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소크라테스의 와이프는 진짜 악처인가요?
안녕하세요. 강경원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소크라테스 아내 크산티페는 악처의 대명사 같은 여자였습니다. 그녀는 말 많은 심술꾸러기였습니다. 소크라테스 같은 현명한 사람이 왜 그런 여자를 아내로 삼았는지 의심이 가는데, 그 점에 대해서 그 자신은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마술(馬術)에 능숙하려는 자는 막된 말(馬)을 선택한다. 막된 말을 다룰 수 있으면, 다른 어떤 말을 타는 것이 쉽다. 내가 이 여성을 능히 견디어 낸다면 천하에 견디기 어려운 사람이 없을 것 아닌가." 또 어떤 이가 "용케도 부인의 잔소리를 참아 넘기십니다."하고 동정하는 말을 했더니, "물레방아 돌아가는 소리도 자꾸 들으면 시끄럽지가 않네."하고 대답했답니다. 그의 아내가 악담 끝에 소크라테스의 머리 위에다가 물을 뒤집어 씌운 일은 잘 알려진 일화입니다. 그는 조금도 화내지 않고, "벼락 뒤에는 비가 내리기 마련이지."하고 말한 것은 악처의 악행을 자기 수양의 기틀로 삼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일부 학자들은 이것이 의지가 강한 여성을 비판하는 남성 작가들에 의해 지속된 고정관념이라고 지적했습니다.또한 철학 교수임네 하고 허튼 짓만 하고 다니며, 집안 살림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모르는 무능한 남편으로 크산티페는 생각했을 거고 늘 잔소리를 달고 살 수밖에 없는 형국이었을 거라고 상상할 수 있습니다.
Q. 우리나라의 사물놀이의 유래는 어떻게 온 것인가요
안녕하세요. 강경원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원래 사물(四物)이란 불교의식에 사용되던 악기인 법고(法鼓)·운판(雲板)·목어(木魚)·범종(梵鐘)을 가리키던 말이었으나, 뒤에 범패(梵唄)의 바깥채비 소리에 쓰이는 태평소·징·북·목탁을 가리키는 말로 전용되었다. 그리고 다시 절 걸립패의 꽹과리·징·장구·북을 가리키는 말로 전용되어 오늘에 이른다.이러한 편성에 따른 음악은 1978년 최초로 ‘사물놀이’라는 이름으로 창단된 연주단에 의해서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당시 이들의 농악을 다루는 연주 기량은 아주 뛰어났고, 농악을 무대용 음악에 알맞게 효과적인 방법으로 구성하였다. 그래서 농악의 생동하는 음악성과 치밀한 연주 기교는 상당한 반응을 일으켰고, 해외 연주활동을 통하여 국제적인 명성을 얻기도 하였다.
Q. 공중화장실을 가장 먼저 사용한 나라는?
안녕하세요. 강경원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기원전 2800년, 신석기 시대이던 스코틀랜드의 주거지인 '스카라브레'에 배수구로 통하는 움푹한 벽 구멍이 공중화장실로 쓰였을 것으로 추측된다. 고대 로마에서는 매우 시설이 좋은 곳이라면 돌로 만든 좌변기에 수도를 끌어온 수세식이었는데, 해면으로 만든 스펀지가 달린 막대로 뒤를 닦고, 물에 씻어서 닦고 다시 물에 씻고 변이 쓸려가는 수도관 외에 다른 물줄기가 있어서 여기에 헹궈냈다. 물에 씻은 스펀지는 소금과 식초를 탄 물에 담가서 소독하였다. 칸막이 역할을 하는 게 없다. 이런 공중화장실은 하인들이 주로 쓰던 곳이고, 귀족도 쓰긴했지만 긴 옷으로 프라이버시를 지켰다. 기사. 참고로 이때 당시 공중화장실은 귀족용과 평민용같이 신분에 따라서는 나뉘어있었으나 남녀를 구분해놓지는 않아 남녀가 공용으로 사용했다고 한다. 당시 중요한 화장실 매너중 하나가 자기가 쓴 걸 씻어두는 것이었다고. 간혹 공공 화장실에 상주하며 방문객들을 위해 이 막대로 뒤를 닦아주는 노예도 있었는데, 정부운영 혹은 지역 유지가 사회 기부(?) 활동 삼아서 자기 집 노예를 보내둔 거라고 한다. 스파르타쿠스에서도 바티아투스가 용변을 보고 일어서자 곁에 서 있던 노예가 막대로 뒤를 닦아주는 장면을 볼 수 있다. 이에 대한 보답으로 바티아투스는 자신의 뒤를 닦아준 노예에게 동전을 던져준다. 4세기 로마 중심지에만 400여 개의 공중화장실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