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권율 장군이 행주대첩에서 보여준 리더십과 전술적 특징은 무엇이었나요?
안녕하세요. 이동광 전문가입니다.행주 대첩은 임진왜란 때 전라도의 최고 책임자인 관찰사였던 권율이 행주산성에서 일본군을 크게 무찌른 싸움입니다.권율은 임진왜란 초기에 광주 고을의 책임자인 수령으로 있으면서 1592년(선조 25년) 여름에 일본군을 맞아 싸워 이긴 공으로 전라도 관찰사가 되었습니다. 조선군과 우리 나라를 도우러 온 명나라 군대가 평양을 다시 찾고 남쪽으로 진군한다는 소식을 듣고 명나라의 지원군과 합세하여 수도인 한양을 다시 찾기 위하여 군대를 이끌고 북쪽으로 이동하였습니다.이동 도중에 수원에서 일본군을 크게 이기고 이어 다시 한양 근처의 서쪽으로 군대를 옮기기로 하고, 부하 장수에게 군대를 주둔시킬 만한 장소를 찾아보도록 하였는데, 이 때 그 장소로 결정된 곳이 바로 행주산성이었습니다.권율은 자신의 군대를 동원하여 행주산성의 성을 나무로 신속하게 보수하게 하고 비밀리에 군대를 이 곳으로 주둔시켰습니다. 그리고 소수의 병력을 한양으로 보내서 왜군에게 싸움을 걸게 하여 남하하는 조선군과 명나라의 군대를 돕고자 하였습니다. 일본군은 권율 장군에게 몇 번 패배한 것에 대한 치욕을 씻기 위하여 한양에 주둔하고 있던 전 병력을 동원하여 행주산성을 공격해 왔습니다.이 때 행주산성의 조선군이 가지고 있던 무기는 화살과 창, 칼 외에 변이중이 만든 화차, 그리고 권율이 개량한 화포 등이 있어서 적의 공격에 대비하고 있었습니다.또 산성에서는 일본군이 한꺼번에 몰려올 것에 대비하여 나무로 만든 울타리 형식의 성을 이중으로 만들었습니다. 흙으로 언덕을 만들어서 일본의 조총 탄환을 피할 수 있게 하였구요.또한 병사에게 재가 들어 있는 주머니를 허리에 차게 하였습니다. 또한 일본군이 공격해 온다는 소리를 들은 권율은 병사들에게 이번 싸움의 중요성을 설명하고 병사들의 사기를 북돋워 주었습니다.전투가 시작되자 처음에는 행주산성의 조선군이 유리하였으나 일본군의 수가 너무 많아 나중에는 무기가 떨어져 몸으로 밀려오는 적과 맞서 싸웠습니다. 성 안의 돌을 주워 모아서 돌을 던지는 투석전이 벌어지기도 하였구요.이 때에 성 안의 부녀자들이 긴 치마를 잘라서 짧게 만들어 입고 돌을 날라서 조선의 병사들에게 공급해 주었습니다. 이렇게 하여 왜군은 큰 피해를 입게 되었다. 여기에서 '행주치마'라는 이름이 생겨난 것입니다.일본군이 이러한 조선군의 사정을 알게 되자 전군을 동원하여 다시 공격하려고 하였고, 이 때 조선의 지원군이 도착하여 일본군의 뒤에서 공격하려 하자, 일본군은 당황하여 물러나기 시작하였습니다.산성 안에 있던 조선군은 물러나는 일본군을 추격하여 크게 무찌르게 되었습니다. 당시에 조선을 돕기 위하여 온 명나라의 장수 이여송은 벽제관에서 일본군에 패하고 평양으로 물러나 있었는데, 행주산성에서 있었던 승리의 소식을 듣고 크게 후회하였다고 합니다.이러한 큰 승리가 있은 다음 권율은 수도 한양을 지키는 총사령관에 해당하는 도원수로 승진하여 임진왜란 전쟁 기간 동안 커다란 활약을 계속하였습니다.행주 산성에서 승리하였던 전술을 요약하자면1 화차 화포 등 뛰어난 무기2 나무 울타리와 흙으로 만든 언덕 등 견고한 성 방어체계3 병사들이 투석전을 불사하며 싸울 수 있게강렬한 전투 의지를 고취함
Q. 일제강점기에 이 기간동안 조선 총독을 했던 사람은 몇 명인가요?
안녕하세요. 이동광 전문가입니다역대총독제1기는 테라우치(寺內正毅) 총독 시대.(1910년 10월 1일, 專任 1911년 8월 21일-1916년 10월 9일)제2기는 하세가와(長谷川好道) 총독 시대.(1916년 10월 16일-1919년 8월 12일)제3기는 사이토(齋藤實) 총독 시대.(1919년 8월 12일-1927년 12월 10일)제4기는 야마나시(山梨半造) 총독 시대.(1927년 12월 10일-1929년 8월 17일)6월 24일, 총독부 독직사건 발생, 총독 야마나시 파면됨.제5기는 사이토(齋藤實) 총독 재임 시대.(1929년 8월17일-제6기는 우가키(宇垣一成) 총독 시대.(1931년 6월 17일-1936년 8월 5일)제7기는 미나미 지로(南次郞) 총독 시대(1936년8월26일-1942년5월)제8기는 고이소(小磯國昭) 총독 시대.(1942년 5월29일-제9기는 아베(阿部信行) 총독 시대.(1944년 7월24일-총독의 권한총독은 일본 천황에 직속되어 일본 내각의 통제를 받지 않고 한반도 내에서 행정권·사법권·군사권 등의 모든 권한을 가졌습니다. 그래서 총독은 조선 주둔 일본 육 ·해군을 통솔하여 조선의 방위를 맡으며, 모든 정무를 총할하여 내각총리대신을 경유해서 일본왕에게 상주, 재가를 받을 권리가 있었습니다. 또, 특별한 위임에 따라 총독부령을 발하고, 여기에 벌칙을 첨가할 수 있었으며, 법률을 요하는 사항은 총독의 명령으로 규정할 수 있는 등 극히 폭이 넓고 강력한 권한이 부여 되었습니다.즉 조선총독은 총독부의 관료체제와 군대, 헌병, 경찰 등 치안기구를 결합한 무단통치의 총사령관 이였습니다. 일제는 한반도를 효율적으로 지배하기 위해 다양한 법률과 칙령을 제정했는데 이 칙령은 조선 지배의 법제적 기초가 됐습니다. 또 조선에서 별도 법률로 정해야 할 입법사항은 조선총독의 명령인 제령으로 정하도록 했습니다. 제령은 일본 내각총리대신을 거쳐 천황의 재가를 받는 게 원칙이었지만, 긴급한 사유가 있을 때는 총독이 단독으로 법률을 제정할 수 있었습니다. 총독은 조선총독부령을 발동해 1년 이하의 징역, 금고, 구류, 또는 200원 이하의 벌금 및 과태료의 벌칙을 정할 수 있었습니다. 또 조선 내 재판소의 설립 및 폐지, 관할구역 결정, 판사의 이동 및 면직 등에 관한 권한도 있었습니다.이정도면 가히 조선의 황제같이 군림했다고 보여 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