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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녀림이나 처녀작처럼 처음 만들어진 것에 '처녀'가 붙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처녀라고 하는 단어는 처녀작(處女作)과 같이 처음, 최초라는 의미를 내기 위해 단어 앞에 붙이는 접두사 입니다. 처음이라는 개념을 여성의 성적 순결 연관 짓는 관행이 존재하는 영어권에서 처음을 나타낼 때 형용사 maiden, virgin을 앞에 썼다고 합니다. 그리고 일본인들이 이를 처녀로 번역하여 접두사로 쓰게 되었고, 이후 고스란히 한국에 이식된 단어 입니다.
학문 /
미술
23.0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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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꿈을 해석하는 학문은 언제부터 어떤이유에서 시작되었나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꿈을 해석 하는 것에 관한 것은 아마도 인류가 문명을 만들어 내기 시작한 3000-4000천경 부터 시작한것으로 보입니다. 꿈을 인간의 영적(靈的)인 활동의 산물이라고 믿었던 고대인들은 꿈이 미래에 전개될 어떤 사건의 전조라고 믿고, 그 꿈을 해석하여 미래의 일을 알아내고 길흉을 점치는 방법을 만들어내었다고 합니다. 꿈을 해석하는 것을 '해몽'이라고 하고, 꿈을 근거로 미래사를 점치는 것을 '몽점'이라고 합니다.
학문 /
역사
23.0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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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시대 기사분들은 시험을 통과해서 기사칭호를 얻는건가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유럽에서 기마로 싸우는 전사에게 주는 명예 칭호 및 그로부터 파생한 계급을 가리킵니다.. 기사는 분류상 귀족이지만 귀족 중에는 최하급 귀족에 속하며 준 귀족적인 성격을 띤다고 합니다. 우리가 흔히 부르는 귀족은 기사보다 상위의 귀족을 의미합니다. 오늘날에는 명예 칭호로 쓰이고 있다고 합니다. 기사는 하급 귀족이자 준귀족적인 계급이며 평민이 기사가 되는 일도 있었습니다. 기사는 기사가 되려면 7살부터 기사 훈련을 받아야 하며 14살이 되면 무기를 옮기거나 하는 심부름을 받게 된다. 20살이 되면 기사직위를 얻는데 보통 영주가나 왕이 칼로 어깨와 머리 위를 한번씩 대는 것이 기사가 되는 의식이라고 합니다. . 그러나 총과 대포가 등장하게 되면서 기사는 몰락했다고 합니다. 중세에 활동한 초기 기사들은 직업적인 기마전사들로서 일부는 영주에게서 봉토(封土)를 받고 군역(軍役)의무를 제공하던 봉신들이었으며 봉토를 받지 못한 기사들도 있었다고 합니다.
학문 /
역사
23.0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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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프시코드라는 악기는 무엇인가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피아노가 나오기 전 16~18세기에 가장 인기를 누린 건반 악기로 피아노의 전신 이라고도 부를 수 있을습니다. 독특하게도 이 악기는 피아노처럼 현을 때려 소리를 내지 않고,가죽으로 된 고리가 현을 튕기는 형식의 발현악기 입니다. 마치 기타나 하프같은 원리 입니다. 그래서 생긴건 피아노와 비슷하지만, 음색 조절 면에서는 불편한 편입니다. 하지만 소리는 굉장히 청아한 맛을 낸다고 합니다.
학문 /
음악
23.0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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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운의 사도세자의 아버지는 누구인가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 영조는 늦은 나이(42살)에 얻은 아들인 사도 세자한테 기대가 지나쳐서 감내하기 힘들 정도의 질책과 정신적 학대를 가했다고 합니다. 사도세자는 정신병을 얻어, 기행과 비행을 일삼다가 결국 비참하고 고통스럽게 죽음을 맞았다고 합니다. 사도 세자의 아버지는 영조 이며, 아들은 정조 입니다.
학문 /
역사
23.0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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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신료 후추의 역사는 어떻게 되나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유럽인들에게 후추는 일대의 혁명이자 맛의 신세계였다.후추가 유럽에 전해진 것은 대략 기원전 4세기경이다. 아라비아 상인들이 동방의 비밀스러운 곳에서 후추를 조달하여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 레바논의 베이루트에 후추를 가져다 놓으면 지중해 무역을 장악하던 이탈리아의 베네치아가 전유럽에 후추를 공급했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에는 고려시대로 추정되는데 고려 중엽에는 이미 우리나라에 알려져 있었고, 송나라와의 교역으로 도입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합니다. 실제로 신안 앞바다에서 인양한 원나라 때의 선박에서도 후추가 발견되었다고 합니다.또, 『고려사』에는 1389년(공양왕 1)에 유구(琉球)의 사신이 후추 300근을 가져왔다는 기록이 나온다고 합니다. 이것으로 미루어 고려 말에는 중국에서뿐만 아니라 남방에서도 직접 후추가 도입되었던 것으로 추측됩니다. 후추는 수입품이었기에 매우 귀중한 물품으로 취급되었다고 합니다. 『징비록(懲毖錄)』에 수록된 후추의 일화를 보더라도 우리나라 사람들이 얼마나 후추를 선호하였고 귀중히 여겼는지 알 수 있습니다.
