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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말하는 들꽃의 기준은 어디에 둘까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주인 없이 길거리에서 자라는 나는 개들을 들개( Wild dog) 라고 하지요. 마찬가지로 들꽃 또는 야생화(野生花)는 의도적으로 파종 또는 재배하지 않은 의미의 야생에서 자라는 꽃입니다. 즉 바람에 날려 우연하게도 암술과 수술이 만나서 수분을 맺어 꽃으로 피어 나는 것 입니다. 그래서 들꽃을 영어로 Wild flower 야생화라고 하는 것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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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
23.0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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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티베트 지역의 지도자는 시진핑인가요? 달라이라망인가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티베트의 지도자는 당연히 랄라이 라마 입니다. 그 이유는 티베트는 중국의 특별 자치구이기 때문 입니다. 다만 티케트는 중국에 속한 지역이며 전체적으로 티베트는 국가는 아니며 중국에 속한 지역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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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23.0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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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의 화랑은 뽑을 때 얼굴을 봤던 이유는 뭔가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화랑도를 선별 할 때 외모를 고려 했다는 점은 불교적인 성격입니다. 화랑이 미륵 신앙과 관련이 있다는 것은 일찍이 많이 지적되었는데, 이것은 『삼국유사』의 미륵선화 미시랑조와 김유신의 용화향도(龍華香徒)에 잘 나타나 있다고 합니다. 전자는 진지왕 대에 승려 진자(眞慈)가 항상 미륵이 화랑으로 화(化)하여 세상에 출현할 것을 서원(誓願)하였는데 그것이 이루어져 미륵선화를 미시랑(未尸郎)에게서 찾을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김유신은 15세에 화랑이 되었는데 당시 사람들이 많이 따랐으며 그것을 용화향도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용화(龍華)’란 미륵이 후세에 인간 세계에 내려와서 설법을 한다는 장소인 용화수(龍華樹)에서 나온 말로 미륵을 뜻하며, 향도는 이를 신앙 대상으로 삼는 신자 집단을 의미합니다. 즉 화랑인 김유신을 미륵으로 간주했다는 것이며 동시에 미륵이 현실에 나올 때는 용모또한 아름다울 것이라고 하는 윤회 사상도 들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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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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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황룡사 구층탑은 지금 현재도 존재 하나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황룡사 9층 목탑은 신라와 고려 두 왕조에 걸쳐 593년 동안 여섯 차례 중수되는 등 호국성보(護國聖寶)로 숭앙을 받아오면서 이 탑은 우리 나라 최초의 목탑양식을 알 수 있는 것으로, 황룡사지와 더불어 사찰 및 목탑의 규모를 보여 주는 것입니다. 하지만 어려 전란으로 지금은 남아 있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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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23.0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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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이 중국이 옆에 있음에도 단일 국가를 유지할 수 있었던 이유가 궁금합니다.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중국에 속국이 되지는 않았지만 중국이 옆에 있었기에 북한과 남한으로 갈라 졌습니다. 6.25당시 바로 옆나라 중국이 참전 하지 않았더라면 우리나라는 아마도 3.8선으로 남과 북이 대치 하지 않았어도 되었을 것 입니다. 물론 러시아도 그 책임이 있지만 중국이 우리의 반 토막난 국토에 책임이 있지요. 물론 북한도 중국에 예속 되거나 중국에 흡수 되지는 않았지만 어찌 되었던 중국의 눈치를 더 많이 보면서 국제 관계를 형성 하고 있는 것은 사실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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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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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은 아시아의 등불이라고한 타고르는 어느 나라 사람인가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인도의 시인 타고르가 남긴 시 중에 나오는 부분 입니다. " 동방의 작은 새 목청 높여 명예로운 개선을 노래 한다 " 라는 부분을 우리나라에서 마치 우리를 위해서 쓴 시라고 주요한 선생이 번역을 한 것 인데요. 사실 이 문구는 우리를 위해서 동양인으로서 최초로 노벨 문학상을 받은 타고르가 쓴 것이 아니라 사실 일본이나 인도 그 자신을 위해서 쓴 시인데 거기에 그냥 Korea 라는 이름만 바꾼것이라고 하는데요 그 이유는 타고르가 일본을 방문 했을 당시 1929년 3울28일 동아 일보에서 한국 방문을 요청 했지만 타고르의 일정 떄문 에 거절 했고 그 대신에 이 짧은 영어 시를 하나 받은 것이고 그것을 동아 일보에서 기사화 했던 것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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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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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시는 조선시대에만 있었나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내시는 조선 뿐 아니라 고려, 삼국시대에도 존재 했습니다. 유럽이나 중국에도 존재 했지요. 내시의 가장 큰 역할은 왕궁 내에서 왕을 보필 하며 왕이 필요한 것들을 도와주고 왕을 시중들고 보필 하는 역할도 했다고 합니다. 궁궐에는 왕족들과 궁녀들만 사는 곳이니 일반 남성으로 하여금 궁내부를 지키게 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닐 것 입니다. 각종 성문제 관련 사고도 많이 날것 이구요. 그래서 남성 구실을 못하는 내시로 하여금 궁궐 내부에서 왕을 호종 하게 한 것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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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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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랜디드란 단어는 어디서 유래 되었는지?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브랜디는 태운 와인(Vin Brule)에서 어원이 시작되 영국에서부터 Brandy 로 불리게 되었습니다. 원래는 포도를 발효, 증류한 술의 명칭이었으나, 최근에는 다른 과일의 증류주를 모두 칭하는데 원료가 포도가 아닐 때는 해당원료의 이름을 앞에 붙힌다고 합니다. 그래서 체리 브랜디, 사과 브랜디 같은 과일주도 생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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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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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 불교를 전파한 것은 누구입니까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일본에 불교를 전파한 것은 백제 , 고구려, 신라의 순 입니다. 일본에 불교가 전파된 것은 백제 성왕 때(538년 혹은 552년)인데 뒤이어 고구려, 신라 역시 승려들을 파견하면서 일본에 불교를 전파하게 됩니다. 백제는 554년에 미리 가 있던 승려 7명을 소환하고 9명의 승려를 보내기도 하는데(다른 기록도 있다고 합니다) 이와 같은 기록으로 볼 때 일찍부터 승려를 보냈다고 보이는데 고구려는 혜변(惠便)이 584년에 환속하여 하리마(播磨)에 숨어 있었던 것으로 보아 그 전에 승려를 파견했을 것입니다. 신라의 경우 579년에 불상을 보낸 기록이 있지만 승려를 파견한 기록은 찾을 수 없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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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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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시대때 신라의 안압지는 어떤 역활을 하던 곳인가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안압지는 지금으로 따지면 별장같은 곳이며 문무왕이 궁 안에 못을 파고 돌을 쌓아 산을 만들어 무산 12봉을 상징하여 꽃나무를 심고 짐승을 길렀다고 합니다. 그 서쪽에는 임해전이 있었으나 지금은 주춧돌과 섬돌만이 밭고랑 사이에 남아 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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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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