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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태지와 아이들이 대중문화사에 끼친 영향은 무엇인가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지금의 40대 들에게는 아마 서태지와 아이들에 해당하는 세대일것 입니다. 서태지와 아이들은 ‘난 알아요’로 20세기 한국 대중음악의 마지막 10년을 열었는데여. 조용필을 뛰어넘는 ‘문화 대통령’의 칭호를 얻었으며, 당시 ‘을’의 지위였던 가수의 위상을 ‘갑’으로 올려놓았던 주축이 바로 서태지였지요.주류 핵심에서도 교육 문제, 통일 담론 등 중요한 이슈를 던졌으며 마지막 앨범에 담긴 ‘시대유감’으로 정태춘이 오랫동안 이끌어오던 가요 사전심의제 철폐에 결정적 역할을 했고 한국어로 자연스러운 랩이 가능하다는 걸 증명함으로써 단숨에 랩을 가요의 일부로 장착시켰아며 메탈과 얼터너티브 록, 갱스터 랩과 테크노 같은 최신 팝 장르와 한국 대중음악의 시제 일치를 이뤄냈습니다. 무엇보다 현란한 댄스와 컬러풀한 의상, 자유로운 언행은 방송의 색감과 카메라 워킹을 완전히 바꿔놓았고 댄스 음악의 시대를 위한 초석을 깔아 놓은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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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1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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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밍웨이가 낚시광인 자신의 자전적 소설이 노인과 바다인데?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말씀하신 내용중에 카스트로가 헤밍웨이가 우승했다고 낚시대회를 취소한건 사실이 아닌거 같습니다. 1950년 당시 쿠바에 머물고 있던 헤밍웨이가 쿠바를 찾은 부자 친구들과 놀이로 만든 것이 낚시대회의 시작이되었지요. 낚시광인 헤밍웨이의 이름을 따서 대회 이름도 지었구요. 헤밍웨이는 그 해 대회를 비롯해 3년 연속 우승컵을 가져갔고 잠시 미국으로 옮겨갔다가 1960년 다시 쿠바로 돌아온 그는 이듬해에도 참가해 상을 탔습니다.1960년 제 10회 대회에는 헤밍웨이의 초대를 받아 쿠바의 혁명 지도자 피델 카스트로와 체 게바라도 참여했습니다. 즉 헤밍웨이가 낚시 초짜 였던 카스트로를 초대한것이고 그는 전에 한번도 낚시를 해보지 못한 신참이었지만 당시 우승했다고 합니다. 헤밍웨이가 카스트로에게 직접 트로피를 전달하던 때가 두 사람이 유일하게 얼굴을 마주한 순간이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 대회는 70년이 넘은 지금도 계속 헤밍대회 낚시대회로 쿠바에서 계속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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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22.1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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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인기가수들은 어린나이부터 시작하나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인가가수가 되기 위한 나아조건은 없습니다. 아이돌의 경우 어린 나이에 시작하면 좋을수도 있겠지만 그런경우 학업에 방해가 되어 오히려 남들 다 아는 상식조차도 모르는 경우도 생깁니다. 그러니 꼭 나이가 어릴수록 좋은 건 아니지요. 요즘 핫한 트로트 나 힙합 가수들 중에는 30살이 넘어서 데뷔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중요한 건 열정이지 나이가 아나라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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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22.1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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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세계대전 미국 소련 일본 독일 병력이 얼마나 됬나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2차대전 당시 독일 육군 보병 약 1,500만명 , 일본 약 500만명 , 소련군 500만명, 미군은 약 1200만명 정도의 육군을 보유 했었다고 하네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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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1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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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컵 명장면 어떤거 뽑으세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이번 월드컵에서 가장 명장면은 한국과 포르투갈 전에서 마스크를 쓰고 손흥민 선수가 50미터를 질주해 수비수 4명을 따돌리고 드리볼하고가다가 패스해 황희찬 선수가 득점한 장면이 가장 인상 깊은 장면이 아닐까 나름대로 생각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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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22.1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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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장 풍습이 실존 했었는지 궁금합니다.