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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리엔트 공의회의 역활과 기능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당시의 문제점들은 주교로 대표되는 고위성직자들은 사목(Cura animarum)보다는 권력을 우선시하는 경향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들은 가문으로 나뉘어 주 교좌를 가장 많이 차지하는 것을 목표로 힘겨루기에 바빴고, 주교들은 지성적인 기준보다는 가문의 기준으로, 즉 족벌 체제의 결과로 임명되기 일쑤였지요. 하위 성직자들은 교육의 부족으로 가장 기본적인 미사, 찬송을 제외하고는 라틴어를 읽을 줄 모르는 신부들이 대부분이었다고 합니다.. 신부들은 술을 마시고, 혼인하지 않은 여자와 동거를 했으며 게다가 직업의 보상은 미진해 다른 직무를 겸직 해야 겨우 생계를 이어갈 수 있었습니다. . 신도들에게 가장 가까운 하위 성직자들이 무지했으니 신도들은 미신에 빠져들기 시작했고 면죄부를 구매하거나 왕/권력자를 위해 기도하면 가족이 연옥 에서 고통 받는 시간이 줄어든다는 둥 상황에 알맞게 교리를 번안 했지요. 이런 문제점을 일찍이 인지했던 몇몇 성직자들은 이미 각자 개혁을 시도하고 있었지만 대부분의 조치 들은 부분적이거나 임시방편에 불과했습니다. 바오로 3세를 비롯한 여러 교황들도 마냥 이런 문제들을 방관했던 것은 아니고, "교회를 바로잡기 위하여"라는 저작들을 출판하는 등 여러 방책 들을 강구하고 심사숙고한 끝에 공의회는 대중 라틴어 성경인 불가타 성경을 따라 오늘과 같은 정경 목록을 재확인하고 불가타 공식 표준판 성경을 펴내기 위한 위원회를 출범 시켰습니다. 이것이 가장 큰 공의회의 내용이라고 볼 수 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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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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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의 종교 개혁과 관련된 질문입니다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종교개혁의 영향으로 한국에 처음 전파된 루터파, 개혁 교회파, 그리고 영국 국교회(성공회)로 대별 되는 3대 우파 종교개혁과 유아 세례를 부인하고 오직 성인의 세례만 유효하다고 주장하는 재세례파, 신령주의파, 그리고 삼위일체론을 부정하는 여호아의 증인 같은 삼위일체론을 부정하는 반삼위일체파로 이어지는 3대 좌파로 기독교는 나누어 지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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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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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나 중동의 국경이 직선인 이유는 무엇인가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19세기에서 20세기 초반에 걸쳐 유럽 각국의 아프리카 수탈이 이뤄졌습니다. 그 과정에서 유럽 국가들이 서로 충돌하는 것은 당연했습니다.잦은 충돌로 인한 피해를 우려한 유럽 각국은 1884년과 1885년에 걸쳐 독일의 베를린에서 아프리카를 식민지로 나누는 회담을 개최합니다. 이때 유럽 국가들은 아프리카의 식민지들을 자신들의 편의대로 재단해 직선을 경계로 나누게 됩니다. 기존 민족 경계나 자연 경계를 무시하고, 자신들의 편리함과 힘의 논리에 따라 식민지 경계를 나눈 것입니다. 이때 나누어진 식민지의 경계가 대부분 현재의 국경선으로 남아 오늘날 아프리카의 국경선이 직선 형태가 많은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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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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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언제쯤의 의식으로 평생 살아가나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제가 올해 51세인데 인데 과거의 저를 돌아보니 20대, 30대, 40대 계속 해서 사고와 생각하는 방식이 바뀌어 왔다는 생각이 드네여. 나이가 들수록 우리는 더 낙관적으로 변한다고 합니다. 미국, 네덜란드, 스웨덴, 스코틀랜드, 독일에서 6만 명의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60세 이후에는 대부분 덜 신경질적으로 변하며, 노년이 될 때까지 더 긍정적인 반응을 보인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고 합니다. 