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조선에서 양민들에게도 혼인시 유교적 가치관이 적용되었나요?
안녕하세요. 이현행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성리학적 예법이 사대부 이외에는 실제로 적용되지는 않았습니다. 조선시대 신분제는 양인과 천민 두 층으로 구분되었습니다. 천민은 소유물로 가축과 같은 대우를 받았습니다. 양인은 크게 사대부 양반과 중인, 농민, 상공인이 있습니다. 양반은 지배층이고 서얼, 중인, 기술인들은 중간지배층이고 나머지는 피지배층입니다.조선이 성리학의 나라이고 성리학의 예법이 중시되었더라도 이는 양반에게만 적용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지배층의 중심문화는 그 영향력이 커서 서민들도 모방하여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유교적 예법을 지키지는 않으나 유교적 문화의 색채를 지니게 된 것이지요.
Q. 유럽에서 가톨릭교이외에 개신교는 어느계급을 위주로 퍼지게 되면서 나중에 갈등이 일어나게된건가요?
안녕하세요. 이현행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개신교는 유럽에서 루터의 종교개혁 이후 생긴 새로운 기독교입니다. 종교개혁은 독일이 중심이 되었으며 가톨릭의 부패와 성서와 신앙 본연으로 돌아가자는 주장과 개혁이었습니다. 따라서 대귀족이나 기존의 높은 성직자들이 아니라 하위직 성직자나 중소귀족, 그리고 대다수는 농민이나 상인들이었습니다.종교개혁 이후 신구교로 분열되었으며 종교전쟁의 결과 아우크스부르크 화의를 통해 루터파가 인정되었으며 각지의 신교들도 생겨났습니다. 따라서 지역적으로 북유럽과 독일, 영국, 프랑스에서 신교가 생겨났고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으며 신교탄압 등에 따라 상공인층이 이동하기도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