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명나라시대 정화의 대원정은 어느지역까지 진행되었었는가요?
명나라의 영락제의 명을 받아 환관 정화는 1405년부터 1433년까지 7차례에 걸쳐 대규모 남해 원정을 했습니다. 정화의 원정단은 1차 인도 캘리컷까지, 2차 시암과 자바섬을 걸쳐 캘리컷까지, 3차는 스리랑카에서 현지왕을 포로로 잡아 귀국했습니다. 4차는 호르무즈와 아덴만까지, 5차는 아프리카 동해안의 말린디까지, 4차는 조공국의 사절을 돌려보내기 위해 원정을 했습니다. 그리고 7차는 메카까지 도달했습니다.남해 원정을 통해 명 중심의 조공질서를 확대할 수 있었습니다.
Q. 고구려와 한나라 사이의 경제교류는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졌나요?
고구려는 건국 초부터 한나라의 군현과 관계하면서 성장했습니다. 특히 현도군, 요동군, 낙랑군은 고구려의 확장 과정에서 반드시 넘어야 할 세력이었습니다.그러나 반면 교류를 통해 실리를 취하기도 했습니다. 두 나라는 무역을 통해 철기, 농기구, 비단, 도자기 등 다양한 물품을 교환했습니다. 또한 고구려는 한나라에 공물을 바치면 한나라는 이에 대한 답례품을 제공하는 조공 관계를 통해 상호 이익을 추구하기도 했습니다. 그 외에도 문화적 교류를 통해 고구려는 한나라의 선진 문물을 받아들여 자국의 문화 발전에 기여했습니다.
Q. 한나라와 고구려 사이의 외교관계에서 주목할 만한 사건이나 조약은 무엇인가요?
고구려는 한나라의 군현과 대립하면서 성장하였습니다. 고구려는 한나라의 요동군과 현도군을 공격하여 영토로 확장하려 하였습니다. 28년(모본왕)에 요동 태수는 군사를 이끌고 고구려를 침공했으나 고구려의 수성전에 철수하였습니다. 105년 요동을 공격하여 약탈하였으며, 118년 예맥과 더불어 현도군과 화려성을 공격했습니다. 그리고 121년 선비족과 더불어 요수현을 공격하여 요동태수 채풍을 살해했습니다. 태조왕 요동의 신안, 거향을 약탈했으며, 서안평을 공격하여 대방현령을 죽이고 낙랑군도 공략하여 낙랑군 태수의 처자를 생포했습니다.
Q. 임진왜란 당시 3대 대첩에 대해 궁금합니다
임진왜란 당시 3대 대첩으로는 한산도 대첩, 진주대첩, 행주 대첩입니다. 한산도 대첩은 1592년 7월 이순신 장군이 이끄는 수군이 한산도 앞바다에서 일본군 수군을 크게 쿨리쳤습니다. 이 전투로 인해 조선은 제해권을 장악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진주 대첩은 1592월 10월 김시민 장군이 진주성에서 일본군을 막아낸 전투로 관군고 의병의 활약이 두드러졌습니다. 행주대첩은 1593년 2월 권율 장군이 행주 산성에서 의병, 주민들과 함께 일본군을 물리친 전투로 일본군의 한양 점령을 저지한 중요한 승리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