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맙습니다"와 "감사합니다"는 무슨차이가 있는가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두가지 차이점이 있습니다. 우선 '고맙습니다'는 '고맙다'의 활용형이고 '고맙다'의 어근은 '고마'입니다. 고마는 공경의 옛말로 순수 우리 고유어입니다. '감사합니다'는 한자어인 '감사 (感謝)'와 동사 '~하다'의 결합형 입니다. 다른 한가지는 고맙습니다는 보통 동년배나 아니면 아랫 사람에게 쓰는 뉘앙스이고 감사합니다는 자기 보다 위사람에게 쓰는 존대말의 뉘앙스를 가집니다. 예를 들어 회사에게 사장님이 선물을 주시면 고맙습니다 보다는 감사합니다 라고 하는 것이 왠지 더 맞는 느낌이 들고 같은 선물을 같은 직급의 다른 부서 사람이 주면 아무래도 고맙습니다가 더 잘 어울릴것 같은 느낌이 들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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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정래 작가의 대하소설들을 청소년들에게 권장할 수 있을까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조정래 작가의 소설이 사실 좀 표현이 그런 부분들이 있지요. 그래서 태백 산맥의 경우 청소년판이 별도로 10권으로 나와 있습니다. 참고 하시기 바랍니다. <태백 산맥 청소년판> 조정래 저자(글) · 김재홍 그림/만화 · 조호상엮음, 해냄 출판사 2016년 11월 0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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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의 언어가 외국어에 비해 그렇게 배우기 어려운가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한글이 외국인에게 어려운 이유를 몇 가지만 들어 볼게여. 우선 받침이 너무 많다는 것 입니다. 사실 받침은 한국인인 저도 많이 헷 갈립니다. " 물이 너무 맑다, 책을 읽는다, 닭이 알을 부화 했다.." 등등 받침을 정확하게 쓰고 읽는 것이 어렵지요. 또한 외국어에는 거의 없는 존대말도 한글 학습을 어렵게 합니다. " 식사 하셨습니까, 안녕히 주무셨어요? " 등등 존대말은 외국인에게 어려운 문제이구요. 마지막으로 수많은 형용사 입니다. 같은 색깔이라도 " 붉은 , 빨간, 불그스레한, 등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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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서는 술자리에서 자작을 왜 금기시할까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우리나라 주도에 의하면 서양과는 달리 다른 사람, 특히 윗사람하고 있을 때, 자작은 일반적으로 무례로 취급 받는다고 합니다. 여기에 대해서는 딱히 알려진 유래나 기원은 없으나 아마도 우리나라의 정서가 많이 반영 된것 같습니다. 즉 정을 중요시 여기는 우리 나라 문화에서 서로 술잔을 주거니 받거니 하는 문화가 비롯 된것으로 보입니다. 상대방이 바로 앞에 앚아 있는데 혼자서 술을 따라마시는 행위 자체가 상대방을 무시하는 느낌을 줄 수 있고 또한 정이 없게 느껴 질 수 있기 때문 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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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우리나라 사람들은 밥을 정말 많이 먹었다고 하던데요. 그렇다면 왕들은 몇끼나 먹은건가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총 5회에 걸쳐 식사를 했다고 합니다. 7시 이전인 이른 아침에 먹는 초조반은 보약을 먹지 않는 날에 유동식으로 죽, 응이 등으로 차려졌는데요. 아침 일찍 먹는 조반으로 초조반 또는 자릿조반이라고 불렀습니다. 아침 식사인 조반과 저녁 식사인 석반은 수라상으로 차려졌는데요. 낮것상이라고 해서 지금은 점심밥을 식사처럼 챙겨 먹지만,조선 시대 왕족들은 아침과 저녁 사이에 간단하게 먹는 간식상으로 차려졌다고 합니다. 그리고 마지막 5찬은 야찬 인데여. 조선 시대 임금은 밤늦게까지 업무를 보는 경우가 많았어요. 야참으로는 주로 면, 약식, 식혜, 우유죽 등 간단하게 먹을 수 있는 음식으로 차려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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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연대표를 쉽게 이해하는 법이 있을까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연대표나 아니면 어떤 특정한 년도를 외우기 위해서는 연상 기법을 사용하면 절대 잊어 버리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가 일본에 강제 합병된 시기는 1910년 입니다. 그리고 3.1운동이 일어난 해는 1919년 입니다. 이것을 종합적으로 외우려면 나라가 일본에게 넘어가서 " 아이구(19) 아이구(19)" 사람들이 목놓아 통곡했다. 정도로 연상해서 외우면 자연스럽게 1910년 이란 시간이 외워 지지요. 또한 임진왜란은 1592년에 일어 났는데 이것도 " 일이(1)나서 드디어 왜구(59)가 오구양(2) 말았네" 정도로 외우면 1592가 자연스럽게 외워 집니다. 