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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퇴한 사용자
탈퇴한 사용자23.04.10

조선시대 서얼이라는 신분에 대해 궁금증이 생겼습니다.

홍길동이라는 인물이 서얼이라는 계급이어서 아버지를 아버지라고 부르지 못했다고 나와있는데

서얼이라는 계급은 구체적으로 어떤 대우를 받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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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의 개수5개의 답변이 있어요!
  • 무거운도라지볶음
    무거운도라지볶음23.04.10

    안녕하세요. 황정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서얼은 양반과 첩의 사이에서 나온 자식을 말합니다.

    서얼도 원칙상으로는 양반이므로 가문의 대를 잇거나 하지 못할 뿐이지 천한 취급을 받았던 것은 아닙니다.


  •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양반의 자손 중 정실 소생이 아닌 첩이 낳은 자식을 뜻하며, 매우 애매한 위치에 있는 존재이라고 합니다. 신분은 천할 수도 있으나 이들은 양반들이 가진 특권의 적용 대상으로 양반들을 제외하면 일반적으로 천한 취급을 받는 일이 없었다고 합니다. 양인 첩에서 태어난 아들을 서자(庶子), 딸을 서녀(庶女), 천민 첩 사이에 태어난 아들을 얼자(孼子), 딸을 얼녀(孽女)라고 합니다.


  • 안녕하세요. 강요셉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서얼이란 통상 첩이 낳은 자식과 그 자손을 이르는 말로 양인 신분인 첩 과의 사이에서 태어난 자식을 서자, 노비 신분인 첩과의 사이에서 태어난 자식을 얼자로 구별하여 불렀습니다. 서얼은 부친은 양반 사족의 혈통이나 모친이 양인 및 노비신분의 첩이었기에 부친과 달리 양반 사족으로서의 지위를 누리지 못하는 특수 신분층이었습니다. 고려시대에는 처나 첩을 여러명 두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적서간의 차별이 두드러지지 않았지만 조선시대는 주자성리학이 국가 및 사회 통치 운영 이념으로 자리잡게 됨에 따라 조선왕조의 지배계급인 양반 사족은 자신들과 혈통상 귀천의 차이가 있는서얼의 관직 등용에 제안을 두기 시작 했습니다. 서얼은 첩의 소생이란 이유로 국가로부터 여러 제약을 받았는데 그 대표적인 제약이 '서얼금고법' 이라하여 관직에 나가지 못하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또한 재산상속 있어서도 서얼은 본처 소생인 적손보다 적게 물려받는 차별대우를 받았지만 조선 중기 이후 서얼에 대한 제약이 완화되어 과거 응시를 허용하게 되었고 이후에도 여러 차례 차별 완화조치가 시행되었습니다. 결국 1894년 (고종 31년) 갑오개혁 때 적서에 대한 차별이 법제상 완전히 폐지 되었다고 합니다.


  • 안녕하세요. 최은서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서얼은 첩의 자식인 서자와 얼자를 뜻하며 첩의 신분이 양인이면 서자가 되고, 첩의 신분이 천인이면 얼자가 됩니다.

    서얼은 양반의 소생이면서도 성리학적 명분론에 의해 적통이 아니었기 때문에 가족과 사회에서 차별대우를 받았고 문과 응시가 금지되고 양반 계층에 속하지 못하였으며 중인의 대우를 받았습니다.

    서얼은 중인과 같은 신분적 처우를 받아 서얼을 중서라고 부르기도했고 서얼은 경국대전에 따라 문과에 응시할 자격을 박탈당했습니다.


  • 안녕하세요. 엄재희 인문·예술 전문가입니다.

    서얼이란 양반의 자손 가운데 첩의 소생을 이르는 말입니다 서얼은 가정에서도 천하게 여겨 재산상속권이 없었고 관직에 등용되기도 어려웠습니다

    조선시대의 서얼은 문과나 생원, 진사시에 응시하지 못하도록 하여 과거에 응시할 자격을 박탈하였습니다

    1777년 정조가 서얼들이 관직에 오를 수 있는 길을 넓히고 이덕무, 유득공, 박제가 등의 학식 있는 서얼 출신들을 임명하였습니다

    1894년(고종 31) 갑오개혁 때 완전히 폐지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