학문 /
역사
23.0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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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의원 불체포특권은 실제 혐의가 들어난 경우에는 사용할수 없은것인가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국호 위원의 불체포 특권은 아무리 범죄 사실이 들어나도 회기 중에는 페표 구속을 할수 없다라는 것이지 면책 특권이 주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그리고 범죄 사실이 들어 나고 현행범일 경우에는 즉시 체포도 가능 합니다. 또한 설사 즉시 체포가 어렵다면 국회 체포 동의엔 과반의 출석과 과반의 찬성이 있으면 예외 적으로 체포 가능 합니다. 물론 우선 동료 의원을 향한 온정 주의가 앞서 부결되는 경우가 많기는 합니다.
학문 /
역사
23.0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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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이 서양 문물을 가장 빨리 받아들인 이유가 무엇인가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19세기 중반 무렵 서양 세력은 동아시아 세계를 유럽의 무역망, 자본주의 체제로 편입시키려고 했고 이러한 서양의 우세한 무력, 불평등한 조약, 질 높은 상품 등과 대응해 방어와 역전에 성공한 나라는 일본뿐이었 습니다. 1853년 미국 군함(흑선)이 에도에 가까운 우라가에 정박해 포함외교를 개시했고, 1854년에는 요코하마에서 ‘일·미 화친조약(가나가와 조약)’을 맺었다고 합니다.. 이어 1855년에는 러시아와 ‘일·러 화친조약’을 맺었고 사할린에 이미 진출한 러시아와는 1791년부터 지정학적으로 숙명적인 관계였다고 합니다., 1855년 10월에는 교관단이 입국해 조선술과 항해술을 가르쳤으며, 1857년 9월 발주했던 군함이 드디어 도착했다고 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1858년 7월 ‘미·일 수호 통상조약’을 맺었고, 네덜란드 러시아 영국 프랑스와도 연이어 조약을 맺었습니다. 이렇게 일본이 서양 문물을 빠르게 받아들인 이유는 이미 중국이 아편 전쟁으로 어떻게 몰락 해 가는 지를 자세히 알았고 대외 적으로 서양 문물을 받아 들이는 것이 중국과 조선의 영향력에서 벗어나 아시아의 패권 국가로 성장 할 수 있다는 것을 먼저 깨달아서 입니다.
학문 /
역사
23.0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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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공이산이라는 고사성어는 어디에서 유래하였나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우공이산 뜻 오늘의 사자성어 우공이산은 한자어로 愚 (어리석을 우), 公 (공경할 공), 移 (옮길 이), 山 (산 산)이라고 쓰는데, 그대로 우리말로 옮기자면 '어리석은 사람이 산을 옮긴다'정도로 쓸 수 있습니다. 북산에 어리석은 노인(우공)이 살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의 집 앞에는 태항산과 왕옥산이라는 커다란 산이 가로막고 있어서 다른 고장으로 다니기가 무척 불편했다고 합니다. 우공은 이미 나이 90세에 가까웠지만, 이 두 산을 옮겨서 산을 돌아서 가야 하는 불편을 덜고자 했다고 합니다. 자식들과 손자들은 모두 찬성하였다. 물론 처음에는 아내가 걱정이 되어 버력(파면서 나온 돌과 흙)을 어디에 버리냐면서 반대했지만, 남편이 고집을 꺾지 않고 자식들까지 찬성하면서 발해란 곳에 버리면 된다고 해서 어쩔 수 없이 찬성했다고 합니다. 결국 이렇게 어리석지만 뚝심있게 ㅅ작한 일이 결국 큰 산도 옮길 수 있다라는 교훈을 주는 성어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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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23.0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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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선대원군에서 대원군의 뜻이 무엇인가요? 직책인가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대원군이라는 칭호는 죽은 뒤에 격상된 것이 대부분이었다고 합니다. 정확히는 방계 중에서도 이미 사망한 왕족의 아들을 데려다 옹립했던 경우가 많았던 것입니다. 어찌보면 당연한 게, 그 사람이 살아있었으면 그 사람이 왕위를 이을 가능성이 자기 아들보다 더 높기 때문입니다. 물론 종법상 선왕의 아들 항렬이나 최소한 동생 뻘인 사람으로 대통을 잇는 게 맞기 때문에 선대왕이 집안 내에서 항렬이 낮거나 나이가 어린 채 승하하면 살아있는 대원군도 가능합니다. 흥선 대원군 이하응은 유일하게 살아 생전에 대원군이 되었으며, 고종 재위 초반에 직접 10년 간 섬정을 하면서 한국 근현대사에서 큰 비중을 차지합니다. 그래서 그냥 '대원군'이라고만 지칭하면 보통 흥선대원군을 가리키며 일반인들도 그를 떠올린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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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23.0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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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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