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인수대비와 폐비윤씨는 극도로 좋지 않았었나요?
안녕하세요. 장세영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윤씨를 사사하는데 적극 앞장 선 사람은 남편인 성종 자신입니다. 폐비 윤씨가 대비들과 그다지 사이가 좋진 않은 듯 했으나, 생사여탈은 국왕이 결정할 사안입니다.성종이 폐비 윤씨를 사사하기로 한 이유는, 윤씨를 폐하여 사가로 내쳤음에도 대신들이 세자를 의식해 윤씨를 두둔하는 모습을 보였기 때문입니다.즉, 세자가 자신의 뒤를 이어 즉위했을 때 윤씨가 살아있다면 반드시 복위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궁궐에는 피바람이 불게 될 것이 분명합니다. 아무래도 성종은 이를 경계한 듯 싶습니다.그리하여 대신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폐비 윤씨를 사사하라고 결정한 것입니다.
Q. 영화 '안시성'의 토산은 실제 있었던 일인가요?
안녕하세요. 장세영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당나라가 쌓은 토산에 관한 기록은 중국측의 «구당서», «자치통감», «책부원귀» 등과 우리측 «삼국사기»에 나옵니다.당시 당나라는 60일 동안 50만의 인력을 동원하여 안시성의 동남쪽 구석에 흙으로 산을 쌓았습니다. 강하왕 이도종이 건설책임자였고, 나뭇가지로 흙덩이를 쌓아 올렸다고 합니다. 그리고 토산 중간에 다섯 갈래로 길을 내어 나무를 걸친 뒤 그 위를 흙으로 덮었다고 나옵니다. 토산이 성보다 높아 그 정상에서 성 안을 내려다보았다고 서술합니다.토산을 쌓을 수록 안시성과 맞닿았고 결국엔 성보다 높아져서 성이 밀려 무너져 내렸다고 합니다. 그때에 고구려군이 공격하여 당군이 방심한 틈에 토산을 빼앗아 점령하였습니다.
Q. 고구려 대장군 양만춘 장군은 실존인물 인가요?
안녕하세요. 장세영 인문·예술전문가입니다.«삼국사기»에 따르면 안시성의 성주는 나옵니다만 그 이름이 전해지지 않아 안타까워 하는 대목이 나옵니다.(참고: 삼국사기, 고구려본기9, 보장왕 4년 10월)따라서 안시성 성주는 실존 인물이지만 그 이름이 양만춘인지는 알 수가 없습니다. 그럼에도 양만춘이라 불리는 까닭은 조선시대에서 비롯됩니다.조선 현종 시기의 관료인 송준길의 문집에서 송준길이 현종의 물음에 안시성 성주의 이름을 "양만춘"이라 언급합니다. 그리고 그는 그 사실을 조선 선조 때의 관료였던 윤근수가 중국에서 듣고 기록하였다 밝히고 있습니다.(참고: 동춘당집, 별집제6권, 경연일기, 1669년 4월 26일자 기록)하지만 안시성 성주가 살았던 시기로부터 무려 몇 백년이나 지난 일인 만큼, 그 이름이 진짜라고 믿을 만한 근거는 없습니다. 그랬다면 «삼국사기»에 그 이름이 기록되어 전해졌겠지요.