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변 사람이 계속 금 산다고 그러는데
안녕하세요. 손용준 경제·금융 전문가입니다. 금 가격은 경기 침체가 지속 되거나 혹은 은행 금리가 줄어 들수록 더 오릅니다. 그래서 지금 당장은 금 값이 오를수 도 있지만 차라리 금 보다는 안정적인 주식이나 다른 투자 방법을 추천 드립니다. 아직 까지 최악의 경기 침체가 온 것도 아니고 경기는 점점 더 회복 되는 추세이기도 하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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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돼지 저금통?에 동전을 모으잖아요..그걸 한통 찰라면 1년이 넘게 걸리거든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경제·금융 전문가입니다. 1년에 한번씩 저금을 하는게 좋을 지 아니면 3개월 정도에 한번씩 저금을 해야 조을 지를 물어 보시는 질문 인것 같은데요. 제 생각에는 2-3개월에 한번 씩 중간 중간에 저금을 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는 생각 입니다. 그 이유는 은행 금리가 4% 정도 인데요. 이 이율이 계속해서 유지 된다는 보장이 없습니다. 더 낮아질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중간 정산을 하는게 이득이 되지 않을 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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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민정음 반대한 사람은 최만리 인가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집현전 학사 중에 최만리만 한글 창제에 반대해 상소를 올린 것이 아니라 최만리와 그의 학사 7명이 반대 상소를 올린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즉, 당시의 식자층이라고 할수 있는 유학자들은 대부분 한글 창제에 대해서 대부분 불편한 시선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 만큼 중국에 대한 사대 정신이 강했던 사람들이고 중국의 한자를 배우고 익히는 것만이 선비의 길이라고 철저하게 믿었던 사람들 이였기 때문 입니다. 그래서 더더욱 세종은 외로운 싸움을 혼자 해야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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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의 창조론의 뒷바침되는 논리는 무엇일까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창조론의 눈에 보이는 증거로는 박테리아 입니다. 박테리아가 항생제에 살아남기 위해 변이하는 과정 역시 진화론으로 설명할 수 없는 사례로 꼽혔다. 박테리아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항생제의 작용을 막기 위한 특수 아미노산 실타래를 만들어내야 한다고 합니다. 이 실타래 모양이 정확히 만들어져야 항생제를 무력화시킬 수 있다고 합니다. 생화학연구소 분자생물학자들이 계산한 결과 정확한 실타래가 만들어질 확률은 '10000…0(0이 77개)분의 1'이라고 합니다. 진화나 돌연변이로 이런 극소수의 가능성이 현실화 되리라 믿기 힘들다고 하지요. 사전에 치밀하게 디자인되지 않고는 불가능하다는 논리입니다. 무엇보다도 창조론의 가장 큰 증거는 성경 입니다. 성경의 내용이 바로 창조론의 증거라고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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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투와 말씨는 비슷한것 같지만 쓰임새가 다른것 같은데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둘 다 거의 비슷한 의미 입니다. 하지만 차이점이 있다면 말씨는 약간 존대말에 가깝고 말투는 어감 상 약간 반말에 가까운 뉘앙스를 풍깁니다. 말씨: 말하는 태도나 버릇 예)말씨가 공손하다 말투:말을 하는 버릇이나 본새. 예)빈정거리는 말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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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우금령이 반포된 이유가 궁금합니다.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조선의 근본은 농업 이였습니다. 농업국가 조선은 농업 생산력의 핵심인 농우를 지켜야 했지만 소고기의 유혹적인 맛은 범법자를 양산했다고 합니다. 우금령을 어기고 몰래 소를 도축한 이들은 엄하게 처벌했는데요. 