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불교국가(佛國)임을 자처하는 고려시대에서 아들이 부모를 늙었다고 해서 생매장하는 풍습이 생겨났다고 유추하기는 매우 어렵습니다. 고려, 조선의 고문헌을 통틀어 고려장 풍습을 기록한 문헌이 하나도 없다는 것이 이를 증명합나다. 조선말 일부 외국인이 이를 언급한 사례가 있다 치더라도 고금의 문헌을 인용하지 않은 채 설화정도를 사실인양 기록하여 기정사실화 하는 것은 신빙성이 없습니다.. 모름지기 역사라는 것이 아무런 증거도 없이 떠도는 이야기나 관념적인 것을 인위적으로 기술하는 것은 사료로서 가치가 적다할수 있을 것입니다. 고려장 이야기는 일제가 조작했을 가능성이 매우 큽니다. 일제 강점기 초기에는 개성 등 고도에 고려 무덤이 매우 많았는데 도굴에 미친 된 일인들은 고려무덤을 마구 파헤치고 여기서 숟가락이나 밥그릇 등이 나오자 생매장 풍습 운운하며 고래로 한국이 가난했다는 점을 의도적으로 퍼뜨리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지배작입니다. 무덤에서 주방그릇이 나오는 것은 고려시대의 무덤뿐만 아니라 예전에 죽은 사람의 물건을 무덤에.같이 넣는 것은 일반적인 풍습이였지요. 결론은 고려장이라는 말은 역사적인.기록이 전혀 없는 말이라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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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1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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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산리 전투와 봉오동전투가 일어난 이유가 정확히 무엇인가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1919년 3.1 운동이 일어난 이후 만주에서의 독립 투쟁은 더욱 활발해졌고 이에 일제의 대만주 독립운동 탄압도 점차 강경해져 갔고 이 과정에서 1920년 6월 봉오동 전투에서 독립군과 교전한 일제는 마침내 간도지역 불령선인 초토계획을 세워 간도지역에 대한 초토화작전을 계획하게됩니다. 따라서 일본은 19사단 병력과 시베리아 파견군 28여단, 그리고 관동군 부대를 동원하고, 산포, 비행기 등의 무장을 보강하며 훈춘-경원에 전산선을 설치하는등 만반의 준비를 갖추었고 이후 일본군은 19사단 예하 병력을(73연대, 74연대, 27기병연대) 히가시 마사히코 소장 하에 병력을 동원하여 청산리의 독립군을 포위 섬멸하려고 하였습니다. 1920년 10월 21일부터 시작된 청산리대첩에서 독립군은 26일 새벽까지 10여 회의 전투를 벌인 끝에 적의 연대장을 포함한 1,200여 명을 사살하였고, 독립군측은 전사자 100여 명을 내었다.청산리대첩은 독립군이 일본군의 간도 출병 후 그들과 대결한 전투 중 가장 큰 규모였으며, 독립군이 최대의 전과를 거둔 가장 빛나는 승리였다고 할수 있지요.. 이 전투에 참가한 주력부대의 하나인 북로군정서군의 병력은 그 해에 사관연성소를 졸업한 298명을 포함해 약 1,600명이었고, 무기는 소총 1,300정, 권총 150정, 기관총 7문을 갖추고 있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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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1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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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에도 휠체어가 존재 했나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휠체어 자체가 세계적으로 처음 발명된것이 독일애서 약 100년전이고 조선시대에는 비슷한 제품도 없었습니다. 그냥 부축을 받거나 업고 다니고 혹은 지팡이를 집고 다니었지요. 조선시대에는 장애인들에게 굉장히 불편했던 사회였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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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1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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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자식 불알잡는다는 말이 무슨 뜻인가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죽은 자식 불알 만진다는 것은 엎질러진 물은 줏어 담을 수 없다는 것을 의미 합니다. 안타 깝지만 사람이 죽으면 그 사람의 가장 민감한 부분인 불알을 만져도 아무런 반응이 없는 것이지요. 그래서 이런 표현이 생겨 난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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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1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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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어 의 눈물이란 말은 무얼 말하는 지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보통 인간은 슬퍼서 눈물을 흘리지요. 하지만 악어는 먹을 것을 먹을 때 턱이 눈물샘을 자극해서 생리적안 현상으로 눈물을 흘리게 됩니다. 그래서 악어의 눈물은 슬프지도 않은데 억지로 흘리는 가짜 눈물과 같은 의미로 쓰이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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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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