이런 연구 결과 뿐 아니라 제가 생각해도 제 자신이 나이가 들수록 좀 더 여유가 생기고 화도 좀 더 줄어들고 생각의 여유가 생기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전에는 굉장히 크게 생각되고 중요하게 생각 되던 일들도 지금은 별거 아는 것 같이 생각도 들고요. 과연 이것이 나이가 들어가는 것인지 아니면 세상에 이미 길들 어져서 그런 것인지 모르겠지만 사람은 아마도 죽을 떄 까지 어떠한 모양새던 계속 변해 가는 게 맞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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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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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과 한국은 과거 나름 사이가 좋았는데 왜 이렇게 사이가 틀어지게되었나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양국은 1962년 10월 23일 수교하였다고 합니다. 1967년 4월에 주이란 한국 대사관이 설치되면서 대한민국과 이란과의 우호 관계는 긴밀해 졌다고 합니다. 1971년 10월 이란 건국 2,500주년 기념식에 김종필 총리가 대통령특사로 참석하였으며 그 후 국회의장을 비롯하여 수차례에 걸친 특사 및 사절단이 상호방문 함으로써 양국간의 관계는 더욱 견고해졌을 뿐만 아니라 중동 국가중에서도 비교적 대한민국의 대(對)UN정책을 지지해 온 우방 국가입니다. 하지만 미국과 이란 사이가 안좋아 지면서 중간에 낀 우리나라도 애매한 상황에 놓이게 되었고 최근에는 이태원 사고 당시 외국인 희생자 중 이란 국적자는 모두 5명으로 내국인 다음으로 사망자 수가 많았다고 하네요. 나세르 칸아니 이란 외무부 대변인은 10월 31일 정례 기자회견에서 “한국 정부가 관리 방법을 알았다면, 행사 관리를 했어야 했다”는 발언과 함께, 한국은 히잡 관련 시위 관련한 훈수를 둘 수 없다는 발언을 남겼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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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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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이 자본시장을 개방한 이유가 무엇인가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자국통화의 국제화를 지향하는 나라는 기본적으로 완전하고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는 자본, 자본수지의 완전한 자유화, 환율의 완전한 교환성이 필요하지만 현 시점에서 중국은 여태 까지 그렇지 못했습니다.중국의 위안화는 이러한 통화 국제화의 조건에 이상적으로 부합되지는 않는다고 볼 수 있지요. 중국은 세계 2위의 거대 경제 규모와 막대한 교역 규모를 보유한 엄청난 잠재력을 가진 거대한 경제인 반면 위안화는 현재 통화의 태환성 및 자본시장의 개방이 제한돼 있는 통화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은 2009년 전국인민대표회의를 통해 위안화 국제화 추진 계획을 공식 선언했고 중국은 자국의 막대한 대외 무역 규모를 바탕으로 역내 결제 통화로서의 위상 강화를 통해 점차 위안화의 국제적 사용도를 확대해 나아가는 방향으로 위안화 국제화를 진행한다는 것이 계획입니다. 결국은 중국이 이런 방향으로 계속 나아간다면 지속적으로 가본 시장을 개방해 나갈 수 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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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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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TI에 대해서 질문 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결론부터 말씀 드리면 MBTI는 신뢰도와 타당성이 떨어지기에 믿을 것도, 활용할 것도, 참고할 것도 못 된다고 생각 합니다. MBTI는 연구할 만한 그리고 참고할 가치도 없다는 것이다는 것이 결론인 데요. 그 이유는 실제로 MBTI는 융의 분석 리를 기반으로 하고 있지만 융 조차 자신의 저서 '심리학적 유형'에서 "모든 개인은 각각의 유형을 벗어날 수 있으며 해당 결과는 완벽하지 않다"라는 부정적 평가를 이미 내렸다고 합니다.. 1993년 교육연구 학술지(Review of Educational Research)에 게재된 ‘MBTI의 유용성’ 논문에서는 ‘MBTI 결과는 참고하거나 신뢰하기 어렵다’고 언급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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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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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 발발시 일본도 참전했나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한국전쟁이 터지자 점령군 총사령관인 맥아더 장군은 1950년 7월8일 요시다 시게루 총리에게 경찰예비대를 만들도록 지시해 재 군비의 길을 열었는데요. 