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프로필
프로필
답변
잉크
답변 내역
전체
학문
고려 현종 때 유교정치가 확립하면서 연등회와 팔관회가 폐지되었다는데 유교정치와 연등회, 팔관회는 어떤 연관성이 있나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성종은 고려의 정치체계를 확립한 왕으로, 건국 초기 통치이념을 중국식의 유교적 통치이념으로 바꾸기 위해 노력한다. 이에 따라 성종 6년 (987)에는 국가의 중요행사였던 팔관회를 폐지한다. 이 시기 연등회 폐지에 대한 언급은 없으나 팔관회와 함께 폐지되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이는 이후 20여 년에 걸친 국가의례로써 연등회의 중단을 의미하는 것이었다.연등회와 팔관회는 불교의 대표적인 행사 중 하나 인데 전국적으로 이 행사 때문에 들어 가는 비용이 만만치가 않았고 국가 재정 확충과 민생 안정을 이유로 폐지 라기 보다는 사실 잠정 중단을 하게 된 것 입니다.
학문 /
역사
23.05.21
0
0
가야가 살아남지 못한 이유는 무엇때문인가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직접적인 멸망 원인은, 562년에 대가야가 신라의 이사부 (異斯夫)가 이끄는 2만 대군의 공격을 방어해내지 못한 데 있다고 합니다. 이 때 신라가 화랑 사다함 (斯多含)을 보내 미리 5,000명의 기병으로 대가야를 공격한 것은 일종의 기습 작전이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대가야가 이를 막아내지 못한 것은 단기간의 실정 때문만은 아니고 가야 자체가 강력한 왕권을 갗추지 못한 부족 국가의 형태를 보여 왔기 때문 입니다.
학문 /
역사
23.05.21
0
0
해가지지 않는 나라라고 불린 이유는 무엇때문인가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영국이 해가 지지 않는 나라 라고 불리 운것은 7년 전쟁 직후인 1779년이며 1700년대 말~1800년대 초 시기에 호주의 영토가 편입되었을 때 말 그대로 24시간 내내 영토의 어느 한 곳에는 해가 떠 있는 상태가 되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놀랍게도 약 20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영국은 해가 지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바로 아직도 남 태평양의 영국 식민지이자 인구 50명의 작은 섬 핏케인 제도 떄문 인데요. 핏케언 제도는 1829년에 영국의 식민지가 되었고 그래서 영국은 지금도 절대 해가 지지 않는 나라가 되었습니다.
학문 /
역사
23.05.21
0
0
투표 용지 도장의 모양 의미가 무엇인가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기표 용기는 1948년 선거 초기에는 총알 탄피로 시작 해서 중간에는 볼펜 자루 등등 여러 번의 변화가 있다가 지금의 점복자가 들어간 인장으로 대신 하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투표도장의 기호에 대해 '사람 인 (人)'이라고 알고 있지만 사실 사람인 자가 아니라 점복 자 <卜> 라고 합니다. 1994 총선 때 부터 바뀌었는데 이는 김영삼 대통령의 시킨다고 해서 바꿨다고 합니다.
학문 /
역사
23.05.21
0
0
책 안에 색지가 있는 이유가 무엇인가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책에서 색지의 역할은 표지와 본문을 이어 주는 역할을 하며, 표지 및 본문의 분위기와 어울리는 색깔의 색지를 사용하기도 합니다( 속표지 또는 표제지 ) 본문의 맨 앞장, 표지에 나온 색지는 미관상으로도 에쁘게 하면서 특히 제목과 지은이, 출판사 등을 한 번 더 알려 주는 역할을 한다고 합니다.
학문 /
미술
23.05.21
0
0
흥선대원군이 직접 왕위에 오르지 않은 이유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흥선 대원군이 왕이 못된 이유는 당시 왕실 최고의 어른이 조대비 때문이기도 하고 또한 왕실 계보 때문 입니다. 조대비는 익종(효명세자)의 아내였고 헌종의 어머니였죠. 헌종이 후사 없이 죽자, 보위는 철종에게 이어졌는데요. 조대비는 남편인 익종과 아들인 헌종으로 이어지는 조선 왕의 계보를 만들고 싶었습니다.문제는 흥선군이 익종과 항렬이 같었습니다. 그러니 익종의 양자로 들어갈 수가 없기에 그래서 흥선군은 자신의 둘째 아들(훗날 고종)을 익종의 양자로 입양시켜 왕위를 계승하는 방식을 택합니다. 그래야 조대비를 설득해서 자신의 아들이 왕이 될 수 있었기 때문 입니다.
