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제주도 돌하르방의 유래는 무엇인가요??
불과 조선시대만 해도 제주도 사람들의생활은 말이 아니었습니다. 옛날 이름은탐라로 불렸는데 주로 유배지에 해당될 만큼처참한(?) 곳이었지요. 그도 그럴 것이 제주도는 섬이라서보급도 안되지, 농사는 거의 짓지도 못하는 수준이고, 대륙으로부터분단되어 생활 형편이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었습니다. 게다가왜구(주로 일본 해적)들의 침입을 받는 완전히 죽음의 땅이었죠ㅡㅡ그런데 거기에 어떤 벼슬아치(이름이 기억 안나네요 ㅈㅅ;;)와 김몽규 목사가유배를 당해 제주도에 오게 됩니다. 그들는 제주도 사람들의 생활을 보고놀랐죠. 사람만도 못한 삶을 살고 있었으니까요. 그래서 조금이나마제주도 사람들을 도우려고 왜구를 막을 방법을 연구하였답니다.하지만, 제주도에서는 군사도 없고 군대를 만들수도 없는 형편이었어요.그래서 결국 큰 조각상을 세워 왜구를 물리치고자 하였어요. 장승처럼 말이예요.그 조각상의 인물은 완옹중이예요. 완옹중은 고대 중국의 용맹한 장수지요. 그는한번에 1000명을 당해낼 만큼 용맹했다고 해요. 특히, 중국을 오랫동안 괴롭혔던 흉노족은그의 이름만 들어도 벌벌 떨 정도였지요. 김몽규 목사와 유배당한 벼슬아치는완옹중 장군의 모습을 돌에 새겨서 왜구가 자주 침몰하는 곳에 세웠어요. 그 조각상이바로 돌하르방의 시초, 옹중석이랍니다. 그 뒤, 왜구는 옹중석의 모습을 보고 지레 겁을 먹어도망치기 일쑤였죠ㅡㅡ 그 결과, 제주도에 쳐들어오는 왜구들의 수는 확연히 줄어들었답니다.제주도 사람들은 이 옹중석을 계속 만들기 시작했어요. 그 뒤, 다양한 모습의 옹중석이 만들어지면서결국 돌하르방이라고 불리게 되었답니다^^
Q. 피사의 사탑이 기울어지게 만든 이유가 있나요?
안녕하세요. 김수희 인문·예술 전문가입니다.현재 탑의 높이는 가장 높은 쪽이 56.67m, 낮은 쪽은 55.86m로 남쪽으로 5도 이상 기울어져 있다.대성당과 종탑의 건설은 당시 해운 왕국으로 번영하던 피사가 사라센 제국과의 전쟁에서 승리한 것을 기념한 것이다. 그러나 종탑은 1173년에 착공할 당시부터 탑의 한쪽 지반이 가라앉으면서 기울어지기 시작했으며, 당시 3층까지 진행되던 공사는 중단되었다가 14세기에 이르러 8층으로 겨우 완성되었다.이후 매년 미세하게 기울어진 탑의 기울기가 1990년 한계치에 가까운 4.5m를 넘으면서 붕괴 위험에 처하자, 이탈리아 정부는 온갖 기술을 동원해 보수 작업을 시작했고, 장장 11년 동안 계속되던 보수 작업은 2001년에야 완료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