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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시인 이상에 대해 자세히 알려주세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1937년 사망할 때까지 생전에 작품집을 내지 않았다고 합니다. 김기림에 의해 1949년 출간된 「이상선집」이 최초로 만들어진 이상의 작품집이었습니다. 전집으로서는 이상 사후 거의 20년이 지나서야 문학평론가 임종국에 의해 「이상전집」(1956, 전3권)이 출간되었다고 합니다. 일부 주장에 따르면, 이상은 언어유희를 이용하여 조선총독부에서 직접 발간하는 종합전문 월간지에 큰 글씨로 12, 12라는 제목의 소설을 연재하는 방식으로 일제에 대한 저항을 표현했다고 합니다. 조선총독부의 일본인 관리들은 12, 12를 단순히 숫자로만 이해했고 한글 발음으로 했을 때 욕설이 된다는 점을 눈치채지 못했다는 점을 이용하여 이상이 그들을 골탕먹였다는 것이라고 하나 이는 이상이 일제에 대한 큰 반감이나 독립운동에 대한 관심을 나타낸 적은 없었다는 점에서 부정되기도 합니다. 이상은 일제에 적극적이던 비 적극적이던 저항 시인이라고 보기에는 어려운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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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23.0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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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장군과 이성계의 차이점이 무엇일까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최영 장군은 고려의 충신으로 역사에 남고자 했고 이성계는 고려에는 역신이지만 조선의 건국 영웅으로 남고자 했던 것 입니다. 사실 한 왕조를 무너뜨리고 한 나라를 세운다는 것은 아무리 영웅 호걸이라도 쉬운 결정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일이 잘못되면 자기 자신 뿐 아니라 자기 가족 나아가서는 조상 전체가 역적이 되고 부관 참시를 당하고 후손들도 대대로 노비로 살아야 하기 때문 입니다. 그만큼 이성계는 목숨을 걸고 굳은 결심을 했고 최영은 조선의 건국 공신으로 살기 보단 고려의 충신으로 죽기를 원했던 것입니다. 제가 볼때는 두 분다 목숨을 걸고 자신의 결연한 의지를 지키신 분들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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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23.0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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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농사와 관련된 도서들이 어떤게 있었나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조선 시대 농서 중에 가장 유명한 책은 바로 《농사직설》(農事直說)입니다. 이책은 농사의 개설을 해설하여 놓은 농서(農書) 중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책입니다. 조선 전기의 대표적 농서로 영농 지침서 역할을 하였다고 합니다. 조선 세종이 정초(鄭招), 변효문(卞孝文) 등에게 명하여 1429년(세종 11년)에 편찬했는데요 과거에는 중국의 농서에만 의존해 왔으나 풍토에 따른 농법의 차이를 고려하여 각 도 농부들의 경험을 토대로 조선 기후 풍토와 조선의 실정에 알맞은 농법을 저술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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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23.0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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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셸 뒤샹의 변기는 어떻게 작품으로 인정받게 된건가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예술 작품은 구현된 의미입니다. 뒤샹의 변기가 예술인 이유는 심미적 즐거움이 예술의 모든 것이라고 믿던 시대에 예술에는 이렇다 할 심미적 특성이 없을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즉 이러한 작품들이 위대함은 변기의 아름다움이 아니라 아름다움을 느끼는 대중적 감수성을 의식의 영역으로 가져온 철학적 전환에 있다. 뒤생에게 변기란 작품의 심미성이란 의미를 구현하기 위한 수단일 뿐이기 때문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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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
23.0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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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자성어 한단지몽의 유래는 어떻게 되나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한단 지몽이란 인생과 영화의 덧없음을 이르는 말입니다. 서기 731년에 노생(盧生)이 한단이란 곳에서 여옹(呂翁)의 베개를 빌려 잠을 잤는데, 꿈속에서 80년 동안 부귀영화를 다 누렸으나 깨어 보니 메조로 밥을 짓는 동안이었다는 데에서 유래한다고 합니다. 심기제(沈旣濟)의 ≪침중기(枕中記)≫에서 나온 말이라고 합니다. 비슷한 말로 일장춘몽 이라는 말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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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23.0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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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과 아프리카 사이 지브롤터 해협에는 왜 다리가 없을까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스페인과 모로코가 서로를 잇는 지브롤터해협 터널(해저구간 28㎞)을 공동 건설한다는 데 합의했다는 AP 보도가 16년전에 이미 2007년 3월 나오기도 했으나 그 뒤론 아무런 진척 상황이 없는 이유는 90미터나 되는 심해의 그 구간을 뚫어서 기술적으로 성공한 다는 보장이 없기 때문 이라고 합니다. 