학문 /
역사
23.05.21
0
0
인도의 타고르가 조선은 아시아의 등불이라고한 근거가 있습니까?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일제 강점기에 1929년 4월 2일자 《동아일보》에 발표된 자유시인데 당시 주요한의 朱耀翰)의 번역으로 실린 이 시는 《동방의 등촉 혹은 동방의 불꽃》이라는 제목으로도 소개되었다고 합니다 1929년 인도의 시성(詩聖) 라빈드라나드 타고르가 일본을 방문했을 때 동아 일보 기자로부터 한국 방문을 요청받았으나 응하지 못하는 미안한 마음을 대신하여 《동아일보》에 기고한 작품이라고 합니다. 이 시는 타고르가 한국을 소재로 쓴 두 편의 시 가운데 하나로, 일제 식민치하에 있던 한국인들이 희망을 잃지 말고 꿋꿋하게 싸워 독립을 이루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보낸 격려의 송시(頌詩)인데 당시 인도 또한 우리와 같은 영국의 지배를 받고 있던 시기이기에 아마도 동변 상련의 마음이 컸던 것 같습니다.
학문 /
역사
23.05.21
0
0
고구려에도 신라처럼 금관이 있었나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그동안 우리 나라에서 발견된 총 9개의 금관들은 6개가 신라 시대의 것이고 3개가 가야의 금관 이였다고 합니다. 고구려 것은 하나도 없었는데 그 이유가 고구려의 위치가 북한 및 중국에 위치 한데다 도굴을 하도 많이 당해서라고 합니다. 얼마전 처음으로 불꽃 금관이라고 하는 것이 북한 지역에서 공개가 됬는데 정확한 시기나 연도는 미 확인 이라고 합니다.
학문 /
역사
23.05.21
0
0
G7의 설립 목적은 무엇인가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G7 결성은 1960년대 후반부터 미국 달러화 가치의 급락으로 미국 달러를 주거래 통화로 삼는 브레턴우즈 협정이 흔들리고 세계경제가 요동치기 시작한 것이 계기가 됐다고 합니다.1974년 미국, 영국, 독일 등 선진 10개국 재무장관과 중앙 은행장들이 미국 워싱턴 스미 소니언 박물관에 모여 달러화 가치를 떨어뜨리는 ‘스미소니언 합의’를 도출했고, 당시 조지 슐츠 미국 재무장관이 프랑스, 영국, 독일, 일본의 재무 장관에게 백악관 도서관(라이브러리)에서 따로 만날 것을 제안한 데서 ‘라이브러리 그룹(Library Group)’이 만들어졌다고 합니다. 이를 바탕으로 결성된 것이 G5(Group of 5)입니다. G5는 1975년 이탈리아, 1976년 캐나다의 참여로 G7으로 확대 개편됐다고 합니다. G7은 1997년 러시아가 참여해 G8이 됐으나 재무 장관 회의는 아직도 G7 국가만이 참여한다고 합니다. 비록 최근 몇년간 글로벌 이슈 해결에 적극적이지 못하다는 비판에 직면 했지만 그래도 G7은 국제 사회에 있엇서 가장 영행력이 있는 국가들의 구성이며 세계 환경 문제 해결 및 광범위한 문제 해결에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라고 기대 되어 집니다.
학문 /
역사
23.05.21
0
0
일본의 천황은 2차 세계 대전 시절처럼 상당한 영향력이 있나요 ?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현대의 왕은 어느 국가 던지 얼굴 마담입니다. 현대 입헌 군주제는 군림은 하되 통치는 하지 않는다는 것이 공통된 특징 입니다. 영국도 일본도 태국도 마 마찬 가지이며 다만 국민들의 존경은 한 몸에 받고 있는 것도 공통된 특징 입니다.
학문 /
역사
23.05.21
0
0
1441
1442
1443
1444
1445
1446
1447
1448
14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