제가 드리는 예시는 저 나름대로 방법 이니까 자제 분도 본인만의 방법으로 연상 기법으로 연대기를 외우면 쉬울것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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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우 그룹은 어쩌다가 사라졌는지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한때 재계 서열 2위 였던 대우그룹의 세계 경영은 공산권 국가나 아프리카, 동남아시아 등 저개발 국가가 대상이었습니다. 사업 초기 많은 자본이 들어갔지만 단기간에 이익을 내기 어려웠지요. 업계에 따르면 대우그룹이 몰락하기 전까지 돈을 제대로 버는 해외사업장은 거의 없었을 정도였다고 합니다. 대우그룹은 투자금 확보를 위해 1990년대 중반 이후 채권 발행을 늘렸고 결국 부채비율이 높아지기 시작했습니다. 1997년 말 한국에 외환위기가 터지면서 금리가 연 30% 가까이 뛰어오르자 차입경영을 지속해왔던 대우그룹의 이자 부담은 눈덩이처럼 커지기 시작했고 달러당 원화 환율이 2000원까지 급등한 것도 해외 채무가 많았던 대우그룹 입장에서는 악재였다고 합니다. 외환위기와 함께 국내 대기업의 연쇄부도가 이어지가 금융권이 대출금 회수를 서두르기 시작하면서 대우그룹의 경영난은 급속도로 악화됐고 결국 대우의 부채 60조원이 금융권 부실로 남으면서 금융권 구조조정, 협력 업체의 연쇄도산을 일으켰습니다. 이를 수습하기 위해 공적자금 30조원이 투입되기도 했고 김우중 전 회장이 자진 퇴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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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추필법이란 무엇을 의미하나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춘추필법(春秋筆法)은 『춘추』에서 비롯된 동양의 역사서술 수사법 입니다. 춘추필법에서는 사건과 인물에 대한 정확한 묘사와 평가보다, 수사법 자체에서 비롯되는 일종의 완곡어법으로 평가를 대신한다. 예컨대 부정적으로 평가되는 사람은 실제보다 작위를 깎아서 기록하는 등의 방식이 그러합니다.≪춘추春秋≫는 공자孔子가 지은 역사서입니다. ‘춘추’란 말 자체가 역사를 뜻하는 일반명사 이지요<춘추>는 표현이 추상적이고 간략하여, 별도의 부연 설명이 필요 하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에서 이러한 춘추 필법에 의한 역사서는 김종직(金宗直)의 ‘조의제문(弔義帝文)’이 대표적인데 신하인 수양대군이 임금인 단종을 시해(弑害)했음을 춘추필법으로 기록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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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초기 이종무 장군이 대마도 정벌을 할 당시에 어떤 계기로 정벌을 하게 되었는지 그 역사적 배경이 궁금합니다.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왜구는 13세기부터 16세기에 걸쳐 한반도와 중국 연안에서 활동한 일본인의 해적 집단을 총칭하는 것으로서, 여말선초 약 70년간 우리 나라 연안 각지에 침입하였다고 합니다. 특히 고려 말의 약 40년간은 왜구가 창궐해 피해가 극심하였고 이에 고려는 사절 파견, 성보(城堡) 수축, 수군 증강, 화기 개발 등의 왜구의 근절책을 세웠으나 끝내 성공하지 못하였다고 합니다.조선이 건국 되면서 유화책을 써도 왜구의 침입이 계속되자 세종 대왕은 그들의 근거지인 대마도를 이종무 장군등을 통해 정벌하게 된 것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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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균장군은 정말 무능력한 사람이었나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한 개인의 역사는 시간이 갈수록 후대의 사람들에 의해 때론 각색되고 때로는 윤색되기 마련입니다. 특히 한 사람이 정말 영웅이되려면 당연히 그와 의견을 달라하는 사람은 역적이 되야 합니다. 어떤 사람은 사실보다 훨씬 더 부풀려지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사실보다도 형편없이 축소되기도 한다. 여기에서 원균은 후자에 속하는 편 입니다. 이순신은 ‘천하의 용장’이요 상대역인 원균은 ‘무능한 겁쟁이에다 모함꾼’이라고 알려져 있지만 사실 두 사람의 골이 깊게 만든 빌미를 제공한 것은 이순신 장군의 옥포 해전의 장계 때문입니다. 이 전투는 이순신과 원균의 수군이 합동으로 참가하여 승리한 것으로 이순신과 원균은 서로 공을 탐하지 않고 장계를 올릴 때 협의하기로 했음에도 불구하고 이순신이 이를 어기고 단독으로 장계를 올린 것이지요. 결과적으로 이순신을 비롯하여 부하들은 모두 상을 받았지만 원균과 함께 싸운 장병들은 어떠한 포상도 받지 못했다고 합니다. 원균으로서는 약간은 서운한 부분도 없지 않았을 것 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장수로서 최후를 맞기 까지 용감하게 싸우다 전사한 것으로 봐서는 우리가 알듯이 겁장이나 비겁한 인물은 아니라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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