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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렐 페인터는 구매해서 사용하는게 낫나요?비싸도..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코렐 페인터는 유료이고 30일 한정판 밖에 무료가 안됩니다. 포토샵이 기존에 깔려 있으면 굳이 코렐 구매 안해도 도겠지만 혻 그림 관련 일을 하시면 구매 하셔도 되겠지요.
학문 /
미술
23.0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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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일전쟁의 배경이 궁금합니다.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청일전쟁은 동아시아의 패권을 둘러싼 청과 일본 사이의 결전이었습니다. 이 전쟁은 1894년(고종 31)에 일어났지만 그 불씨는 10년 전에 이미 싹트고 있었지요. 두 나라는 갑신정변 당시에도 경미한 수준이기는 하지만 이미 한 차례 군사적으로 충돌한 적이 있습니다. 갑신정변은 한편으로는 조선의 정쟁이었지만 청일 양국 간의 세력 다툼이라는 성격도 아울러 가지고 있었습니다. 청은 조선을 중화제국을 지키는 울타리(藩邦)로 여긴 반면에 일본은 조선을 대륙침략을 위한 교두보로 삼았습니다. 따라서 양국의 충돌은 필연이었지요. 당시 중화제국 질서는 안팎으로부터 도전받고 있었다고 합니다. 남쪽에서는 프랑스가 베트남을 침략하여 종주국을 자처하던 청국 전쟁을 벌이고 있었습니다. 일본이 갑신정변 당시 개화당과 손을 잡은 것도 청이 청불전쟁 때문에 조선에서 적극적으로 나서기 어려울 것이라 판단했기 때문이었습니다.
학문 /
역사
23.0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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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 무신정권 몰락이후 실권을 잡은 세력들은 어느 세력들이 있었을까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무신 정권은 1대 이의방에 의해서 시작 되어 11대 임유무에서 종결 됩니다. 1대 연립정권 - 이의방 (1170 ~ 1174) 4년2대 연립정권 - 정중부 (1174 ~ 1179) 5년3대 - 경대승 (1179 ~ 1183) 4년4대 - 이의민 (1183 ~ 1196) 13년5대 - 최충헌 (1196 ~ 1219) 23년6대 - 최우 (1219 ~ 1249) 30년7대 - 최항 (1249 ~ 1257) 8년8대 - 최의 (1257 ~ 1258) 1년9대 - 김준 (1258 ~ 1268) 10년10대 - 임연 (1268 ~ 1270) 2년11대 - 임유무 (1270 ~ 1270) 3개월
학문 /
역사
23.0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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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의 수학자 '카르다노'는 도박중독자 아닐까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네 그는 도박 중독 자 였습니다. 지롤라모 카르다노는 사생아로 태어났으며 그의 아버지는 변호사로 활동했었다.지롤라모는 커서 대학에 입학해 의학과 약학을 전공하여 의사가 됩니다. 그러나 천재성을 주체하지 못했는지 다방면으로 많은 업적을 남겼다고 합니다. 하지만 호전적이고 거칠었던 성격 탓인지 친구는 거의 없었으며 의사가 되어서도 그의 인간관계는 변함이 없었고 그는 당시 유럽에서 알아주던 의사이자, 파비아대학교의 의학 교수로 재직했다고 합니다. 도박중독자였는데 아무리 수학적 확률을 동원해도 도박으로 돈을 딸 수는 없었다는 것을 자각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도박꾼이 가장 이득을 많이 보려면 도박을 하지 말아야 한다'라는 말을 남기기도 했구요. 그러나 실제로 카르다노 자신은 여느 도박 중독자들처럼 도박을 끊지 못하여 일상생활을 망쳤으며, 말년에는 예수를 점성술과 엮다가 투옥되기도 했다고 합니다.
학문 /
문학
23.0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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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이 타국가와는 달리 금리를 인상하지않는 자신감은 어디에서 나오는건가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경제·금융 전문가입니다. 일본은 아직 일본의 경제가 디플레이션의 위치에 있다고 생각 합니다. 약간은 최근에 오른다고 하지만 일본은행 총재는 이런 물가 상승이 충분치 않다고 본다고 합니다. 일본은 1990년대 초반 0%대 경제 성장률을 기록하기 시작해 최근까지도 경기 둔화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런 장기 저성장 국면을 두고 '잃어버린 30년'이라 표현했지요. 최근 그나마 물가가 오른다지만 일시적이며 임금을 밀어 올리지 못했기 때문에 완화 정책 철회는 아직 시기상조라는 게 그들의 생각 입니다. 그는 최근에도 "당분간 금리 인상은 없다"고 잘라 말했다고 합니다. 그럴수록 앤화 가치는 점점 더 떨어져 이제는 1달러당 100앤 아니라 150앤 정도를 한다고 합니다.
