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태조의 일곱째였던 무안대군이 살해된 이유가 무엇인가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이방번은 태조 이성계의 일곱째 왕자로 태조 계비 신덕왕후 강씨(神德王后 康氏) 소생으로 출생했으며, 1387년 어린 나이 시절 귀의군 왕우의 딸과 결혼에 이어 1390년 처숙부 고려 공양왕(高麗 恭讓王)의 치세 시기에 아버지 이성계의 지원에 의해 고려 왕조로부터 고공좌랑의 직위를 받았으며, 1392년(조선 태조 1) 7월 조선 개국 후에는 무안군에 책봉되어 의홍친군위절제사에 임명되었고 태조 7년(1398)에 이복 형 이방원이 주동이 된 1차 왕자의난'이 일어났을 당시 이방원이 방번에게도 난에 동참할 것을 권유했으나 방번은 응하지 않았는데 그러나 아버지 등에게 알려주지도 않았고 이후 난이 끝나자 성문 밖으로 쫓겨났고, 중도에 살해되었다고 합니다. 이때 그의 나이 18세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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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임사화는 어떤 사건을 의미하는 것인가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신임사화는 조선 시대에 발생한 사건으로, 경종이 즉위한 1721년부터 다음 해인 1722년까지 노론과 소론 사이의 당파싸움에서 발생했습니다. 이 사건은 왕위계승문제를 둘러싼 노론과 소론의 충돌로 인해 일어났습니다.신축년 (辛丑年)과 임인년 (壬寅年)에 일어났으므로 신임사화라 합니다. 임인년에 주로 일어났으므로 ‘임인옥’이라고도 하는데 이 사건은 왕위계승문제를 둘러싼 노론 과 소론 사이의 당파싸움에서 소론이 노론을 역모 (逆謀)로 몰아 소론이 실권을 잡은 사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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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야는 왜 나라로 인정받지 못하나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가야는 부족 공동체 사회로 중앙 집권적인 왕권이 발달 하지 못한 부족 국가 였습니다. 신라 고구려 처럼 전체를 다스리는 왕이 없이 그냥 부족 연맹체로 존재 했었습니다. 기원전 1세기부터 6세기까지 경상남도와 경북 일부 지역에서 형성된 작은 부족국들의 연맹입니다. 중앙 집권적으로 발전 하지 못해 신라등에 복속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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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나 백제는 인구파악을 어떻게 했나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고구려는 가구 수를 기준으로 인구를 파악했습니다. 고구려의 가구 수는 69만 가구로 기록되어 있으며, 한 가구 당 남녀 5명으로 계산하면 약 345만 명의 인구가 있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백제의 가구 수는 76만 가구로 기록되어 있으며, 한 가구 당 남녀 5명으로 계산하면 약 380만 명의 인구가 있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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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4년 신라의 문무왕이 폐지한 외위제라는 것은 무엇인가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674년에 신라의 문무왕이 외위제를 폐지한 이유는 다양한 역사적, 정치적 배경이 있습니다. 외위제는 왕의 형제나 친족들에게 지방 관직을 주는 제도였는데 이를 폐지한 이유는 우선 왕권 강화 목적 입니다. 문무왕은 왕권을 강화하고 중앙집권화를 추진했습니다. 외위제를 폐지함으로써 지방 관리자를 왕의 직접적인 지휘 아래로 통제하고자 했습니다. 또한 왕실 내 갈등을 없애 고자 했습니다. 문무왕은 왕실 내에서 형제들과의 갈등을 겪었습니다. 외위제를 폐지하여 왕실 내 갈등을 완화하고자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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엽문이라는 무술가에 대해서 알려주세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엽문은 중국 남파 무술의 일종인 영춘권(詠春拳)을 대중화하고 널리 보급시킨 장본인으로서 영춘권의 일대종사이자 세계적인 무술가이며 액션 영화 배우였던 이소룡의 영춘권 스승(사부, 師父)이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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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뺑소니'의 어원은 어떻게 되나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뺑소니’는 일단 ‘뺑손’에 접미사 ‘-이’가 결합된 어형으로 볼 수 있습니다. ‘뺑손’의 ‘뺑’은 ‘뺑줄(남이 날리는 연줄을 긴 장대나 돌멩이를 맨 실로 걸어 당겨서 빼앗는 줄)’, ‘뺑코(‘미국 사람’을 이르는 말)’ 등에 보이는 ‘뺑’과 같은 성격의 것으로 보아도 되는데 어형이 일치할 뿐만 아니라 ‘빼다〔拔〕’라는 의미를 공유하고 있기 때문 입니다. ‘뺑줄’은 연줄을 빼앗는 줄이고, ‘뺑코’는 불쑥 빼어 나온 코이며, ‘뺑소니’는 잘못을 저지르고 몸을 빼쳐서 도망가는 짓이기 때문에 모두 ‘빼다’라는 의미를 함축합니다. ‘뺑’이 ‘빼다’와 관련된 것이라면 ‘뺑줄’은 본래 ‘빼줄’이었을 것이고, ‘뺑코’는 ‘빼코’였을 것입니다. 아울러 ‘뺑손’도 ‘빼손’이었을 것인데 이들 ‘빼줄, 빼코, 빼손’에 ‘ㅇ’이 첨가되어 각각 ‘뺑줄, 뺑코, 뺑손’이 만들어진 것으로 판단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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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역사상 젓갈은 언제부터 먹기 시작했나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우리나라는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여 있고 한류와 난류가 교차하여 어패류의 종류가 다양하고 풍부하여 농사를 짓기 전부터 어패류를 먹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신석기 시대에 기원하는 것으로 추정되며, 문헌상으로는 삼국사기 신라본기의 신문왕 3년 기록에 왕후를 맞이하는 폐백 음식으로 등장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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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국선열의날은 어떻게 지정된건가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대한제국 의 국권이 실질적으로 침탈당한 을사늑약 이 강제로 체결된 날인 1905년 11월 17일 을 대한민국 임시정부 가 순국선열공동기념일로 제정하였다고 합니다. (1939년 11월 21일 대한민국임시정부 임시의정원 제31회 임시총회). 광복 후 광복회 등 민간단체 와 국가보훈처가 주관하여 추모 행사를 거행하여 왔으며, 1997년 5월 9일 정부기념일로 제정되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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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자리에서 건배 문화는 어떻게 생긴 것인가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서양의 건배 문화는 북유럽에서 왔다고 합니다. 건배의 기원을 거슬러 올라가 보면 북유럽의 바이킹 문화에서 나왔다고 하는데 최초의 건배는 바이킹들이 혹시나 서로 상대의 술잔에 독을 타지 않았을까 하는 의심에서 나왔다고 한다고 합니다. 술잔과 술잔이 세게 부딪히면서 서로의 술이 섞이도록 한 것인데, 어느 한 쪽이 술에 독을 태웠다면, 이러한 행위를 쉽게 할 수 없을 것이기에, 서로를 향한 의심에서 출발한 문화라고 할 수 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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