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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요동정벌은 정말 현실성이 없는 작전이었나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이성계가 4대 불가설로 들며 주장한 요동 정벌 주장이 오히려 타당성이 없다고 많은 많은 전문가들이 말합니다. 최영 장군의 요동정벌 명령이 내려진 그 당시가 아무리 장마철이었고 또한 작은 나라가 큰 나라를 칠 수 없다고는 하지만 그 시점은 원나라가 몰락하고 명이 커가던 원명 교체 시기였습니다. 요동에는 당시 명의 군사도 별로 없었을 뿐더러 숨 막히는 긴장감이 도는 그 바쁜 원명 교체기에 명나라는 요동에 원군을 보낼 여력도 없었을 것이라는 것이 대부분의 역사학자들 입장 입니다. 당시 요동을 정벌 했다면 아마도 우리의 역사는 많은 부분이 바뀌었을 런지도 모르지요.
학문 /
역사
23.0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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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 역사상 최초로 발생한 전쟁은 언제 어디에서 있었나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태초 이래 인간은 크고 작은 무수한 전쟁을 치러왔다는 사실인데 기록상으로 볼때의 날짜까지 추정이 가능한 최초의 싸움은 기원전 (BC) 1457년 4월16일 발생한 메기도 전투가 최초로 봅니다. 아프리카의 이집트와 지금의 이스라엘 및 시나이 반도의 가나안 땅 일대의 민족들이 맞붙었는데 1만2,000여 이집트군의 지휘는 파라오 투트모세 3세가 직접 맡았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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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23.0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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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의 여권국적 파워는 어느 정도 대접받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현재 기점으로 우리 나라 여권 파워 순위는 2위라고 합니다. 여권 파워 라고 하면 보통 비자 없이 방문 가능한 국가의 숫자를 의미 하는데 우리나라는 192개국으로 일본과 싱가폴 193개국 다음으로 세계 제 2위라고 합니다. 정말 대단한 여행 강국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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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23.0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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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의 4대 문명이라는 것은 어떤 기준으로 그렇게 불리게 되었나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세계 4대 문명들의 특징은 4대 문명의 발생지들은 모두 큰 강을 끼고 북반구에 위치하고 있었고. 대부분 기후가 온화하고 기름진 토지를 지닌 지역들이며 특히 이 지역들은 중국의 황하강, 이란의 티그리스-유프라테스강, 인도의 인더스강, 이집트의 나일강의 4대 강을 끼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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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23.0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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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랑은 어느 시기때부터 만들어져서 불러졌나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아리랑의 기원에 관해서는 사실 여러가지가 존재 합니다. 신라 건국시조 박혁거세가 왕비 알영을 찬미하여 "알영 알영"하고 노래를 부른 것이 뒷날 "아리랑 아리랑"으로 변했다는 견해가 가장 신빙성 있는 것중에 하나인데 <삼국사기> 신라본기 유리왕조에 여자들이 길쌈짜기 내기 끝에 진 편에서 '회소곡'을 불렀다는 기록이 있는 것을 보면(서기 32년) 그보다 조금 전 사람인 혁거세왕이라고 해서 노래를 부르지 않았을 리도 없을 터, '알영'과 '아리랑'의 발음이 비슷하다는 데에 착안한 알영설도 일견 그럴 듯하게 느껴 집니다.
학문 /
역사
23.0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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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시대 금관에 대한 질문입니다.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신라 금관들은 그 특징이 상당히 세밀하고 화려할 뿐 더러 상당히 예술적이라는 점 입니다. 금관총 금관은 수지형(樹枝形)과 녹각형(鹿角形)을 오려낸 금판을 세워서 구성하였다고 합니다. 관에는 수백 개의 원형 영락과 비취, 굽은 옥을 달았고, 양측에는 길게 밑으로 늘어진 영락수식을 드리우고 있는데 이 금관을 보면 외관에 세운 수지형과 녹각형의 입화(立花) 장식과 양측의 어느 관에서나 볼 수 있는 고신라 관모(冠帽)가 공통점으로 눈에 띈다고 합니다. 금령총 금관은 간단한 형식이고, 서봉총 금관은 사방에서 금대를 반원형으로 중앙에서 교차하게 만들고 교차점에는 금판(金板)을 봉황형(鳳凰形)으로 오려서 붙인 것을 첨가하였습니다. 다른 금관 또는 금동관들도 모두 수지형과 녹각형의 입화장식을 붙이고 있으니 이 형식이 북방 스키타이 문화의 영향이라는 점은 내외 학자의 공통된 의견입니다. 금관이 출토되는 고분에서는 따로 금제의 관 장식이라고 불리는 유물이 출토되는데 그 모양은 날개를 활짝 편 새 또는 날개만의 모양으로 만들고 세밀한 투각문양으로 전면을 채웠으며 영락을 달았는데 이것은 아마도 고대 조류(鳥類) 숭배사상에 의한 새를 상징하는 유품이 아닌가 생각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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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
23.0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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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고려, 조선의 백성들은 어떻게 글을 배웠을까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조선 시대에도 일반 백성( 양인) 들도 서당을 다닐 기회가 있었습니다. 양반 아이들만 서당을 다닌 것은 아니고 평민의 자제들도 글을 배울 기회가 있었습니다. 물론 서당에서는 천자문 정도의 비교적 쉬운 내용을 가르쳤으나 그나마도 형편이 어려운 아이들은 서당 조차도 갈 수가 없었기에 혼자 공부 하기도 어려운 상황에 기회가 아예 없었다고 할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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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23.0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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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원군이 통상수교거부정책을 편 배경이 무엇인가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유럽의 독일인 오페르트 (Oppert,E.J., 載拔)는 1866년 3월과 8월 두 차례에 걸친 조선과의 통상교섭에 실패하자 흥선대원군의 아버지인 남연군 구 (球)의 묘를 발굴해 시체와 부장품을 이용하여 대원군과 통상문제를 흥정하려고 시도 한 것이 대원군의 쇄국 정책를 더욱 더 확고하게 만든 계기가 됩니다. 이 일로 인해서 대원군은 서양 세력을 오랑케 라고 생각을 굳히게 만듭니다.
학문 /
역사
23.0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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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세력에 의해 자행된 남연군묘도굴 사건의 목적은 무엇이었나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조선인들의 조상에 대한 효심을 악용한 비교적 악날한 경우에 해당 합니다. 독일인 오페르트 (Oppert,E.J., 載拔)는 1866년 3월과 8월 두 차례에 걸친 조선과의 통상 교섭에 실패하자 기회를 노리다가, 병인사옥 때 탈출하여 프랑스 제독 로스의 강화도 침범 당시 향토 및 수로 안내인 역할을 했던 프랑스 신부 페롱 (Feron)과 조선인 천주교도와 함께, 흥선대원군의 아버지인 남연군 묘를 발굴해 시체와 부장품을 이용하여 대원군과 통상 문제를 흥정하고자 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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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23.0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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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폴레옹같은 뛰어난 군사전문가가 왜 러시아 원정에 실패를 했나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러시아 원정 실패 이유는 혹독한 날씨 입니다. 즉, 날짜를 잘못계산했기 때문입니다. 1812년 전투 병력과 지원 병력을 합쳐 60만이 넘는 병력을 이끌고 러시아로 들어간 나폴레옹이 원정 실패 후 12월 3일 발표한 공고문에서 혹독한 추위때문에 패전했다 주장합니다. 러시아의 날씨는 비교적 기후가 온난한 프랑스 군인들이 체험 하지 못한 큰 난관은 맞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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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23.0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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