전쟁 발발 당시 일본에 군대는 없었지만, 한반도의 지리 지형을 잘 아는 옛 일본군 출신들이 있었다고 하지요. 이들은 점령군사령부의 정보조직(G2)에 협력해서 유엔군의 상륙작전 등을 돕는 정보 제공을 했다고 합니다. 일부는 상륙용 함정(LST)에 선원으로 승선해 일종의 병참업무를 담당했다고 하구요. 전투에 직접 참가하지는 않았지만 후방에서 전쟁 수행을 지원했다 합니다. 그래서 일본이 넓은 의미에서 참전국 이었다고 말할 수 있지요. 일본에서는 유엔군에 혈액을 보내자는 헌혈 운동이 벌어졌고 인천·부산 등지에서 연합군 함정을 수리하거나 항만 준설 작업을 했던 일본인도 상당수 있었다고 합니다. 1945년 2차 세계 대전 패전국인 일본이 5년 후 미국에 숫 가락 얻고 승전국에 포함된 셈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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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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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 일본의 만행에는 무엇이 있나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아마도 가장 큰 학살은 관동 대지진 조선인 학살 사건이 아닌가 합니다. 1923년 9월1일, 도쿄와 요코하마 주변에는 정오 무렵 리히터 규모 7.9의 강한 진동이 관동 일대를 급습했다고 합니다. 진동이 멈추자 거리 곳곳에서 불이 났고. 순식간에 발생한 화재는 강한 바람을 타고 도시 전체를 휩쓸었지요.. 피난민으로 북적였던 육군 피복 야적장에 불이 옮겨 붙으며 4만 명이 희생되는 참사가 벌어졌고 관동 지역 인구 1000만 명 가운데 이재민만 310만 명에 달했다고 합니다.. 14만2000명이 죽고, 3만7000명이 실종됐다고 합니다. . 정작 지진보다 화재로 인한 피해가 더 컸다고 하네여. 거기에 더해 조선인이 불을 지르고 다는 다는 소문이 돌았고 결국 이 헛소문 때문에 일본 경찰과 군인이 동원되서 약 4일 동안 재일 조선인은 전부 죽였다고 하는데 독립신문 특파원이 조사·보고한 바에 따르면, 관동대지진 당시 4일 동안 희생된 조선인이 6661명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고 합니다. 이 사건에 대한 배상이나 사과는 아직도 한번도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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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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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시옷을 표기하는 이유가 궁금합니다.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사이시옷의 쓰임에 대해 그 원칙을 몰라 주저하기도 하고, 원칙을 알아도 적용하는 과정에서 많이 혼란 스러워 하는데요..우선, 사이시옷은 '합성어(두 개 이상의 어근이 결합된 복합어)'를 대상으로 하구요. 그리고 합성어 중에서도 '순우리말 + 순우리말', '순우리말 + 한자어'로 된 경우이며, 한자어로만 된 합성어의 경우는 예외로 인정되는 예외가 몇 개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1. '순우리말+순우리말'로 된 합성어로서, 앞말이 모음으로 끝나고 뒷말이 예사소리며, 이 예사소리가 된소리로 발음되는 경우 ⇒ 귓밥, 낚싯대, 맷돌, 바닷가, 뱃길, 쇳가루, 어젯밤, 장맛비, 잿더미, 쳇바퀴, 등등 2. '순우리말+순우리말'로 된 합성어로서, 앞말이 모음이고 뒷말이 'ㄴ,ㅁ,ㅇ'으로 시작되며, 발음할 때 'ㄴ'소리가 덧나는 경우 ⇒ 깻묵, 나뭇잎, 냇물, 노랫말, 뒷머리, 베갯잇, 빗물, 요샛말 등등 3. '순우리말+한자어'에서, 앞말이 모음으로 끝나고 뒷말이 예사소리며, 이 예사소리가 된소리로 발음 되는 경우 ⇒ 깃발, 송홧가루, 자릿세, 진돗개, 콧병, 텃세, 포돗빛, 핏기, 햇수 4. '한자어+한자어'에서 두 음절로 된 다음의 여섯 가지의 경우 ⇒ 곳간(庫間), 셋방(貰房), 숫자(數字), 찻간(車間), 툇간(退間), 횟수(回數)와우, 정리해 보니 헷갈릿 것 같기도 하네여. 결국 순댓국 같은 단어는 한번만 국어 사전을 찾아보고 이름을 지었다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 글자 이네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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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
22.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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