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우리나라 김치의 유래는 어디서부터 시작된 걸까요
우리나라 김치의 역사는 매우 오래되었습니다. 문헌상으로는 약 3000년 전 중국의 시경에 소금에 절인 채소를 뜻하는 '저(菹)'라는 단어가 등장하며, 옛 한반도에서도 유사한 절임 채소가 만들어졌음을 짐작하게 합니다.우리나라에서 김치에 해당하는 음식을 먹기 시작한 시기는 상고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며, 이 시기 사람들은 오이, 박, 순무, 배추 등 다양한 채소를 소금으로 절여 저장하던 풍습이 있었습니다.삼국시대 및 고려시대에는 다양한 채소로 만든 철임 음식이 발전했고, 이 시기에 이미 오늘날의 김치와 유사한 염지, 저라는 이름이 기록에 남아 있습니다.조선 초~중기에는 딤채라는 이름이 등장하며, 다양한 양념과 재료를 사용한 김치의 조리법이 확산되었습니다. 그리고 조선 중엽 고추가 한반도에 도입되어 붉은 색의 김치가 만들어졌습니다.
Q. 남양주시에 모란공원은 어떤 역사가 있나요?
모란공원은 1966년 경기도 남양주 화도읍에 우리나라 최초로 만들어진 사설 공원묘지라 합니다. 모란 공원 이름은 인근의 모란봉에서 유래되었습니다. 1969년 권재혁 선생을 시작으로, 1970년 노동운동가 전태일 열사의 유해가 안장되면서 모란공원은 민주화·노동·사회운동에 헌신한 수많은 인물들의 안식처가 되었습니다. 대학생, 노동자, 사회 운동가 등 군사독재의 억압에 저항한 미눚열사들의 묘가 하나둘씩 늘면서 민주화 운동의 성지로 자리잡게 됩니다. 따라서 모란공원은 단순한 묘지가 아니라 한국 현대사의 아픔과 민주화 운동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Q. 조선시대 붕당젗치가 나라를 망쳤다는 말이 맞나요?
붕당은 사림이 정권을 잡으면서 학파적, 정파적 차이로 형성된 파벌입니다. 이들은 상대 붕당을 인정하면서 서로 경쟁하고 대립하는 정치 구조입니다.처음에는 동인과 서인으로 시작하여 남인, 북인, 노론, 소론 등 다양한 붕당이 등장했습니다.초기에는 권력의 독점과 전횡을 막고 관료 사회 내 공론 형성과 권력 견제를 가능하게 했습니다. 서로 비판하면서 백성의 지지를 얻고 나은 정책을 내놓고 경쟁하는 긍정적 효과도 있었습니다.하지만 붕당간의 대립이 점차 격화되면서 상대 붕당을 인정하지 않고, 철저히 배제하는 현상이 일어났습니다. 특히 숙종 당시에는 환국을 통해 편당적인 태도를 보였습니다. 하지만 붕당정치의 폐해도 있지만 과장된 드라마처럼 단순히 당파싸음이 단정짓기는 어렵습니다. 오히려 붕당 정치가 정치적 균형을 이루었고, 붕당 해체 뒤의 세도정치가 조선을 더욱 취약하게 만들었다는 해석이 많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