경제 /
예금·적금
23.0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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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옥천에는 정지용 시인이. 태어 났습니다. 옥천에 문인은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역사적인 인물 부터 말씀 드리면 조선초기 문신으로 1456년 성삼문, 박팽년 등과 단종복위를 계획하다 주살당했던 사육신 김문기(1399 ~ 1456) 선생과 ‘짝짜꿍’과 ‘졸업식 노래’등을 작곡한 동요작가 정순철님(鄭淳哲· 1901~ ) 언론인 송건호(宋建鎬·1927 ~ 2001) 씨 등이 옥천 출신 문인입니다.
학문 /
미술
23.0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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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4.3사건과 광주 5.18운동은 어떤 관련이 있나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제주4.3과 광주5.18은 둘다 민족적 비극이라는 점에서는 비슷하지만 시대적 배경등에서는 차이가 있습니다.정치사적으로 4.3은 일본제국 패망으로 자주독립 열기가 뜨겁던 해방정국에서 남북분단이 고착화되고 대한민국 정부가 탄생하는 과정에서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5.18은 박정희 유신독재 붕괴로 민주화 열망이 뜨겁던 1980년 5월 전두환 신군부 독재정권이 탄생하는 과정에서 일어났습니다. 4.3은 1947년 3월1일 완전한 통일독립을 이루자는 시위에서 시작해 1957년 4월2일 마지막 유격대원이 생포될 때까지 10년간 지속됐습니다. 그리고 5.18은 1980년 5월17일 신군부의 계엄확대에 대한 저항에서 시작해 5월27일 계엄군의 진압으로 10여일 만에 종료됐습니다. 이외에도 사망자, 행불자, 부상자, 유족 등의 규모에서도 두 사건은 상당한 차이가 있습니다.
학문 /
역사
23.0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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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주의와 개인주의의 차이는 무엇일까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는가 아닌가가 개인주의와 이기주의의 차이점 입니다. 개인주의자는 쓰레기를 함부로 버리지 않습니다. 쓰레기를 아무데나 버리는 행위는 환경미화원이라는 또 다른 개인에게 고통을 주는 행위이기 때문입니다. 또 개인주의자는 공공장소에서 무례하게 행동하지 않습니다. 소음이나 청결에 있어 다른 사람,개인에게 해가 되지 않도록 신경을 쓴다는 것이지요. "내가 당하기 싫은 일은 타인에게도 행하지 않는다." 이 말은 개인주의자에게 합당하 말 입니다. 이기주의란 반대로 나 편하자고 쓰레기 막 버리고, 카페에서 고성방가에 쩐내 풍기고, 수업 끝나고 은밀히 교수 찾아가 일대 일로 질문하는 부류들을 이기주의자라고 하는 것입니다.
학문 /
철학
23.0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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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 글쓰는 사람은 술을 잘마시는것 같은데 왜 그런가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작가들이 술을 좋아하는 진정한 이유는 아마도 술은 창작에 영감을 불어넣어주는 묘약같은 역할을 해주기 때문 일수 있습니다.극작가 테네시 윌리엄스의 희곡 《뜨거운 양철 지붕 위의 고양이》에는 이런 표현이 나온다고 합니다. “에코 스프링(Echo Spring)으로 짧은 여행을 다녀오려고요.” 에코 스프링은 버번위스키 브랜드명에서 따온 단어로 작은 술장의 별칭으로 사용된다고 합니다. 상징적인 표현으로도 쓰입니다. 술을 마시며 잠시나마 골치 아픈 생각을 잊고 고요하면서도 몽롱한 상태에 빠지는 것을 의미한다고 합니다. 저자는 “작가들은 치열한 ‘창작의 고통’ 속에서 술을 통해 에코 스프링과 같은 작은 위안을 얻었다”고 설명합니다.
학문 /
음악
23.0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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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 당시 명나라가 조선을 도와주러 와서 소극적으로 대처했던 이유는 무엇인지 역사적 이유가 궁금합니다.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결론만 먼저 예기 하면 명군은 그럭저럭 제 역할을 해냈으며, 7년동안 각지에서 명군과 조선군이 연합해서 많은 전투에서 활약했고 절대 소극적으로 한 것만은 아닙니다. 명군의 참전으로 인해 조선군의 사기는 크게 올라갔다고 하고 .더불어 명군이 대규모의 육군을 파병하게 되면서 조선은 그때까지 유지하던 군인들을 고향에 돌려보내며 숫자를 줄이게 된다고 합니다. 한때 17만에 육박했던 조선군은 명군의 참전이후 크게 줄어든다고 합니다.따지고 보면 임진왜란 당시의 명군은 후반의 조선 조정의 주요 딜탱 역할을 수행한 셈이고, 조선의 수군, 근왕병, 의병이 서폿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정유재란 즈음에는 숫적으로 명군이 주력이 되었다고 합니다. 임진왜란 당시에 조선군은 최대 17만, 명군은 약 5만이었지만 정유재란 당시에 조선군은 약 3만, 명군은 최대 11만에 달했다고 합니다. 남의 나라 전쟁에 명군이 그정도로 활약을 해준 것은 그래도 고마운 일이 였지요.
학문 /
역사
23.0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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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3
1874
1875
1876
1877
1878
1879
1880
188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