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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파르타가 멸망하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스파르타는 사실 원시 공산 국가 였습니다. 돈도 없었고 오로지 적으로 부터 나를 지키고 상대를 무너뜨려야만 하는 정말 치열한 생존을 위한 국가 였습니다. 스파르타는 문화적으로나 경제적으로 무척 피폐한 나라였지요 일단 시민들은 절대 직업을 가져서는 안되었습니다. 즉, 스파르타 시민권을 가진 남자들은 100% 직업이 없었고 이들에게 직업의 자유가 주어지지 않은 것은 이들이 항상 신체를 단련하고 무술을 연마하여, 최강의 병사들이 되도록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온나라의 살림살이는 투박하기 이를데 없었습니다. 스파르타의 집은, 왕궁조차도, 그냥 둥근 통나무를 그대로 대들보로 썼던 식이라고 합니다. 그런다 보니 문화 예술, 상업등은 발달 할 수 없었습니다. 그것이 멸망의 원인이 되었다고 보여 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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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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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가 재위 중 계속 암살에 대해 걱정한 이유가 궁금합니다.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정조에 대한 시해 시도는 세자 때 부터 계속 있었습니다. 정유 역변은 1777년 정유년에 있었던 반역 사건을 일컫는데요. '정조 시해 미수사건'으로도 알려져 있습니다. 당시 아버지 홍지해를 귀양 보낸 정조에게 불만을 가진 홍상범 등이 주축이 되어 장조의 서자인 은전군 이찬을 추대하려고 했다는 역모 사건입니다. 정유년 7월 28일 밤 11시 무렵 정조가 있던 경희궁 존현각에 자객이 침입한 흔적이 발견됐다고 합니다. 정조는 바로 금위 대장 홍국영을 불러 대궐을 수색하게 했고 자객이 지붕 위까지 침투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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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23.0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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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키는 돌궐족의 후손이라고 하는데 외모가 서양인처럼 생겼나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맞습니다. 돌궐은 터어키인 들이고 터어키는 지금도 남유럽에 속해 있는 유럽인 입니다. 한자어 돌궐(突厥)은 튀르크족의 가차(假借)식 표기인데 한편 주서 이역전(異域傳)에서는 다음과 같이 전합니다.금산(알타이산맥)의 남쪽에 살며 여여(유연)을 위하여 철공 일을 하였는데 금산의 모양이 투구와 비슷하였는데, 그들이 관습적으로 투구를 돌궐이라고 했기 때문에 마침내 이를 이름으로 삼았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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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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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나라를 세운 당고조 이연는 한족 아닌 유목민 족의 후손이란 이야기가 있던데 사실인가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중국은 약 90% 이상의 인구가 한족이라고 하고 있지만 사실 누가 진정한 한족이고 이민족인지를 구분 하긴 상당히 어렵다고 합니다. 중국은 오래 전부터 거란, 흉노 약탈과 선비족, 말갈족, 몽고족, 만주족 등등 정복과 경영으로 만들어진 나라 입니다. 그래서 사실 당나라 고조 이연 또한 유목 민족의 후손이라고 한들 이상 할 것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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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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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꺼비 집 이라는 단어의 유래가 궁금합니다.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전기선들의 합금이 녹아버려 전기가 더 이상 흐르지 못하여 전기 사고를 방지할 수 있게 만든것이 '퓨즈(fuse)'였습니다. 이 퓨즈를 보호하기 위하여 사기 재질의 보호 상자를 외각에 만들었는데 이 상자의 모양이 두꺼비를 닮았다고 하여 '두꺼비집'이라고 불리게 되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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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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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대왕 말고 조선시대 다독왕은?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세종 외에 조선 시대 다독왕은 아마도 정조 임금 이였을 것 입니다. 그는 4세 때 <효경>을 읽었고, 보양관으로부터 <소학>을 배웠다고 합니다. 동궁 시절 14년 동안 읽지 않은 책이 없다고 스스로 말할 정도로 엄청난 학문적 성취를 이루어, 신하들을 가르칠 수준에 이르렀다고 하지요. 독서는 습관이라고 하는 지론을 가지고 있었으며 늘 책을 읽는 습관을 지니고 있었지요. 일성적으로 정조는 낮에 일이 바빠 책을 읽지 못하면 깊은 밤이라도 책을 읽어야 잠을 편하게 잘 수 있었다고 합니다. 날마다의 독서를 가능하게 했던 것은 책을 읽는다는 매일의 계획을 세워 두었기 때문인데요. 매일 일정한 양을 정해두고 책을 읽었다고 합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지식 습득에도 도움이 되지만, 마음을 잡는데도 중요하다고 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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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23.0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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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몽주가 이성계와 협력하지 않은 이유가 궁금합니다.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같은 고려 시대의 신하 였지만 정몽주는 충신의 표본으로 기억하고 신숙주는 변절의 표본으로 기억하고 있는 아유는 바로 정몽주는 개인의 안위 보다는 고려 시대 왕조에 대한 충정을 인생의 우선으로 삼았고 신숙주는 왕조 보다는 조선이라는 나라 혹은 백성이 먼저 라고 생각을 한 이유 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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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23.0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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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처럼 계급이 존재하는나라가있나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인도의 카스트 제도는 현대 사회에서는 거의 사라져 가는 제도 이고 국가에서 공식적으로는 금지를 하고 있는 시스템 입니다. 현대 국가 에서 공식으로 신분의 차이를 인정 하는 국가는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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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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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물시계 자격루와 중국의 비루는 어떤 차이가 있나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장영실이 만든 자격루는 항아리나 원통형인데 비해서 중국 비루는 금속모양이 나타나는 육면체 형태를 하고 있다고 합니다. 여러 실험과 고증을 통해서 만들어지기는 했지만 실제로 돌아가지는 않고 있으며, 모형으로서 의미만 갖는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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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
23.0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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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이 건국될때 다른 이름이 있었다는데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조선이 국호를 정하는 것은 당시 혼자서 결정 할 것이 아닌 중대한 사안 이였습니다 그래서 명나라 사신을 보내서 어느 것을 택할지 결정 해야 했는데 이를 택정이라고 합니다. 조선이라는 이름과 다른 한가지는 바로 화령이라는 명칭 이였습니다. 조선은 우리 나라 역사상 오랫동안 유래(단군조선·기자조선 등)되어온 명칭이고, 화령은 1369년(공민왕 18)화주목(和州牧)에서 개칭된 지역명으로 이성계의 출생지이자 외할아버지의 고향인 이유로 채택된 것으로 보입니다. 화령은 1393년(태조 2)에 다시 영흥(永興)으로 바뀌게 되었다고 합니다.1392년 11월 예문관학사(藝文館學士) 한상질(韓尙質)을 다시 명나라에 파견해 국호 개정의 뜻을 전하고, ‘조선’과 ‘화령 둘 중에서 국호를 택해줄 것을 청하였고 다음 해 한상질이 명나라 예부(禮部)의 자문(咨文 : 중국과 왕래하던 외교 문서)을 가지고 왔는데, 여기서 화령은 폐지되고 조선이 택정되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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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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