정치적인 갈등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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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23.0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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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니시비라는 것이 무엇인가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회니 시비 사건이란 숙종 때 사제 관계에 있었던 송시열(宋時烈)과 윤증(尹拯)의 불화 때문에 그들의 제자들 사이에서 벌어진 일련의 분쟁으로, 서인이 노론(老論)과 소론(少論)으로 갈라지게 한 사건입니다.충청도 회덕(懷德)에 살았던 저명한 우암(尤庵) 송시열과 그의 제자로서 이산(尼山)에 살았던 명재(明齋) 윤증은 여러 가지 일로 불화를 빚었다고 합니다. 그들의 사사로운 불화는 1684년(숙종 10) 4월에 송시열의 제자 최신(崔愼)이 조정에 윤증을 고발하고 처벌을 요구함으로써 국가 차원의 정치적 분쟁이 되었다고 합니다. 두 사람의 제자들은 각기 스승을 변호하고 상대방을 비판하는 논쟁을 벌임으로써 조정이 시끄러워지고 서인이 노론과 소론으로 갈라지게 한 요인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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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23.0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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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언을 말한 사람 알려주세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이 말과 작은 책자인 〈제1 철학에 관한 성찰(Meditationes de prima philosophia, 이하 성찰)〉 하나로 데카르트는 철학계의 스타가 되었다고 합니다. 물론 이 말은 〈성찰〉에서 직접 나온 말은 아니라고 합니다.데카르트가 맨 처음 생각한 개념은 아니며,아우렐리우스 아우구스티누스가 이미 해당 개념을 이야기한 바가 있다. 플라톤이나 아리스토 텔레스 역시 비슷한 개념에 대해 이야기한 바가 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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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
23.0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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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백성들은 쓰레기를 어떻게 처리했나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조선시대에 성안에서 나오는 재나 분뇨 등은 마땅히 처리할 방법이 없어 대개는 개천(開川)이라 불리던 청계천이나 길가에 그대로 버렸다고 하니 이러한 오물을 버리니 개천이 막히고, 똥물이 지하로 스며들어 도시 위생상태가 아주 엉망이었다고 합니다. 이러한 도시 위생 상태의 불량은 주기적인 전염병의 창궐로 이어지는 것은 아주 당연한 일이었겠지요. 이러한 상황은 구한말까지 지속되었습니다. 식민지 시대 서울에서 배출되는 오물은 수거되어 묻거나 태우거나 혹은 한강에 방류되기도 했다고 합니다. 분뇨는 비료회사에서 부분적으로 비료로 재활용 되었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에 소각시설이 처음으로 설치된 것은 1986년의 의정부 소각장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미 일제 시대에도 서울에 소각장이 설치되어 가동했다고 합니다. 오물을 그냥 땅에 묻거나 태우는 것은 위생 관리의 차원에서 사람들이 사는 생활 공간에서 치운다는 관점에서 보면 이전보다 진일보한 것이지만 지금의 관점에서 보면 바람직한 것이라고 볼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처리 관행은 1990년대 초반이 되어 서야 서서히 바뀌게 됩니다. 1990년대 초반까지만 하더라도 집을 짓거나 저습지를 메우기 위해서 그냥 쓰레기를 묻는 행위가 비일 비재하게 일어났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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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23.0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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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유럽 예술공연 중 가장 인기가 있었던 공연은 무엇이었나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유럽에서 가장 공연을 많이 한 것은 아마도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일 것 입니다. 이 뮤지컬은 1986년 9월 27일, 런던 Her Majesty’s Theatre에서 초연되었고 이듬해 1월, 뉴욕 Majestic Theatre에서 브로드웨이 첫 공연을 가졌다고 합니다. 2019년 4월 《오페라의 유령》은 브로드웨이에서 13,000회 공연을 돌파하였습니다. 이것은 뮤지컬 캣츠의 기록을 넘는 전무 후무한 기록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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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23.0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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