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볼링의 도입과 역사가 궁금합니다.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볼링은 14세기 유럽에서 처음으로 시작 되었다고 합니다. 처음에는 스포츠가 아니라 곤봉을악마로 간주하고 바닥에 세워 놓고 공을 굴려 그것을 넘어뜨리는 즉, 악마 퇴치 의식에서 시작된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던 것이 1920년대에 우리나라에 선교사들에 의해서 처음으로 들여와 지금에 까지 이어졌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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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나나가 대중화된 것은 언제인가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바나나가 우리 나라에 처음 들어온 것은 일제 강점기 대만에서 부터 였다고 합니다. 너무나 귀한 과일 이였고 가격도 비싸서 우리 나라에서는 1990년도 초 까지만 해도 흔치 않은 과일 이였지요. 그러던 것이 1990년도 말부터 대중화가 되기 시작 하면서 부터 점차 흔한 과일이 되어 버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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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궁에서 음식을 담당하던 사람들은 어떻게 채용했나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조선시대 잔치 때 음식을 만드는 사람’이라는 뜻의 숙수는 조선시대 궁궐이나 민가의 잔칫날 음식을 준비하던 전문직이었다고 하지요. 그중에서도 특히 임금님 전속으로 수라상에 올라갈 음식을 만들던 사람을 가리켜 대령숙수라 칭했다고 합니다. 이러한 전문 대령 숙수 같은 직업은 대를 이어서 아버지, 증조 할아버지, 고조 할아버지 등으로 가문 대대로 내려 오면서 이 직업을 했다고 합니다. 그도 그럴 것이 궁중 요리의 참 맛을 지키고자 했던 조선 시대의 맛에 대한 의지를 볼수 있는 부분 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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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라 불리는 테슬라는 왜 에디슨 보다 곽광 받지 못했나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에디슨과 테슬라는 비슷한 점도 있지만 다른점도 굉장히 많았습니다. 예를 들어 에디슨은 ‘천재란 99%의 노력과 1%의 영감의 결과’ 라는 유명한 말에서 잘 나타나듯, 발명의 과정에서도 무수한 시행착오(trial & error)를 불사하는 끈질긴 노력과 실험 정신을 중시하였다고 합니다. 반면 테슬라는 과학자로서 직관과 이론적인 측면을 보다 중시하여, 무턱대고 실험과 시행착오를 반복하면서 시간을 허비하는 것은 그다지 바람직스럽지 않다고 생각하였다고 합니다. 에디슨은 발명가로서 뛰어난 능력 못지않게, 자신이나 타인의 발명품을 실용화하고 상업적으로 활용하는 데에도 매우 탁월한 재능과 관심을 보였다고 하지요. 그의 대표적 발명품으로 꼽히는 전구 역시 그러한 경우 중 하나일 것입니다. 반면에 테슬라는 이런 측면에서도 에디슨과는 매우 대조적이었습니다. 그는 에디슨과의 송전 사업 경쟁에서 최종 승리를 거두었음에도 불구하고 큰 부를 누리지는 못했고, 도리어 재정적으로 쪼들릴 때가 더 많았다고 합니다. 수많은 발명과 특허를 보유했지만 돈벌이에는 별로 관심을 두지 않고 과학자로서 이상주의적 자세와 ‘선비정신’을 견지했기 때문이라고 하네요. 아마도 이러한 면에서 역사상에도 에디슨이 더 훌륭한 과학자로 포장 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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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대왕이 천체에 관심을 많이 갖은 이유가 있을까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농사에 있어서 날씨는 굉장히 중요한 요소 중의 하나 였습니다. 중국의 천체 관측기로는 우리 현실에 맞지 않아 세종이 이처럼 많은 해시계와 각종 천문의기를 만든 이유는 조선에 맞는 시간을 만들어 백성들이 편한 생활을 하도록 하는 애민 정신 때문이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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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우리나라 프로야구 최다 우승팀은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역대 우리나라 프로 야구 최대 리그 우승팀은 1983년 부터 2017년 사이에 11회 우승을 한 기아 타이거즈 입니다. 2위는 9회 우승의 삼성 라이온즈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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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역대 최대 올림픽 메달은 딴 선수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역대 한국 선수 가운데 올림픽에서 가장 많은 메달을 획득한 것은 양궁의 김수녕과 사격의 진종오 선수 입니다. 김수녕은 금메달 4개와 은메달 1개, 동메달 1개를 땄고, 진종오는 금메달 4개, 은메달 2개를 획득 했다고 하지요. 둘다 6개의 메달을 딴 것이고 이것이 개인당 올림픽 최대 메달 갯수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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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담상조라는 고사성어의 의미는 무엇이고 어디서 유래하였나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간과 쓸개를 서로 비추어 보여 준다.’는 뜻으로 속마음까지 터놓는 깊은 우정을 의미합니다.이 사자성어는 중국 당나라 시기의 문장가 한유(韓愈)가 그의 친구 유종원(유자후)를 위해 지은 비문(碑文) 중에 나옵니다. 간담상조의 출처는 한유가 유자후를 위해 지은 《유자후묘지명(柳子厚墓誌銘)》입니다. 이 비문 중에 아래와 같은 내용이 나옵니다.『유자후에게는 나이든 모친을 모시고 사는 유우석이라는 친한 벗이 있었습니다. 자후는 우석이 험지로 좌천되었다는 소식을 듣고는, 노모를 모시고 험지로 갈 수도 없을 것이고, 걱정할 노모를 생각하며 그가 좌천 되어 험지로 간다는 말도 못할 것이란 사실을 짐작하고는 안타까워 했다고 합니다.안타까운 마음에 자후는 그가 가야 했던 근무처를 우석의 근무처와 바꾸어 달라고 조정에 부탁하고 “이일로 내가 중한 죄를 얻을지라도 원망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했다고 합니다.이렇게 선비의 절개와 의리는 벗이 곤경에 처했을 때 드러나는 법이지요. 그러나 요즘 세대는 간과 쓸개를 서로 보여 줄듯이 하며 결코 배신하지 말자고 맹세하지만, 조금이라도 이해관계라도 상충되면 서로 모르는 사이처럼 반목 하게 되는 세대가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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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전통무술인 태권도는 어느시대에 생겨났나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태견은 삼국시대 부터 있었지만 태권도는 생긴지는 얼마 안되었습니다. 1945년 일제 해방을 전후해 국내에 여러 개의 무술 도장이 생기게 된다고 하는데여. 그 중 소위 '5대관'(청도관, 송무관, 무덕관, 지도관, 창무관)이 가장 유명하였는데, 이 도장들이 분화하여 생긴 9개관이 1960년대에 합쳐져서 현대 태권도의 모체가 되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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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의 화랑도는 모두 남자들로만 구성되었나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아닙니다. 화랑도가 생기고 초기에 진흥왕때 화랑도에 우두머리로 원화 라는 직책이 있었는데 남모와 준정이라는 여자 였습니다. 이들을 우두머리로 해서 그 밑에 남자 화랑도들을 선별 했지요. 하지만 그 이후에는 원화를 더 이상 여자로 안 뽑고 국선이라고 해서 남자 화랑으로만 뽑았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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