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 의자왕의 삼천궁녀는 거짓이라는데 맞나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의자왕 당시에 백제 수도 사비의 인구수가 약 5만여 명 이였습니다. 그 중 3천명이 궁녀 였다는 것도 말도 안되며 그 3천명이 다 낙화암에서 떨어져 죽었다는 것도 말이 안됩니다. 그 수가 정확치도 않고 그리고 당시 의자왕를 조롱하면서 만들어진 이야기 라고 볼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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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 문화의 특징은 무엇인가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고구려 문화는 하늘에게 제사를 지내는 문화가 특징 입니다. 의례를 담당하는 무당이나, 제사장, 그리고 신전이 있었으며, 수시로 신들을 받드는 의식이 치러졌다고 합니다. 왕들도 천신과 조상신께 바치는 제사와 동맹축제에는 결코 빠지지 않았다고 합니다. 고구려 종교에 새로운 바람을 불러온 것은 소수림왕때인 AD372년에 국가에서 종교로 인정받은 불교라고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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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길동전이 최초의 한글 소설이 아니라는 견해도 있는데 왜 그런가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홍길동 전 이전에 설공찬전 이라는 책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문학자들은 "이문건의 설공찬전이 한글로 표기된 가장 오래된 소설이지만 창작소설이 아니고 한문소설을 번역해 한글로 표기한 것이기에 우리나라 최초의 한글소설로 인정하기가 어렵다"고 주장합니다. 그래서 홍길동전이 최초의 한글 소설이 맞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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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소설 중 작가가 알려진 한글 소설은 어떤 작품이 있나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작가가 확실 하게 알려진 한글소설은 17세기에 허균이 쓴 '홍길동전'을 비롯해 김만중이 쓴 '구운몽'과 '사씨남정기' 등이 있습니다. 여러 세대에 걸쳐 수많은 사람이 내용을 덧붙여 지은이를 정확하게 알 수 없는 '흥부전', '심청전', '춘향전' 등도 서민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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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가의 작사는 언제, 누가 했나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애국가 작곡은 안익태 선생이 하셨고 애국가 가사와 1940년 12월 20일 이후로 사용 중인 애국가 가사를 정립한 사람에 대한한 것은 확실한 것은 없으며 다만 민명환, 최병헌, 안창호, 김인식, 윤치호 중 함명 이거나 공동으로 작사하였을 가능성이 크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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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악의 친일파인 윤덕영이라는 인물은 어떠한 인물인가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윤덕영은 이완용 등 친일파 세력과 합세해 순종을 협박했고, 순종의 황후인 순정효황후가 옥새를 숨기자 억지로 빼앗아 한일합방조약을 체결하는데 일조했다고 합니다. 결국 윤덕영은 일제에 공을 인정받아 자작 작위를 받았는데 물론 엄청난 부를 축적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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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로마 신화는 역사인가요? 말 그대로 신화인가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어느 나라이던지 다 신화는 존재 합니다. 우리나라도 단군의 건국 신화가 존재 하고 일본도, 중국도 마찬 가지 입니다. 그 신화는 그 나라 사람들을 하나로 묵어 주고 또한 정신 적인 유대감을 심어 주기도 하고 다양한 역할을 합니다. 그것에 대한 사실 여부를 따지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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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역사 인물 중 가장 뛰어난 책사는 누구인가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아무래도 삼국시대 최고의 지략가로 말한다면 김유신이지 않을 까 합니다. 삼국 중에 가장 약했던 신라를 삼국 통일의 주역으로 만든 장본인 입니다. 그는 유명한 장군으로도 알려져 있지만 사실 아주 뛰어난 책략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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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라하다 라는 것이 바른말입니까?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좋아라.' 하며 먹었다.와 같은 표현이라면, 이대로 쓸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이를 '나는 좋아라 하며 먹었다.'와 같이 쓴다거나, '나는 무엇을 좋아하다'를 '나는 무엇을 좋아라 하다'와 같이 쓰는 것은 알맞지 않습니다. 즉 " 좋아라" 한다 는 직접 화법을 간접의 일부를 인용해서 쓸수는 있으나 그 자체로 쓸수는 없는 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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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때 양반들이 한글을 사용하지않은 이유가 뭘까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양반들의 특권 의식 때문 입니다. 조선 시대 양반들은 중국의 유학만이 유일한 학문 이라고 생각 했습니다. 그래서 한글을 아녀자들이 쓰는 것이라고 천시 하였고 그 것은 바로 양반들이 서울에서나 지방에서나 한글을 가르치는 서당을 개설하지 않은데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오직 한문만을 가르치는 서당만을 개설하였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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