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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조선이 스스로 삼전도비를 만들었나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우리 민족의 수치심을 나타내는 삼전도비는 우리의 의지대로 세운 것이 아닙니다. 청나라의 태종의 요구에 의해서 만든 비석 입니다. 그래서 원래 명칭도 대청황제공덕비 였는데 그냥 삼전도비가 된 것 입니다.
학문 /
역사
23.0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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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도 조선처럼 개항초기에 불공정계약은 맺었나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일본이 미국과 메이지 유신을 통해 시도한 변혁과 조약은 조선에 비하면 양호한 편이 였습니다. 더군 다나 일본인들은 청나라가 영국에 아편 전쟁을 통해 홍콩을 뺏기고 얼마나 피해를 많이 봤는지를 잘 알기에 조심스럼지만 적극적으로 서양 문물을 수용하고 변화하기 위해 몸부림 쳤습니다.
학문 /
역사
23.0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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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러가 오르는거랑 내리는거랑 뭐가 더 좋을까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경제·금융전문가입니다. 그렇게 간단 하게 생각 할 문제가 아닙니다. 우리 나라는 물론 수출에 의존 하고 있지만 쵝ㄴ에는 수입 거래량도 만만치 않습니다. 원유및 각종 곡물 등을 자 수입에 의존 하는 우리 나라 입장에서는 각종 원자재 가격이 오르면 수출을 하는 데 필요한 원자재 가격이 상승 해서 사실 수출에도 영향을 미치는 것 입니다.
경제 /
예금·적금
23.0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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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식과 코인의 매도시 차이는 무엇인가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경제·금융전문가입니다. 코인은 중간에 관여 하는 중간 매체가 없이 다이렉트로 현금과 교환 가능 하지만 주식은 직접 주식이 현금화 되는 것이 아니라 증권예탁결제원에 거래 내역이 등록되어야 소유권이 이전되는 것 입니다. 증권예탁결제원에서는 증권사로부터 받은 거래 정보를 등록하고 다음날 계좌 소유주에게 해당 금액을 입금하게 되는 과정을 거치는데요. 여기에 3영업일이 소요되고 이것은 해외 주식 거래도 마찬 가지 입니다.
경제 /
주식·가상화폐
23.0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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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공휴일 지정이 정말 경제에 효과가 있을까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경제·금융전문가입니다. 칼날의 양면 입니다. 즉, 공휴일이 늘면 소비지출이 늘어나면서 생산이 늘어나고, 이에 따른 일자리도 늘어날 것이라는 게 국책·민간 연구기관과 학계의 판단인데 한 연구기관은 휴일이 하루 늘면 전체 소비지출액은 2조1000억원 늘어날 것이라고 전망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대체 공휴일을 확대할 경우 생산 가능 일수가 줄어드는 만큼 재계에선 생산성 악화 등 부작용이 적지 않다는 입장도 있습니다.
경제 /
경제정책
23.0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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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고층 아파트가 지어질 경우 경제에 어떤 영향을 끼치나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경제·금융전문가입니다. 우선 도심권에 초고층 아파트가 지어질 경우 지역 경제에는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아파트 건설로 인해 건설 업체와 부동산 업계에 일자리가 더 생기고 자재와 서비스 업등이 활성화 되기도 할 것 입니다. 하지만 그 부작용 또한 만만치 않습니다. 주변 도로 혼잡, 정체 및 주차 문제 오염 및 제반 시설 확충 등 해결해야 할 문제도 만만치 않습니다.
경제 /
경제동향
23.0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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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시집살이 같은 어려운 시절을 매운 고추에 비유할까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고추가 상징 하는 상징성 때문 입니다. 고추는 원래 쓰고 괴로운 맛이란 의미였는데 후에 매운맛으로 인식됩니다. 이 매운맛이 인생의 쓴맛과 연결되면서 시집을 와서 시집 살이를 하는 고단한 인생살이를 고추에 비유한 듯 합니다.
학문 /
역사
23.0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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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화폐의 기준은 어떻게 나뉘었나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조선 시대 화폐의 양은 푼 → 돈 (전) → 냥 (량) → 환 (원)의 순서가 되며, 10푼이 1돈 이고 100푼이면 1냥 그리고 1,000푼이 1환이 됩니다. 1902년 대한 제둑의 원으로 대체되었습니다.
학문 /
역사
23.0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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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자호란 당시 인조는 왜 강화도로 못가고 남한산성으로 피신한건가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고려 시대 인조는 강화도로 가고 싶었어도 이미 청나라 군대가 강화도를 점령 해 버리는 바람에 갈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남한 산성으로 피신을 한것인데 인조가 경북궁을 버리고 남한 산성으로 간 것이 도성을 버린 것이라고 할수는 없습니다. 남한 산성은 서울에서 약 30키로 정도 밖에 떨어진 곳이기에 몽진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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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23.0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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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에 양반들도 병역의무가 있었나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고려 또한 조선과 마찬가지로 영반에게도 군역의 의무가 주어졌습니다. 16세 이상 60세 이하의 정상적인 모든 남자에게 군역의 의무가 부과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관원, 공신의 자손, 천민, 노비 등은 원칙적으로 군역에서 제외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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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23.0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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