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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휘자겸 성악가 강경원입니다

지휘자겸 성악가 강경원입니다

강경원 전문가
부산진구남성합창단
Q.  일본의 헤이한 시대는 어떤 시대인가요?
안녕하세요. 강경원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794년 나라에서 천도한 헤이안쿄가 정치·문화의 중심지였던 시대이다. 나라 시대에 채택된 중국식 중앙집중화 정부체계는 장원의 성장으로 변모되었다. 9세기 중엽부터 후지와라 씨가 섭정으로 왕실을 지배했다. 995~1027년에 조정을 장악한 후지와라 미치나가는 덴노가 정권을 잡자 몰락했다. 1086년 시라카와 덴노가 퇴위해 막후에서 실권을 휘두르는 인세이 체제를 확립함으로써 권력의 중심이 바뀌었다.이 시대에 궁중귀족문화가 화려하게 꽃피었다. 밀교인 천태종과 진언종이 궁중의식과 병행해 공식적인 의식을 치렀으며 정토종도 확산되었다. 지방 군벌들 간의 무력 투쟁은 1156년 수도에도 파급되었으며 다이라 씨와 미나모토 씨가 다른 덴노를 세우기 위해 경쟁했다. 결국 다이라 씨가 승리해 1185년까지 조정을 장악했다
Q.  일진회라는게 어떤 단체였나요???
안녕하세요. 강경원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1904년 8월 송병준의 주도로 설립되었다. 송병준은 조선 안에 친일단체를 설립하라는 일본의 비밀명령을 받고 친일파 인사들과 접촉하며 세력을 모았다. 1904년 8월 18일 유신회를 조직한 후 8월 22일 일진회로 개명했다. 일진회의 강령은 조선 군대를 해산시키고 내각을 교체하고 국가의 재정을 축소시켜 결국 주권을 포기하는 것으로 일제의 조선지배권을 강화시키려는 목적을 나타냈다. 일진회는 을사조약이 체결되기 직전인 11월 6일 '한국은 일본의 보호를 받아야 한다'는 일진회 선언서를 발표했다. 을사조약 체결 이후 일진회는 를 통한친일여론 조성, 고종의 양위 책동, 의병토벌 등 각종 매국행각에 앞장섰다. 그러나 일진회는 1910년 한일합병 이후 일제의 '집회결사엄금령'에 의해 강제 해산되었다.
Q.  보통 피아노 얼마나 쳐야 기본 정도는 마스터 할 수 있을까요?
안녕하세요. 강경원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글쎄요... 사람마다 다르며 어떤 연주를 할까의 목표에 따라 다를 수 있습니다.1.좋아하는 가요나 팝송, 찬송가 정도의 반주를 하고 싶다!~~~ 할 경우 반주법과 코드진행 수업을 집중적으로 배우신다면 1년정도면 가능합니다. (단, 열심히 하셔야겠죠? ㅋㅋ)2.제대로 된 클래식 곡을 연주하고 싶다.(엘리제를 위하여, 비창, 슈만 연습곡 등)이럴 경우 차근차근 기초부터 잘 배우셔야합니다.테니스, 골프, 수영등 운동도 마찬가지죠!기초를 잘 배우면 처음엔 좀 힘들지만 나중엔 남들보다 빨리갑니다. 또 멋지고 제대로 폼이 잡히고 결과도좋습니다. 피아노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논,소나티네 부터 잘 배우시고 베토벤,모짜르트 정도 치시면 원하는 성과를 내실수 있습니다. 이경우는 열심히 하신단 전제로 3년 봅니다. 파이팅!^%
Q.  정도전의 후손은 어떻게 살 수 있었나요?
안녕하세요. 강경원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이방원의 정도전 숙청은 애시당초 정치적인 목적으로 이뤄졌기 때문에 다행히도 그 가족은 대부분 해를 입지 않았으며[33] 설사 노비 등으로 전락했다고 해도 몇 년 후 대부분 복권되었다. 정도전은 삼형제의 맏이었는데 무인정사 당시 둘째 정도복은 한성판윤[34]으로 있었다가 정도전이 죽자 관직을 버리고 고향인 영주로 낙향했다. 셋째 정도존은 무인정사 당일 정도전과 함께 피살되었다. 정도전에게는 경주 최씨 가문 출신으로 최습의 딸인 경숙택주 최씨라는 아내와 아들이 4명이 있었고 정진, 정영, 정유, 정담이라고 하지만 아들이 3명이라는 기록도 있다. 둘째, 셋째, 막내아들인 정영, 정유, 정담도 아버지, 삼촌과 함께 무인정사 때 이방원과 싸우다 전사한다. 살아남은 한 명의 아들은 바로 맏아들인 정진(鄭津, 1361~1427)으로 지방에 내려가 있다가 화를 면하였다. 이후 전라도 수군(水軍)의 일개 병사로 신분이 강등되어 수병 생활을 9년간 하게 되었으며[35] 아내 최씨 역시 노비로 전락했다.그러나 불과 몇 년 후 이방원은 정진을 판나주목사로 임명하는 방법으로 복권시킨건 물론 정도전의 정책 대부분을 그대로 시행했다. 태종이 정책 시행이야 그렇다 쳐도 왜 정적의 아들인 그를 아무 대가도 없이 복권시켰는지는 분명치 않다. 다만 적어도 태종은 그를 종친모해죄로 몰았으며 정적으로만 생각했지, 적어도 역적으로 생각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역적으로 몰았더라면 삼족을 멸했을 텐데 그의 후손이 이어져오고 있기 때문. 태종만 그렇게 생각한게 아니라 태종의 숙부인 이화도 1차 왕자의 난 당시에 단순한 집안 싸움이라고 일축했던 사례가 있었다. 묘하게 태종은 자기가 죽인 정몽주도 직접 복권시킨 전례가 있으며 애당초 본인부터가 정적에 관대한 면이 있기도 했고 말이다.[36] 정도전의 장남 정진에 의하면 정도전은 스스로 시문을 쓰지 않고 입으로 읊은 것을 다른 사람에게 적게하는 버릇이 있었는데 다른 사람이 듣고 작성한 원고가 마음에 안 들면 원고를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 정진이 을 간행할 때 아버지가 직접 저술한 원고가 아니라 다른 사람이 가지고 있었던 정도전의 시문을 모아서 아버지의 문집을 편찬했다고 한다
Q.  인문학으로 먹고살수 있을까요??
안녕하세요. 강경원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어딴 컨텐츠로 어떻게 사람들과 소통하느냐가 중요한듯 합니다. 엄청나게 광범위한 인문학을 주제와 소재를 잘 엮어서 과거의 역사와 긴밀하게 연결된 오늘날의 인생들에 잘 의미를 부여하며 강의 하고 책을 쓰신다면 이 분야도 불루칩입니다.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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