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에서 숫자 40이 왜 완성의 숫자인가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서양에서의 40의숫자의미는 40은 시련기간, 시험, 아니시에이션, 죽음을 뜻하는데 4의 10배에 해당하는 수로서 40은 완전무결, 완전성의 상징이며 이는 성경에서 비롯된 숫자 입니다. 성경에서 40의 숫자는 우선 40일간이 홍수로 인해 세상을 쓸어 버린 일과 40일간의 예수님의 광야에서의 시험, 40세의 나이에 광야로 도망간 모세, 40년간 이집트에 흉작을 내리신 일, 부활 후 40일간 제자들과 함께 하신 예수님 등의 사건등으로 나타 내어 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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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계가 조선의 국호를 왜 '조선'이라고 한건가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조선이라는 명칭은 고조선(단군조선·기자조선·위만조선, 또는 전조선·후조선)에서부터 유래되고, 중국에서는 우리나라의 지칭으로 고려(고구려 후기 국호 및 고려왕조)라는 용어와 함께 오랫동안 사용되었는데 『산해경(山海經)』에 처음 보이며, 중국 정사로는 『사기(史記)』 조선전에 처음 보이며 조선을 ‘해가 일찍 뜨는 동방의 나라’라는 의미로 해석하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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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도삼절이라는 말이 생겨난 유래는 어떻게 되나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송도삼절 (松都三絶) 소나무 송松 도읍 도都 석 삼三 뛰어날 절絶 뜻:조선시대 개성에서 뛰어난 세 존재라는 말로, 박연폭포와 서화담, 황진이를 이르는데 박연 폭포는 사람이 아닌데 그 뛰어난 경치가 너무 아름 답다고 해서 절경이라는 의미로 포함을 시킨 것은 폭포 자체를 의인화 했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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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은 어떻게 시작되었고 어떻게 정전되었나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한국전쟁 혹은 6.25전쟁은 1950년 6월 25일 새벽에 북위 38°선 전역에 걸쳐 북한군이 불법 남침함으로써 일어난 한반도 전쟁입니다. 광복 후 한반도에는 냉전체제 속에서 남북에 별개의 정부가 들어 섰는데 소련의 지원을 받은 북한이 남한을 먼저 공격한 침략 전쟁이고 1953년 7월27일 정전 협정을 맺음으로서 휴전 상태가 되어 지금에 이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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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조라는 용어의 뜻이 궁금합니다.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태조(太祖) 라는 말은 클태, 조상조 라는 한자로 나라를 처음 만든 사람을 태조 라고 합니다.고려의 태조 왕건, 조선의 태조 이성계 라고 합니다. 이방원은 태조가 아니라 태종입니다. 보통 "조" 라는 칭호는 한 나라에 시조나 혹은 그에 버금 가는 위대한 업적을 이룬 왕에게 후대에 붙여주는 이름이고 " 종" 은 그냥 일반 왕을 말하는 시호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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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판오분전 은 언재부터 생긴말인지 궁금합니다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6.25때 피난 시절에 먹을 것이 없던 시절 미군으로부터 쌀이나 옥수수 등으로 큰 솥에 죽을 끓여 나눠 줬는데 이 끼니가 피난민들에게는 생명줄과 같았기 때문에 이 죽을 먹기 위해 필사적일 수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죽이나 밥을 큰 솥에 하고나서 뚜껑을 열기 5분 전에 사람들에게 알려줬는데 알려주면 사람들이 밥이나 죽을 먹기 위해 몰려들어 난장판이 되는 상황이 연출되었는데 그래서 솥뚜껑 (판)을 열기 오 분 전이라는 말이 무질서하고 난잡한 상황을 말하는 말이 개판 5분전 이라는 말로 변하게 된것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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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계가 반란을 일으킨 이유는 무엇인가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사실 이성계는 무장이고 전쟁터에서 용장 이였습니다. 그는 처음부터 왕이 될 생각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그것도 고려 왕조를 무너뜨리고 역성혁명을 통하여 새로운 왕조의 임금이 되겠다는 것은 더욱 아니었지요. 무학대사나 정도전등을 만나 면서 아마도 그의 마음이 점차 흔들렸고 새로운 나라를 세우겠다는 취지로 변해 갔던 것 같습니다. 이성계는 어찌 되었건 조선이라는 나라를 새웠으니 반란 이라고 하는 것 보다는 역성 혁명이라고 하는 편이 좋을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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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사립 교육기관이 어떤 것이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조선시대에는 사학과 관학의 두가지 교육이 존재 했는데 관학에는 서울의 성균관과 4부 학당, 지방의 향교가 있었고, 사학으로는 서원과 서당이 있었습니다. 천민이 아니라면 누구나 배울 수 있었으나, 실제로는 양반을 중심으로 교육이 이루어졌습니다. 물론 성균관과 같은 관학이 아무래도 사학 보다는 과거 급제자를 더 많이 배출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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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개국공신 김인찬에대해 알고싶은데 알려줄 수 있나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조선전기 중추원사, 의흥친군위동지절제사 등을 역임한 무신 입니다. 본관은 양근(楊根). 자는 의지(義之), 호는 의암(毅菴). 양근 김씨(楊根金氏)의 시조입니다. 조상과 가계가 불분명하나, 1376년(우왕 2)에 북청천호(北靑千戶)이었던 점으로 보아 북청지방의 토호로 추정 됩니다. 1388년 이성계를 따라 위화도에서 회군한 뒤 1390년(공양왕 2) 밀직부사(密直副使)가 되고 1392년에는 동지밀직사사(同知密直司事)에 올랐고 조선 개국 후 중추원사(中樞院使)·의흥친군위동지절제사(義興親軍衛同知節制使)로서 태조의 친병(親兵)을 통솔하는 책임을 맡았으나 곧 죽었다고 합니다. 후손들은 법흥김씨라고도 부르신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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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종사관은 어떤벼슬이었나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조선시대에 군영에서 종사관은 주장 (主將), 즉 지휘관 을 보좌하는 업무를 했습니다. 예를 들어 지휘관이 장군 이라고 하면 종사관은 종 6품의 벼슬로서 장군을 보좌 하고 부하들을 통솔하는 중간 역할의 관리 이며 지금의 부관 참모 정도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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