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 지증왕 때 울릉도를 복속한 장군은 누구인가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이사부는 삼국시대 신라의 실직주 군주, 병부령 등을 역임한 관리이며 생몰년은 미상이라고 합니다. 신라에서 군현제가 실시되어 최초로 실직주가 설치되자 그 곳의 군주가 되었고, 512년 (지증왕 13)에는 우산국의 항복을 받아냈다고 하며 541년 (진흥왕 2)에 병부령이 되어 정치·군사의 실권을 장악했다고 합니다. 545년 왕에게 건의하여 『국사』를 편찬하게 했다고 전해 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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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동의수세보원은 누가 작성하였으며 어떻게 만들었나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조선후기부터 대한제국기까지 생존한 의학자 이제마가 사상의학에 관한 이론과 치료법을 수록하여 1894년에 저술한 의서인데 이제마는 고종 30년(1893년)에 착수하여 고종 31년(1894)에 《동의수세보원》상·하 3권을 완성함으로써 사상의학설을 제창하였다고 합니다. 고향인 함흥에서 의업에 종사하면서 광무 4년(1900년)에 다시 이 책에 성명론부터 태음인론까지를 추보(追補)하였으나, 태양인 이하의 3편을 미쳐 끝내지 못하고 사망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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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조는 왜 어머니 장례를 치를 수 없었나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인조는 광해군의 아들로 태어났으며, 광해군은 인조가 어렸을 때 죽었습니다. 인조는 광해군의 죽음에 대한 슬픔과 아버지의 원한 때문에 어머니의 장례를 치를 수 없었다고 합니다. 인조는 광해군의 폐위를 시켜 즉위한것이 부당 하다고 생각을 가지고 있었기에 광해군의 죽으에 대한 원한과 슬픔이 더해져 어머니의 장례를 치르지 못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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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최초의 화폐는 무엇이고 어느 왕 때 만들었나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조선 시대 처음 만든 화폐는 종이돈인 저화라고 합니다. 저화는 1401년(태종 1녀) 처음 만들어졌는데 재료는 닥나무 껍질로, 그 크기가 무척 컸다고 합니다. 저화가 처음 만들어져 사용될 때는 저화 1장을 쌀 2말로 바꿀 수 있었다고 합니다. 나라에서는 일반 백성들이 저화를 사용하게 하려고 관리에게 주는 급여 중 일부를 저화로 지급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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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최고의 관직은 무엇인가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삼정승은 군주와 더불어 국정을 주도하는 핵심 인물들이었는데 그들은 국가의 안위를 책임지고, 법률과 제도를 감독하며, 외교와 국방 정책을 결정하는데 참여했습니다. 삼정승 중에도 영의정은 원로 역할을 했으며 우의정이 국방 장관 및 한법 재판소장 역할 기타 좌의정이 총리 역할을 했습니다. 삼정승의 각 구성원은 서로 협력하고 견제하며, 국가의 발전과 안정을 위해 노력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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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봉화는 몇개나 있었을까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봉화는 그 갯수가 세종실록지리지에서는 전국의 봉화대가 601개가 있었다고 기록하고 있으며, 동국여지승람에서는 738개가 있다고 기록하고 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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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타는 2차세계 대전 때문에 만들어진 음료라던데, 어떤 이유인지 자세히 알려주세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기 전 독일에는 43곳의 코카-콜라 제조 공장이 있었고, 공급처는 600여 곳이나 되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코카-콜라를 만드는데 가장 중요한 원액이 없어지자 코카-콜라는 단 한 병도 생산할 수 없게 되고, 독일의 코카-콜라 지사장인 ‘막스 카이트(Max Keith)’에게는 새로운 미션이 생겼다고 하는데 “코카-콜라를 만들 수 없다면, 코카-콜라를 대체할 수 있는 음료를 만들어라!”라고 하는 미션이 생기게 되어서 등장 하게 된 음료가 바로 환타 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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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체의 철학 사상 중 르상티망은 무엇인가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르상티망이란 도덕감정은 의미 없는 고난이나 죽음을 당할 수밖에 없는 인간조건과 자신이 처한 부정의한 사회환경에 대한 분노와 복수의 정신이라고 합니다. 질투, 원한, 열등감 등의 가정을 총체적으로 가르친다고 할수도 있을 것 입니다. 그것은 감정 경험의 만성적 특성과 함께 이를 활용하지도 해소하지도 못하는 무능력이란 특징을 가지며, 빼어난 비방의 능력으로 권위를 잠식한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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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에서 당나라로 유학을 가서 당나라 신하가 된 인물은 누가 있었으며 당시 유행이었나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당에 유학하여 관직 생활을 하게 된 대표적인 이가 바로 최치원 입니다. 6두품 출신으로서 12세의 나이로 당에 유학하여 6년 만에 당의 빈공과에 장원으로 급제하였으며, 황소의 난이 일어나자 절도사 고병의 막하에서 <토황소겨군>(討黃巢檄文)》을 지어 당 전역에 문장으로 이름을 떨쳤고, 승무랑 시어사(承務郞侍御史)로서 희종 황제로부터 자금어대(紫金魚袋)를 하사받았다고 합니다. 귀국하여 헌강왕으로부터 중용되어 왕실이 후원한 불교 사찰 및 선종 승려의 비문을 짓고 외교 문서의 작성도 맡았으며, 시무 10여 조를 올려 아찬 관등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러나 진골 귀족들이 득세하며 지방에서 도적들이 발호하는 현실 앞에서 자신의 이상을 채 펼쳐보지도 못한 채 관직을 버리고 은거하여 행방불명되었다고 하는데 사국 사기에서는 가야산의 해인사로 들어갔다고 하고, 민담에서는 지리산으로 들어갔다고도 합니다. 908년까지 생존해 있었음은 확실하지만 언제 어떻게 죽었는지는 알 수 없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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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총독부의 총독은 일반 관료가 임명되었었나요?
안녕하세요. 손용준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 관제에 따르면 조선 총독은 조선을 관할하며, 일왕에 직접 임명장을 받는 친임관 (親任官)으로서 육해군 대장에서 충원하는 것으로 명시되어 있다고 합니다. 또 총독은 일왕에 직속하며 위임의 범위 내에서 육해군을 통솔하고 조선 방비를 담당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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