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결혼하지 않은 여자들이 댕기를 한 이유는 뭘까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댕기머리는 미혼의 상징 입니다. 머리카락을 길게 땋은 뒤 갱기를 묶은 머리형으로 어린아이들과 총각, 처녀들이 했기때문에 총각/처녀라는 의미로 사용했습니다. 혼인 후 상투를 틀고 여자는 머리를 쪽질수 있었는데 이는 결혼을 한다의 의미입니다.
평가
응원하기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프로필이 어떻게 되나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영국에서 1970년에 태어난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은 《 미행 》으로 데뷔하여 두 번째 작품 《 메멘토 》로 크게 성공했다. 이후 작품으로는 《 인셉션 》, 다크 나이트 3부작 (《 배트맨 비긴즈 》, 《 다크 나이트 》, 《 다크 나이트 라이즈 》)과《 인터스텔라 》가 있습니다.
평가
응원하기
고려시대의 초조대장경은 현재 실물로 남아있나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고려 시대의 초조 대장경은 1232년 몽골족의 침입으로 불타 버린 뒤 현재까지 전래된 것이 거의 없다고 알려져 왔는데 그 동안 초조 대장경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도 부실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최근에 와서야 초조대장경은 국내에도 전래되어 성암고서박물관, 호림박물관, 호암미술관과 개인 등이 약 300여 권을 나누어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평가
응원하기
복날에 닭고기를 먹는 이유는 뭔가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우리 나라에서 복날에 닭고기를 먹는 이유는 닭고기는 따뜻한 음식이고 이렇게 더울 때 이열 치열로 더운 음식을 먹으면 오장을 안정 시켜 주고 몸의 면역력을 키워 준다고 동의 보감에서도 말하고 있습니다. 중국에도 복날이 있습니다. 중국에서는 보통 면요리나 계란 전병 혹은 교자 만두를 주로 먹는 다고 합니다. 일본도 한국의 <복날>과 비슷한 문화가 있습니다. 바로 <도요우시노히>라고 하는데요, 일본에서 이 도요우시노히에 장어덮밥을 먹는 문화가 있습니다.
평가
응원하기
적벽대전에서의 오나라 승리요인은 무엇인지?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오나라의 승리 이유는 조조의 자만심 때문 입니다. 준비 없는 조조는 자만에 빠져있었는데 사소한 실수는 있었지만 하나부터 열까지 일이 너무 순탄함을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전쟁에 있어서 자만은 곧 필패로 이어집니다. 천하의 8할을 차지한 조조는 스스로의 위세에 자만해 있었기에 순탄함을 의심하지 않았고 매사 의심이 많은 조조도 자만을 의심하지는 못했으니 패배는 불을 보듯 뻔한 일이었지요. 자만과 오만, 그게 적벽대전에서 조조가 패한 유일한 이유일 것 입니다.
평가
응원하기
논어, 맹자 등은 사서,시경과서경,역경은 삼경이라고 하는데, 언제부터 이런 이름으로 불렸나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기원전 300년 전에 기록되었고 사서삼경은 중국 12세기 남송의 유학자이자 주자학의 시조인 '주희 (朱熹)'가 새로 주석을 붙이고 정리 및 편집하여 이름 붙였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사서는 "논어", "맹자", "대학", "중용"을 말하고, 삼경은 "시경", "서경", "역경"을 말하고 삼경에 "춘추"와 "예기"를 합해 오경이라 부르고, 합해서 사서오경 이라 부른다고 합니다.
평가
응원하기
일본에서는 스님이 다이묘가 될 수 있었던 이유가 있었나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일본에서는 불교가 우리 나라 처럼 호국 불교로서 국가의 지원을 받거나 보호를 받지 못하고 스님들은 본인 스스로가 자신의 사원을 지켜야 했습니다. 일본 불교는 또한 정신 수양이나 해탈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 아닌 일종의 직업 이였습니다. 그래서 스님 스스로 결혼을 하기도 하고 재물을 모으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스님들도 다이묘가 되었습니다.
평가
응원하기
명예를 지키기위해 할복하는것이 정례화 되는것이 언제부터인가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최초로 행해진 것은 8-12세기 헤이안 시대이며, 정확하게 누가 처음으로 했는지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설이 존재해서 명확하게 밝혀지지는 않았습니다. 후지와라노 야스스케가 구속되고 자해를 한 게 원조로 꼽히는데 다만 그는 이러고도 안 죽었고, 다음날에 옥사하였다고 합니다. 그 밖에 전해져 내려오는 이야기 중에, 어느 무사의 아들이 떡 혹은 사과를 훔쳐 먹었다는 의혹을 받자, 무사는 치욕을 씻기 위해 자식의 배를 갈라 무죄를 증명한 뒤, 의혹을 제기한 상대방을 죽여버리고는 자신도 할복했다는 식의 이야기도 있다.
평가
응원하기
우리나라 야간에 통금은 언제부터 언제까지 있었나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물론 조선 시대에도 야간 통금은 있엇지만 현대에 들어 와서 야간 통금은 1945년부터 1982년까지 시행된 적이 있습니다. 당시의 야간 통금은 매일 밤 12시 부터 새벽 4시 까지 사람들의 통행을 전면 금지 하는 것 이였습니다. 이를 어길시에는 파출소나 경찰서에서 구류 되기도 했습니다.
평가
응원하기
모방범죄가 일어나는 사회현상은 현대에 존재하는 사회문제인지 궁금해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조선 시대에도 모방범죄가 있었다고 합니다. 1868년 독일 상인 오페르트가 흥선대원군의 아버지인 남연군의 묘를 도굴하려다 미수에 그친 사건이 바로 그 시발점인데 오페르트는 남연군의 유골과 부장품을 훔쳐내어 대원군과 통상문제에 대한 흥정을 벌일 계획을 세웠지만, 실제 무덤을 팠을 때 소득 없이 철수하고 만다. 이 사건은 ‘오페르트 도굴 사건’이라 불리며 조선사회를 떠들썩하게했고 흥선대원군이 쇄국정책을 강화하게 만든 계기가 되었지만 아이러니한 것은 ‘오페르트 도굴 사건’ 이후 조선에는 이와 유사한 사건이 횡행했는데 효와 예를 제일의 덕목으로 여기는 조선 시대에 남의 조상 유골을 파헤쳐 돈을 뜯어내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는 패륜범죄였지만 위험부담이 적고 피해자들이 협박에 쉽게 응해 성공률이 높았기 때문에 발생 했다고 봅니다. 임진왜란 당시에 선릉과 정릉이 도굴되는 사건이 발생하는데 이 당시에 도굴 범으로 잡힌 자들은 다 사형 다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당시 진버미알고 잡힌 자들은 진범이 아니라고 하는 것이 나중에 밝혀졌다고 합니다.
평가
응원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