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미켈란젤로와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정말 라이벌이였나요?
레오나르도 다빈치와 미켈란젤로는 르네상스 시대를 대표하는 서로 경쟁했던 라이벌입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과학적 관찰과 실험을 중시하며 회화와 해부학, 공학 등 다방면에 관심을 가진 다재다능한 예술가였습니다. 그는 섬세하고 사실적인 표현을 추구했습니다. 반면에 미켈란젤로는 조각과 건축을 중심으로 인간 신체의 이상적인 아름다움을 표혐하였습니다. 1504년 페렌체 시청 대회의실 벽화로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안기아리 전투", 미켈란젤로는 "세기의 대결"을 각각 그려 경쟁을 공식화하였습니다. 그들의 라이벌 관계는 단순한 갈등이 아니라, 서로 다른 예술적 비전이 충돌하며 창조적 에너지를 발휘한 사례로 볼 수 있습니다.
Q. 우리나라에서 외국문물을 조선시대에 온전히 받아들였던 사건이나 계기는 언제일까요?
19세기 제국주의 열강의 접근해 오자 조선도 문호를 개방하고 서양의 문물의 수용하여 근대 국가를 수립하고자 했습니다. 특히 고종의 친정 이후 개화파를 등용하고, 통리기무아문을 설치하여 별기군을 창설하고, 영선사와 조사시찰단을 파견하여 본격적으로 개화정책을 추진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1883년 시설을 수입하여 전환국, 박문국, 기기창을 설치하여 운영하였습니다. 그리고 1885년 설립한 광혜원은 서양 의술을 도입하였습니다. 그외에도 전기, 전화, 기차, 전차 등의 서양 문물을 적극적으로 수용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