 합니다. 대신 죽은 사람은 시녀였다고 합니다. 군대의 우두머리 진현례는 양귀비의 아름다운 용모를 사랑하여 차마 죽일 수가 없어 고력사와 은밀히 짜고 시녀를 대신 죽이기로 한다고 전해 집니다. 한편 양귀비는 이렇게 살아 남아서 진현례 측근의 도움으로 남쪽으로 도망쳐 대략 지금의 상해 근처에서 돛을 올리고 바다로 나 가 일본의 유야쵸 구즈에 다다르고 여기에 머물러 살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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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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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궁궐들은 어떤 역할을 했나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조선시대에 궁의 역할은 임금이 평소에 거주하면서 생활하고 휴식도 취하면서 정치 행위를 펼친 궁을 정식 궁궐로 볼 수 있는데, 한성부 내에 위치하였던 경복궁 · 창덕궁 · 창경궁 · 경희궁 · 경운궁등이 남아있지요. 이를 묶어서 조선의 5대궁이라고 주로 부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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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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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 관료였던 시중은 어떤 관직이었나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시중이라는 직책은 원래 신라에서 747년(경덕왕 6)에 집사성(執事省)의 중시(中侍)를 시중으로 고쳐 불렀고, 태봉에서도 최고정무기관인 광평성(廣評省)의 장관을 광치나(匡治奈)로 했다가 뒤에 시중으로 고친 적이 있었다고 합니다. 고려시대에는 성종 때 내사문하성(內史門下省)의 설치와 동시에 처음 두어졌으며, 문종 때 정원 1인, 종1품 관직으로 정해졌다고 합니다. 같은 종1품 직인 중서령·상서령이 주로 종친에게 수여되는 명예직이거나 치사직(致仕職)·증직(贈職)이었으므로, 유일한 종1품 실직으로서 명실상부한 수상직 이였습니다. 시중은 지금으로 말하면 국무총리 위원내객제에서는 수상에 해당 하는 직책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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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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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년상은 양인들도 모두 해당되었나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조선 시대 유교의 영향으로 사대부들이 많이 했지만 꼭 사대부만의 전유물은 아니었으나 하루 하루 먹고 살기바쁜 평민들이 하기에는 현실적으로 어려웠을 겁니다. 양반들도 다 한 것도 아니고 형제들이 돌아가면서 하거나 심지어 노비를 시키기도 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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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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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영시의 옛지명이 충무시인가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맞습니다. 1995년 1월 1일 부로 과거 통영군과 충무시가 합쳐진 도농복합시로, 통영시의 시내동구역은 과거 충무시의 행정구역이 된 것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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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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