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고려 시대에 '복수법'은 왜 만들어졌나요?
안녕하세요. 이예슬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복수법을 시행한 것은 고려의 시초인 왕건시대부터 그 배경이 올라가게 됩니다.아래의 내용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고려를 세운 태조 왕건은 나라를 안정시키기 위해 지방 세력가인 호족들을 포섭하기로 했어요. 그 방법으로 호족의 딸들과 결혼했어요. 호족 출신 여성을 포함해 모두 29명의 부인을 뒀고, 그 사이에서 25명의 아들을 낳았지요. 그러나 아들이 너무 많다 보니 왕위를 차지하기 위한 다툼이 끊이질 않았어요. 왕위 계승 다툼은 고려 제4대 왕인 광종 때까지 계속 됐어요. 광종은 임금이 되고 나서도 누군가 자신을 죽일까 봐 불안해했어요. 그러던 중 개국 공신인 준홍 등이 반역을 모의했다는 이야기를 듣게 됐죠. 충격에 휩싸인 광종은 자신의 정책에 반발하는 호족들을 대대적으로 숙청하기 시작했어요.시간이 흘러 고려 제5대 임금 경종이 즉위했어요. 그는 호족 탄압을 끝내고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 보기로 했어요. 옥에 갇혀 있던 호족들도 풀어줬지요. 이와 함께 경종은 광종 대에 억울한 일을 당한 사람들이 복수를 할 수 있게 허용하는 법을 시행했어요.이 법이 생기자 사람들은 너도나도 복수를 하기 시작했어요. 원수를 죽여도 처벌을 받지 않았죠. 복수는 또 다른 복수를 낳았고, 결국 고려에 피바람이 불었어요. 급기야 경종이 재상 자리에 앉힌 호족 왕선이 복수를 핑계로 태조의 아들인 원녕태자와 효성태자를 죽이는 사건이 일어났어요. 호족이 왕족을 죽이는 일까지 벌어지자 경종은 1년 만에 복수법을 없앴어요. 그리고 왕선을 멀리 귀양보냈지요.오늘날 법치주의 국가 중에서 개인적인 복수를 허용하는 나라는 단 한 곳도 없어요. 범죄자를 처벌하는 것은 국가만이 갖는 권한으로, 개인적인 복수는 모두 범죄로 간주한답니다. 다만 '정당방위'와 같이 자신 또는 타인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하는 가해 행위는 예외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