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삼국시대의 유금필은 어떤 인물이었는지 궁금합니다.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유금필은 평주 출신으로 태조를 도와 고려를 건국하는 데 커다란 공을 세운 개국공신이었는데 용맹이 매우 뛰어났다고 알려져 있는데, 북쪽 오랑캐들이 쳐들어오자 북번의 추장 300명을 복종시키고 그들의 부족 1,500명을 항복시키고 포로로 잡힌 고려인 3천 명을 귀환시켰던 업적이 있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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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인류 역사상 신발을 언제 부터 신고 다녔을까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인류가 언제부터 신발을 신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인류가 바늘을 발명하여 옷을 최초로 만들어 입었던 것이 약 2만 5천 년 전인만큼, 이 무렵부터 신발이 등장했을 것이라고 추측해볼 수 있다고 합니다. 시베리아에서는 약 2만 년에 만든 가죽 모카신이 발견되기도 했다고 하는데 추위를 극복하고 뜨거운 햇살로부터 몸을 보호하기 위해 옷이 만들어졌듯이, 신발 역시 동상을 방지하기 위해 혹은 바닥의 열기로부터 발을 보호하기 위해 추운 곳과 뜨거운 사막 지역에서 먼저 발전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신발은 나무껍질이나 풀, 짐승의 가죽이나 털을 이용해 발을 묶어 싸던 것에서 시작하여 차츰 정해진 형태를 갖추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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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리에 두는 자리끼라는거는 무엇인가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자리끼란 밤에 자다가 마시기 위해 잠자리의 머리맡에 준비해두는 물을 말하는 순우리말입니다. 한국의 집 구조상 부엌과 방은 따로 있었기 때문에 자다가 일어나 물을 가지러 가기 어려웠기에 물을 떠다가 미리 머리 맡에 두었스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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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지심체요절에 대해서 알려주세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직지심체요절(直指心體要節)은 고려 시대 청주목(淸州牧)에 있었던 사찰 흥덕사(興德寺)에서 만들어진 불교 인쇄물로, 현존하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활자본이라고 합니다. 제목을 풀이하면 백운이라는 고승이 간추린(초록) 부처님(불조)의 깨달음(직지심체을 요약한 책이라는 뜻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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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사와 차례의 차이는 무엇인가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제사는 고인의 생일, 죽은 날 등에 넋을 기리기 위한 문화이고 차례는 고인만이 아닌 생존자에게도 안녕과 인사를 전하는 문화 입니다. 차례라고 하면 새해, 추석, 단오, 동지 등의 명절에 어른들에게는 인사를 고인에게는 제사를 지내는 풍습이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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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에 어의는 직급이 어떻게 되나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어의는 조선 시대 당시 정 3품에 해당 하는 직책 입니다. 지금 으로 따지면 장관급 다음의 차관급에 해당 하는 직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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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니스 호주 오픈의 역사가 궁금합니다.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호주 오픈 테니스 대회는 1905년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초창기에는 오스트레일레시아 선수권 대회로 불렸으며, 1927년부터 오스트레일리아 선수권 대회로, 1969년부터 현재와 같은 호주 오픈으로 명칭이 변경되었습니다. 1905년부터 1923년까지는 오스트레일리아와 뉴질랜드에서 번갈아 개최되었으며, 1924년부터는 멜버른에서 단일 개최로 변경되었습니다. 처음 우승자는 Rodney Health 가 남자부 우승자 였고 여자부는 Mall Molesworth 가 여자부 우승자 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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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방원은 왜 정몽주를 살해했나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당시 이성계는 낙마하여 부상을 입고 집에 머물러있었는데 정몽주는 이를 기회삼아 이성계의 수족들을 죄다 유배보내고 없애려고 했습니다. 이에 이방원은 정몽주를 죽이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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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백제,신라의 언어는 각각 달랐나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삼국의 언어는 거의 비슷했다고 보는 이유로는< 삼국사기> 와 < 삼국 유사>의 기록을 증거로 들수 있는데 삼국사기의 기록에 고구려 장수왕편에 도림이라는 사람이 죄를 짓고 백제에 잠입했다는 기록이 있는데 만일 고구려와 백제의 언어가 달았다면 그는 백제에 잠입 하자 마자 잡혀야 했는데 그런 기록은 없고 더군 다나 백제는 고구려에서 내려온 유민들이 백제를 만들었다는 내용으로 봐도 역사적으로도 의사소통에는 문제가 전혀 없을 것 으로 추정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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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록강 상류와 두만강 북쪽 지역인 간도는 삼국시대 이후에 우리나라 영토였던 적이 있나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1907년 대한 제국 때 만들어진 「 대한신지지부지도」에는 두만강 건너 간도의 일부 지역이 함경북도에 포함된 한국 땅으로 표시되었다고 합니다. 이를 바탕으로 당시 대한 제국이 간도를 우리의 영토로 여겼음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는데 그러나 1909년 일본이 청과 간도 협약을 체결하면서 간도는 청의 영토가 되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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