태조는 우금령을 범한 자를 태형에 처해 도성 밖으로 쫓아냈다고 합니다. 이후의 국왕들도 엄벌을 지속했다고 하는데 관리라면 파직되거나 변방으로 내쫓겼고 백성들은 태형을 맞고 투옥됐다고 합니다. 조선 개국 초 3만 마리에 불과하던 소 사육 두수가 17세기 후반 이미 100만 마리를 넘어서는 등 농우 외에 육우의 지속적 증가 덕분에 조선말에는 명절이면 소고기를 먹을 수 있게 되었지요.조선 우금령의 역사는 탐식의 욕망이 법의 금지를 이겨낸 사례라고 볼수 있으며 1대 국왕 태조로부터 23대 국왕 순조에 이르기까지 22회 발령됐다고 기록된 바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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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최부자집이 부자가 될 수 있었던 이유가 뭔가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조선조 최진립이 가문인 경주 최씨 가문이 17세기 초반부터 20세기 중반까지 약 300년 간 부를 이어온 것을 의미한다고 합니다. 12대로 대대손손 가훈을 지켜가며 부를 쌓았고, 나그네나 거지들 에게 돈을 나누어 주고 밥을 먹여주는 좋은 선행을 했다고 전해 집니다. 경주최씨 집안은 장사를 해서 부를 쌓은 게 아니라 땅이 만석이 넘는 부자 였습니다. 경주에서 12대 동안 만석꾼을 배출한 집이지요. 현재의 최부자댁은 교촌마을에서 5대 동안 정착하였지만, 최언경(1743~1840)이 1700년대 이곳에 터를 잡기 전에는 경주 최씨 파시조인 최진립 때부터 경주시 내남면 게무덤에 터를 잡고 7대까지 살았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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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에는 왜 불교를 멸시하였을까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유교를 정치이념으로 삼아 불교를 배척했던 조선 시대의 불교는 극심한 억압과 핍박 속에서 어렵게 그 명맥을 유지해 나갔습니다. 숭유억불(崇儒抑佛)의 이념은 이성계를 도와 조선을 건국했던 신진 사대부들에 의해 건국 초부터 줄기차게 제기되었습니다. 그러나 태조(太祖)는 국가 창업 초부터 불교를 배척할 수 없다 하여 조정 유생들의 뜻에 따르지 않았다. 그는 무학 자초(無學自招)대사를 왕사로 삼았을 정도로 불교 신자 였습니다. 그러니 정치적으로는 불교를 배척 하면서도 개인적으로는 왕실이나 양반들도 불교를 추앙 했다고 볼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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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은 언제부터 입헌군주제 체제가 되었나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근대 입헌군주제는 17세기 영국이 최초이며 권리장전을 통해 확립되었다. 한편 유럽 대륙에서는 폴란드-리투아니아가 1791년에 유럽 대륙 최초의 헌법을 가결시키며 입헌군주제가 도입됐다고 합니다. 행정부 수반인 총리와 그 내각이 입법부인 의회의 동의를 거치는 헌법상 절차를 거쳐 결정을 하면 왕에 요청하고 왕이 형식적인 명령을 내리는 절차로 이루어 지기에 사실상 통수권자는 왕이지만 실질적인 권한은 총리와 내각에게 있다고 할 수 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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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는 언제부터 성씨가 생겨났었나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우리의 성씨는 대부분 중국식을 모방한 한자 성으로 그 역사는 삼국시대 말기로 거슬러 올라간다고 합니다. 당시는 이전부터 사용하던 고유의 성을 한성화(漢姓化)한 왕실과 성을 왕으로부터 부여 받은 귀족에게만 국한되어 쓰였기에 일반 백성들은 성이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고려 때부터 본격적인 한국 성씨의 역사가 시작된다고 합니다. 본관이 처음으로 도입되고 중국식의 한 글자로 된 단성이 본격적으로 유행하여 '본관 + 단성'의 형태가 주류가 되고 특히 1055년 고려 문종 9년에도 아직 성씨가 없는 귀족층이 많았는데 성씨 사용을 추진하기 위해 성씨가 없는 사람은 과거에 합격하지 못하는 봉미제도(封彌制度)가 시행되었는데 봉미제도가 시작되고 나서부터 모든 귀족층들은 중국 성씨를 빌려다가 족보를 만들기 시작하였는데 족보가 오래될수록 권위가 높아지는 시대였고 그 권위가 과거 합격에 영향을 주었기 때문에 사서 등 옛 서적에 존재하는 중국 성씨와 자신들과 관련이 없는 중국 인물들을 가져다 족보를 만들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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